10월 강릉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야금 현을 누르고 있는 S 언니의 손가락이 내 목을 누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살짝 그을린 손은 단단하고 잘 깎은 나무 같아 보였고, 기다란 손가락에 어울리는 반듯하고 길쭉한 손톱은 바둑알처럼 반들반들 윤이 났다. 그때 사람의 손가락도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렇게 좀 더 깊게 누르고 나오는 소리라고, 이게 안돼?"라는 언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가락에 정신을 빼앗길 때가 아니다. 바로 앞에 앉은 D선생님과S언니는 내 가야금의 불안정한 음정을 하나하나 뜯어고쳐주고 있었다. 세세하게 친절하게 한음 씩 알려주고 있었지만, 요즘 그 사근사근한 소리는 호통같이 느껴졌다.그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자주 목이 움찔거리며 쭈그러들고 있다. 거북이가 깜짝 놀라 껍데기 안에 머리를 집어넣듯, 어딘가에 쏙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사실은 작아지고 작아져서 사라지기 직전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가르침에 따라 현을 뜯고 손을 눌렀다. 그리고 언니 눈을 바라보며 방금 그 이야기 잘 이해했다고 씩 웃었다.
얼마 전부터 국악 연습실에만 다녀오면 기진맥진하여 곯아떨어진다. 경력 20년, 40년의 두 선생님 앞에서 이제 겨우(?) 10년 차의 가야금 취미생은 늘 졸아 있었다.집에서 매일 평균 3시간씩 연습하지만, 처음 듣는 아쟁 산조 가락을 재빨리 외우기는 쉽지 않았다. 비록 6분으로 짧게 자른 가락이지만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가락은 머릿속에서 카오스를 만들었고, 집에서는 외웠다고 자신한 부분도 연습실만 가면 머리와 손가락이 따로 놀았다. 오늘만큼은 가락을 꼭 다 외워서, 손가락이 터져라 연습해서,'오~ 이제 안심인데, 완벽하네.'라는 소리를듣고야 말겠어라고 늘 결심한다. 하지만 속상하게도 내 손가락은 다른 현을 뜯거나, 긴장해서 박자를 놓치거나,덜 누르거나 더 눌러서 소리가 튄다. '자 그럼 한번 맞춰볼까요.'라는 이야기에 바짝 긴장해서 어깨가 뻐근하고, '로란씨 혼자 한번 해보자.' 라며 장구채를 들면 뒷목이 저릿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까딱하다 틀린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바보가 된다.
10월 초 공연이 잡혔다. 8월 초에 있었던 배문고등학교 작은 국악연주회에서 듣는 사람 앞에서 연주하는 사람이 되었더니, 그게 그렇게 달콤했던 거다. 경청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학생들 앞에서 신이 났었다. 긴장감은 적당한 흥분제가 되었고, 다행히틀리지 않고 곡을 연주했다. 언니와 선생님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헤헷 내가 살렸네 살렸어.' 라며 속으로 만족해했었다. 그래서 덜컥 10월 초 공연도 하겠다고 나선 거였다.
'그때처럼 막판까지 불안하지 않게 이번에는 이렇게 해봅시다.'라고 D선생님이 메신저로 연습 일정표를 보내줬다.그 표에 따르면 1~2주 안에 가락을 다 외우고, 그 후에는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합주 연습을 해야 한다. 빡빡한 일정표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처음 듣는 산조를 어떻게 2주 안에 다외우지. 게다가 '막판까지 불안하지 않게'라는 글자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8월 연주회 직전에 하필 태국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연주회가 계획되기 훨씬 전에 예약한 친구와의 여행이었다) 나는 막판에 혼자 연습을 빠졌었다. 심지어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25현으로 하는 연주라 막판까지 자꾸 틀리거나 놓쳐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리허설까지 불안하긴 했지만, 본 공연엔 틀림없이 다 해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은 쏙 빼고 불안했다는 말을 하시나.'라며 불편한 속내를 꾹꾹 삼켰다. '본 공연 땐 잘했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밑에까지 올라왔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불안했던 건 사실이니까 차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민망하고 조금 섭섭했다. 그러니 이번 공연 연습에는 지난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연습실에서 배우고 집에 오면, 녹화해 온 S언니의 연주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하며 가락을 외웠다. 나는 악보를 보는 것보다 실제 연주자의 주법과 소리를 듣고 따라 하는 것으로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이 한 소절씩 천천히 알려주는 레슨이 아니라, 연주 영상을 보고 따라 하려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듣고, 빠른 장단은 열 번 스무 번 반복해도 잘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물론 비공개로. 유튜브 영상은앞뒤 이동이 편하고 재생 속도도 조절할 수 있어 연습하는데 좋았다.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안 되는 가락을 보고 또 보고 연습했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뻐근해진 허리를 펴고 자리에 드러눕는다. 딱딱한 바닥에서 구부정해진 허리를 펴고, 긴장을 푼다.가야금 하다 힘들 땐 드러누워야 한다. 앉아서는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모든 몸을 요가의 사바사나처럼 완전히 이완하고 누워야 한다.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지난번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많이 어색한 D선생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벌러덩 누워버렸었다. 그땐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펴고 싶어체면도 예의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아무튼 매일 3-4시간씩 카지노 게임 추천을 해대니, 아주 약간씩 병아리 오줌만큼 거북이걸음만큼 천천히 외워졌다. 그러면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는데, 일명 나를 속이기 작전이다.하루를 반으로 나눠 오전에 카지노 게임 추천, 저녁에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카지노 게임 추천시간을 두 번으로 나눈다. 그리고 사이에는 꼭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학습한 것을 단기기억에서장기기억으로 옮긴다. 예를 들어오전에 2시간 정도 카지노 게임 추천하고 쉬거나 다른 일을 하다 저녁에 1시간 다시 카지노 게임 추천하는데, 머릿속으로는 이 저녁 카지노 게임 추천이 다음날 카지노 게임 추천인 것 같은 상상을 한다. 이렇게 하니 하루를 카지노 게임 추천해도 이틀 카지노 게임 추천한 것처럼 몸에 조금 더 빨리 새겨졌다.
