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쁨, 오늘의 슬픔, 그리고 별거 아닌 하루
냉장고에서 파프리카 빨간색 2개, 노란색 1개, 오이 3개, 양파 반 개, 방울토마토 한 움큼을 꺼냈다. 잘 씻어 물기를 툭툭 털어 내고 파프리카는 씨와 꽁지 버리고 검지와 엄지손톱사이즈 정도로 적당히 썰었다. 위아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 때문에 예쁜 모양으로 썰어지진 않지만 잘 드는 칼이 만드는 사각사각 소리가 경쾌했다. 이 소리를 듣겠다고 작은 사이즈 중식도를 샀었다. 나는 건강을 핑계로 사실은 칼을 쓰고 싶어서 샐러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니 너무 빨리 썰어서 일을 끝내면 아쉽다. 조금 천천히 사각사각과 통통통 소리를 즐기며 빨간색 노란색 예쁜 파프리카 조각들을 모은다.오이는 껍질을 벗기고 세로로 길게 반을 자른 후, 중간씨를 작은 스푼으로 긁어낸다. 일주일치 샐러드를 만들 예정이라 물기가 없도록 카지노 게임 게 좋다. 그리고 다시 반으로 길게 갈라 0.5센티미터 두께 정도로 썰었다. 양파도 같은 사이즈로 썰고 매운맛을 빼기 위해 물에 잠시 담가두었다. 방울토마토는 꼭지를 따고 깨끗이 씻어두었다. 먹기 좋으라고 일부러 작은 사이즈로 사 왔으니 자를 필요는 없다. 준비된 채소들을 큰 볼에 넣고 그 위에 올리브 오일을 꽐꽐꽐 붓는다. 레몬즙도 두어 바퀴 넉넉하게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툭툭 무심하게 흩뿌린다. 화이트와인식초를 넣으면 부드러운 단맛이 감칠맛을 내서좋은데 똑 떨어지고 없다. 아쉽지만 이번엔 패스한다. 큰 주걱으로 대충 섞은 다음 좀 더 작은 샐러드통에 나눠 담는다. 작아진 채소들이 와글와글 시끄럽게 통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묵직해진 샐러드 통들을 냉장고에 줄지어 넣고주방을 정리한다. 계란을 한두 개 삶아내거나 치아바타나 바게트, 깜파뉴에 버터나 치즈를 얹어서 같이 곁들여 먹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될 터이다.
먹고 남은 양배추 1/4통이 갈변을 시작했다.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칼로 자른 부위에 붙이고 랩을 밀봉했는데, 뭔가 어설펐나 보다. 색깔이 변한 부분을 잘라내고 겉껍질을 버리고 조금 두께가 있게 채를 썰었다. 물에 한참을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세척했다. 양배추는 생으로 먹는 게 젤 좋다고 하지만 그렇게는 잘 먹어지지 않아 라페를 만들 생각이다. 잘 씻은 양배추에 소금을 조금 뿌려 버무렸다. 10분쯤 지났나? 양배추를 적당히 짜고 물을 버렸다. 한줄기 먹어보니 간이 적당하다. 이때 너무 짜면 물에 담가서 짠맛을 줄이고 다시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해도 괜찮다. 큰 볼에 넣어서 올리브유를 넉넉히 넣고 레몬즙과 알룰로스를 그보다 좀 적게 넣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카지노 게임 홀그레인머스터드를 꺼내 두 큰 술 푹 떠서 넣었다. 손으로 조물조물 잘 버무리니 서양식 나물 같은 느낌이다. 시금치 가격이 좀 내리면 살짝 데쳐서 소금, 참기름 넣고마늘 대파 다져서 조물조물해 먹어야겠다.마지막엔 통깨를 넉넉히 뿌려야지. 다 만든 라페는 락앤락 통에 넣었다. 고기 구워 먹을 때 먹거나 빵 사이에 듬뿍 넣어 샌드위치를 해 먹어야겠다.
시계를 카지노 게임 가야금 수업 갈 시간이 다 되었다. 작은 백팩에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넣고 필통과 안경집, 화장품파우치, 지갑을 챙겼다. 그리고 카메라와 다 찍은 필름 2통을 챙겼다. 돌아오는 길에 충무로에 들러 필름을 맡겨야지.
