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79년,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1979년,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그 해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살해된 사상 초유의 사건이 있었고, 10월 2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12.12 군사반란이 발생했다. 대통령의 장례식을 티브이로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그날 학교를 가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을까? 학교에 등교한 나는 얼굴이 하얘지면서 아랫배를 움켜쥐고 엉엉 울었을 것이고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곧바로 집에 가라고 했을 것이다.집까지는 어린아이 걸음으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교실을 나와 학교 정문 앞 연못을 지나면 정문 바로 앞에 큰 문방구가 세 개 있었고, 오른쪽 길목에는 허름한 문방구가 하나 더 있었다. 학교 근처에 줄지어 늘어선 집들 앞을 지나며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배가 아파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 아랫목에 누워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간이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골목이 나오고, 그 길 끝에서야 큰길이 나타났다. 큰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두고 나는 왼쪽, 황량하게 펼쳐진 흙밭으로 들어섰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부잣집의 담벼락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무시무시하게 박혀 있었고, 걸음을 재촉해 길을 따라가다 보면 허수아비와 참새들을 구경할 수 있는 넓은 밭들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날은 배가 너무 아파 참새들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려면 큰 도로를 건너야 했다. 신호등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사히 큰길을 건너고 나면 기와집과 양옥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마을이 나왔다. 동네 구조는 어떤 구역은 기와집으로만, 또 어떤 구역은 2층 양옥집들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었다. 배를 움켜쥔 채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이미 학교에서 출발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당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이는 35세였을까?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혼자서 나를 키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삼촌 댁에 얹혀살며 장어탕을 파는 식당 일을 돕고 계셨다. 배를 움켜쥔 채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보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깜짝 놀라셨지만, 이내 나를 다시 학교로 돌려보냈다.
"이 정도 걸어왔으면 다 나았어. 공부는 다 하고 와. 결석은 안 돼."
나는 울면서 다시 먼 길을 걸어 학교로 돌아갔다. 되돌아가는 길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원망하며 발길로 돌멩이를 차다 그것이 부잣집 철문에 튀어 시커먼 개가 맹렬히 짖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내 배가 아직 아픈지 물으셨을 것이다. 나를 달래려 귀한 설탕물도 타주셨을 것이다. 그 시절 설탕물 맛과 시원함은 유독 생생하다. 그러나 그 설탕물 기억 속에는 고양이와 쥐도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설탕을 꺼내 스테인리스 그릇에 찬물을 섞어 숟가락으로 휘젓고 계실 때, 천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쥐를 쫓는 고양이 소리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나는 소리가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갑자기 싸움 소리가 나더니, 종이가 찢어지며 쥐와 고양이가 한꺼번에 방 안으로 떨어졌다. 귀한 설탕물은 쏟아졌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나는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왔다. 그 틈에 쥐와 고양이도 열린 문을 통해 사라졌다.
하루 종일 피곤했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쥐와 고양이가 만들어 놓은 난장판을 치우느라 졸린 눈을 비비며 방을 치우셨을 것이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가며 낮에 따뜻하게 만져주지 못했던 어린 딸의 배를 물집에 부르튼손으로 어루만졌을 것이다. 그러다 찢어진 천장을 쳐다보며,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자신보다 큰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