그리고 내 체력과 집중력을 고려했을 때 한번 카지노 게임 추천은 1~2시간이 적당했다. 2시간이 넘어가는 순간 등과 허리, 골반, 다리가 참을 수 없게아프면서 더 이상 학습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통으로 3시간 카지노 게임 추천하는 것보다 2시간, 1시간으로 나눠서 카지노 게임 추천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비록 그 사이 카지노 게임 추천한 것을 좀 잊어버려도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금세 따라잡을 수 있었다.오전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10이 되었는데 오후에는 어느 정도 까먹고 학습한 것은 5로 줄어든다. 하지만다시 카지노 게임 추천해서 15로 만들고 다음날 오전이 되면 10이 되고, 다시 오후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20이 된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지만 결국 우상향을 그린다. 잦은 학습과 휴식시간이라는 패턴으로 2주 동안 한 달 카지노 게임 추천한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냈고 결국 6분짜리 산조 가락을 모두 외웠다.
그동안 마음고생 몸고생한 걸 아는지, S 언니는 내가 카지노 게임 추천실을 갈 때마다 훈제오리찜, 매콤한 닭볶음탕, 직접 만든 바질페스토를 넣은 채식 토르티야 타고 같은 별미들을 만들어주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실 한 귀퉁이 작은 부엌에서 뚝딱 나오는 진수성찬에 그날의 피로를 잊고 서운했던 마음을 비우고 위장을 든든하게 채웠다. 언니는 언니대로 반복해서 알려줘도 자꾸 틀리는 동생이 답답했고, 그 동생은 생각대로 몸이 안 따라줘서 속상했다. 그렇게 서로 씨름하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질 때쯤 피로와 배고픔을 채우는 한 끼로 오늘도 고생했다는 위로를 전했다. 답답하고 속상한 건 버리고 따스한 온기를 채우는 저녁시간이었다. 그렇게 채운 위로는 다음 시간 하드 트레이닝의 에너지가 되기도 했고, 좀 잘해보자는 응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3주 차, 정악가야금과 아쟁과 내 12현을 합주하면서 드디어 드디어 칭찬을 들었다.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일취월장했어." 그 말에 나는 좋아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거봐,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니까. 이제 불안하다는 말은 안 나오겠지.하하하'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래서 좀 쉬엄쉬엄해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웬걸D선생님은 그 여세를 몰아방금의 합주에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그 음정은 이게 맞아요. 그리고 박자감이 아직 좀 덜 생긴 것 같아" 라며 시범을 보여주셨다. 새가슴이 되도록 뿌듯했던 감정은 사그라들고 나는 다시 구슬땀을 흘렸다. 다섯 번, 열 번을 반복해도 삐끗거리자, 나도 그도 스멀스멀 불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선생님 표정에서 그걸 감지하자마자 나도 모르게"선생님! 저는 시간이 필요해요. 김치가 익어서 발효되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지금 알려주신 거 내일은 잘 될 거예요!"라고 큰소리로 말해버렸다. 시간이 필요해 라며입에서 오물거리기만 하고 미쳐 하지 못했던 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 버렸다. 게다가 발효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쓰면서. "아 그래 발효, 김치 발효가 필요하구나. 허허" D선생님은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셨다.
연습실에 출근도장 찍는 날이 늘어가며, '스파르타 연습이 필요해.'라는 말은 차차 '연습 많이 했나 보네.'라는 말로 바뀌고 있다. 아직 공연까지는 2주 정도 시간이 더 남았지만, 곧 추석 연휴라 한동안은 연습실에서 호흡을 맞춰볼 수가 없다. 내가 더 불안해져서 주말에라도 시간 되면 연락 달라고 신신당부하듯 이야기했다. 글 쓸 시간, 책 읽을 시간, 멍 때릴 시간, 간식 먹을 기간을 가야금에 양보해 연습하다 보니이젠 선생님과 언니보다 내가 더 진심이다. 글 쓰는 사람인지 가야금 연주하는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3주 차를 지내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배워보자 심산이다. 배워서 남 주나. 결국엔 맛있게 익은 김치가 되어 제대로 감동을 주고야 말겠다는 결의가 생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