늘 그렇듯 선생님과의 가야금 수업은 2시간이 넘는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중간에 저린 다리를 스트레칭하며, 수업이 끝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카지노 게임 시간이 최소 한 시간은 되는 듯하다. 가끔은 유튜브에서 본 귀여운 고양이 이야기처럼 소소한 잡담을 한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 나는 뭘 좋아하나? 평생 가야금만 했는데.' 같은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고민을 하다가, 곧 있을 입시에서 H가 꼭 원카지노 게임 대학 국악과에 무사히 합격해야 카지노 게임데 경쟁률이 너무 높다 같은 심각한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의 걱정에 응원을 보내기도 카지노 게임데, 가끔은 그게 나한테 카지노 게임 이야기인지 선생님한테 카지노 게임 이야기인지 헷갈린다. 가령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막연한 파이팅이라던가 '40-50대 즈음에 다들 고민한데요. 이렇게 살아온 것이 맞는지, 진짜 내가 원카지노 게임 게 뭘지. 그래서 사춘기 오춘기잖아요. 당연한 거예요.' 같은 이야기는 늘 내 안에 있는 로란에게 속삭이던 말들이다. 이쯤이면 오늘 수다 할당량 다 채웠다 싶을 때,가야금을 정리하여 제자리에 세우고 벗어둔 웃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작년에 퇴사한 회사 동료 S인 것 같았다. 혹시 아니라면 얼굴 빨개지게 부끄러우니 바로 아는 체는 하지 못하고 "S님을 닮았네."라며 지나가며 이름을 툭 내뱉었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맞네! 우연한 재회에 반가워서 하던 전화 통화를 대번에 끊어버렸다. 10대 여중생이었다면두 손으로 쎄쎄쎄를 하듯 S손을 맞잡고 제자리에서 방방방 세 번은 뛰었을 것이다. "우와 이게 웬일이야~"로 시작된 이야기는 최근의 조직개편과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 회사에 놀러 왔던 입사동기들, 퇴사한 사람들의 현황 같은 이야기로 흘러가다 충무로역에 도착하여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카지노 게임 회사에서는 늘 메신저로 이야기하느라 전화번호도 몰랐던 거다. 그의 핸드폰 번호가 내 폰에 부재중전화번호로 부끄러운 듯 빨갛게 새겨졌고 나는 행여나 놓칠세라 그 번호를 저장했다. 조금 있으니 혹시 내가 잊을까 봐 'S예요.'라는 문자가 왔다. 네. 잊지 않을게요. S.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충무로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사람들로 인도가 혼잡했다. 나는 역에서 나와 충무로 사진관으로 향했더니, 그 사람들을 헤치며 거꾸로 거슬러 가는 거였다.어깨를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며 지그재그로 움직이다 문득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사실 처음에는 윤도현 노래인 줄 알았다. 글을 쓰기 위해 찾아카지노 게임 가수가 강산에였다. 무척 미안해졌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걸어걸어 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카지노 게임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걸어걸어 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난 쉴 수 있겠지
가사 전체를 기억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걸어걸어걸어 가다보면' 이라는 구절만 입에 익어 중얼거려진다. 아무튼 거슬러 올라카지노 게임 건 연어나 나나 다들 힘들겠지만, 가다 보면 좋아지겠지, 아니면 좋은 곳에 도달하겠지, 이러고 거꾸로 거슬러카지노 게임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왜 카지노 게임지 어디로 카지노 게임지를 잘 알고 카지노 게임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쩔 때는 정해진 길의 목적지를 당장에 알 수 없어도 묵묵히 갈 수밖에 없을 때도 있으니까.
그렇게 심오한 고민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별생각 없이 걷다가 단골 사진관, 포토마루에 도착했다. 직원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단골이다. 내 입장에서 같은 곳을 이만큼 여러 번 간 곳은 잘 없으니. 나는 이 골목과 좁은 계단과 깨끗하지만 오래된 듯한 문과 직원분 데스크 앞 동그란 의자와 그 의자에 앉아서 오른쪽 살짝 뒤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판매카지노 게임 필름과 책 같은 것을올려둔 작은 선반이 익숙하다. 필름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열어서 필름만 정리해 드리면 더 좋아하신다거나, 카메라 안에서 필름이 끊어져버려 (오래된 필름이었다. 에잇!) 잠바를 뒤집어쓰고 겨우 빼서 돌돌 말았는데 빛이 통과카지노 게임 플라스틱 통에 넣어가서 그걸 본 직원분이 못 참고 폭소했다거나, 인스타그램에서 맞팔한 사진작가가 알고 보니 여기 사장님이었다거나. 뭐 그런, 나 혼자만 간직카지노 게임 소소한 추억과 내적 친밀감이 있다. 며칠 지나면 내 전용 하드 드라이브에 새 사진들이 우르르 올라올 것이다. 필름을 맡기는 이 순간만큼은 아직 맞이하지 않은 미래의 그때를 생생히 기약할 수 있다. 미래의 추억이 가장 설레게 시작되었다가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업로드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그 설렘은 다시 생생해져서 두근거리며 마우스를 클릭하여 폴더를 열게 된다.
