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투썸이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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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련 Apr 23. 2025

카지노 게임 내게 준 것

내가 스물여덟 살 때

너는 나를 만나러 오겠다 약속했지

변기 위 평행하게 놓인 그것에 선명한 두 줄로.

두근대는 기다림, 카지노 게임 내게 준 것


너는 나를 떠날 수도 있다며

내게 신호를 보냈지

그 새벽 흰 변기 속 선홍색 핏물

눈물 나는 무서움, 카지노 게임 내게 준 것


내 나이 스물아홉, 너를 만나는 날

난 꼬박 밤을 지새웠지

고통과 환희의 그 만남, 카지노 게임 내게 준 것


너는 네 작은 손으로 불어 터진 내 젖을 만지고

그 작고 부드러운 혀로 덩달아 솟아오른 내 젖꼭지를 휘감아 빨았지

찌릿한 쾌감, 카지노 게임 내게 준 것


카지노 게임 그렇게도 내게 이별을 경고했는데도 난 알지 못했어.

카지노 게임 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했는데도 난 알지 못했어.

오른쪽 눈을 가렸던 안대. 심한 복통

내가 네게 준 것.

그 조차 알지 못한 나


내 나이 서른다섯,

내게 와 7년을 살다 간 너

비명횡사한 너

건널목에서 마을버스에 치인 너

주황색 파카와 쑥색 코르덴바지, 신발 한 짝,

유치원 가방엔 생일 맞은 친구에게 줄 선물을 두고 간 너

널 데려다주지 못한 나

보고서를 밤새 쓰고

겨우 콘플레이크를 우유에 말아 먹이며 밥을 김에 몇 번 싸 먹여 보낸 나

죄책감, ‘왜?’라는 의문, 카지노 게임 내게 남긴 것


응급실에서 본 찢어지고 비틀어진 네 몸

나와 이 세상에 와 7년을 버티며 지탱해 준 네 몸

장례식장에서 다시 본 비틀어진 그대로의 네 몸

핏자국 하나 닦지 못하고 얼려진 네 몸

오열과 하혈, 내 몸의 반응, 카지노 게임 내게 남긴 것


너무도 작은 수의

저렇게 작은 수의를 만들어 놓다니

이렇게 어린아이가 죽으리라 여겨 저따위 작은 수의를 미리 만들어 놓다니

절망과 분노, 카지노 게임 내게 남긴 것


내 몸속에서 뼈와 살을 만들어 나온 너

그 살은 태우고 뼈는 가루를 만들어 바다에 뿌린 나

거듭되는 속죄, 미안해, 미안해, 다시 돌아와, 정말 잘할게

간절한 기원, 널 향한 마음


내 나이 서른여섯, 월드컵 개최, 4강 진출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2002년

네가 남긴 동생과 장롱 문을 닫고 앉아 어둠 속에서 눈물 흘린 나

내가 만들 수 있는 관을 만들어 들어앉은 나

덩달아 힘겨웠을 네 동생.

내 슬픔, 우울, 분노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을 네 동생

그것도 모른 채 내 우울 속에서만 지낸 나

그러면서도 다시 널 닮은 아일 가지려는 욕심을 끝내 채우고야 만 나


서른일곱, 셋째도 남자아일 낳은 나

내 평생 처음 한 간절한 기도와 그 응답,

셋째로 태어나 둘째로 살고 있는 지금의 막내

카지노 게임 내게 남긴 것


그때 한 간절한 기도

미안해, 미안해 다시 돌아와 정말 잘할게

정말 잘하고 있나?

카지노 게임 내게, 이 세상에 왔다간 의미는 뭐지?


이번 주 화요일 7시 반에도 난 한겨레교육문화센터 206호에 갈 거다

카지노 게임 내게 준 것을 정리할 수 있게


2002년 2월이었을 듯.

한겨레 소설반 ‘투썸이층’ 에서 쓴 첫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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