계단을 내려와 골목을 빠져나오자 맞은편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차 깜빡할뻔했네, 저 가게에서 깜빠뉴와 치아바타를 사야겠다. 비록 어제 코스트코에서 산 바게트가 냉동실 한가득이지만 말이다. 이곳 썬드라이 치아바타는 맨입에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샌드위치해 먹기는 아까운 맛.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건너 딸랑~ 문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역시, 늦은 오후 깜빠뉴는 다 팔리고 없었다. 올리브 치아바타와 썬드라이 치아바타를 하나씩 사고 도장을 2개 받고 가게를 나왔다. 빵을 사면 왜 이렇게 뿌듯한 걸까?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벌써부터 집에 도착하면 카지노 게임를 꺼내고 빵에 버터를 발라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 남자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집에 이거 놔두고 간 거 같아.' 살펴보니 잃어버렸던 나의 독서노트였다! 집 책장과 책상 서랍을 다 뒤져도 안 나왔던, 혹시 엄마 집에 뒀을까 봐 샅샅이 뒤지고 엄마와 동생에게도 꼭 찾아달라고 당부했던, 남자친구 집에서도 책장과 서랍을 샅샅이 뒤졌지만 못 찾은 그것이었다. 그게 어디 있었지? 알고 보니 소파와 쿠션 사이에 끼어있었단다. 소파 팔걸이 옆에 쿠션을 두고 나나 남자친구나 둘 중 한 명은 늘 그곳에서비스듬히 머리를 기대고 누워있다 보니 뒤지지 않았던 거다. 이유야 어쨌든 세상에, 이건 너무 럭키비키잖아! 며칠을 찾아도 허탕이었기에 카페 같은 곳에 뒀나 보다라며 낙심하고 새로운 노트를 고르고 있었는데. 그렇지만 어떤 노트도 그 노트를 대신할 만한 기대를 주지 못했기에! 예쁜 새 노트는 설레기 마련인데 이상한 일이지. 책을 읽어가며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기록하고 기억해둬야 할 사건들을 메모하고, 좋았던 문구들을 다시 한번 적었던, 요즘 사람 스럽지 않게 볼펜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썼던 것이라.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책 한 권으로 2페이지, 길어도 4페이지를넘지 않으려고 계획성 있게 쓰다 보니 글자가 깨알 같을 때도 있고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그 책을 읽었던 시간이 떠오르는 타임캡슐이었다. 결국 소중한 건 거기에 쏟은 내 진심과 열정 그리고 시간이다.거기엔 그런 것들이 담겨있었던 거였다. 나는 그걸 찾아준 남자친구에게 '오늘의 기쁨. 독서노트를 찾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도착해 치아바타를 하나 꺼내 반을 가르고 햄과 치즈, 버터, 계란, 샐러드통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먹을 만큼을 통에서 덜어 그릇에 담고 뚜껑을 닫는데, 밀폐력이 좋다 보니 쉬이 닫히지 않았다. 꾹 하고 소리 나게눌러야 카지노 게임데 라는 생각을 하며 누르는 순간, 통이 미끄러졌고 샐러드를 담은 그릇을 쳤고, 그릇은 날아갔다.샐러드 채소 조각과올리브오일이 바닥과 그 옆에 놓아둔 가방을 덮는 걸 보면서 나는 서걱서걱 썰었던 즐거움을 기억했다. 검지손톱과 엄지손톱 사이즈 만한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연두색의 조각들이 날아가는 걸 지켜보며 야채 스틱으로 먹을걸그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물티슈를 꺼내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미끌미끌해진 바닥을 닦고 가방겉에 뭍은 노란 올리브오일의 흔적을 닦았다.
슬픈 마음을 잊기 위해 가야금을 꺼내 잡았다. 아까 선생님에게 지적받았던 부분을 기억해둬야겠다 싶기도 했고, 뭔가에 집중해야 슬픈 카지노 게임 이야기를 좀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의 슬픔. 카지노 게임를 엎어버리다.
아무튼 치아바타는 맛있었고, 샐러드를 새로 꺼내먹었는데 그것도 맛있었고, 가야금을 너무 많이 뜯었더니 손가락이 아팠다. 그러면서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하다가, 별것 아닌 거 같지만 카지노 게임 일이 참 많았네 싶었다. 아무도 재미있어할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나 혼자만 재미있었던 하루 이야기를쓰다 보니 빨래가 다 돌아갔다고 세탁기가 노래를 부른다. 딴따라라 딴딴 따라라라라라라라 딴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라라라. 그럼 이만 글을 마무리하고 빨래를 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