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꿈을 찾아 떠나가기
그날 이후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3월11일, 그날) 게임 개발의 특성 상 서로의 모니터를 보며 대화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존경할만한 동료들이었지만 자꾸 그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급적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고 내 작업에만 집중하려고 했지만, '책임'이라는 직급상 불가능했다. 그 결과 근무 중에 사내 카페에 나가는 회수가 점점 늘었다.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 만의 시간을 자주 보내다 보니 마음 속에 묻어둔 회사에 대한 불만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이 회사에서 가장 큰 불만은 이른바 허들 시스템이었다. 3개월에 한번 경영진에게 개발중인 게임을 선보이는 날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좋은 평가를 못 받는다면 개발을 중단해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튜디오 해체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본부장 님은 이 회사의 스타 개발자였다. 따라서 허들을 넘지 못할 경우 스튜디오가 해체되는 대신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회사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3개월마다 경영진에게 선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작업을 하는 비효율은 불만이었다. 허들 준비는 길면 한달 동안 진행 되었고, 허들이 끝나면 시연을 위해 넣은 불필요한 요소를 걷어내는데 최대 한달이 걸렸다. 이런 시스템이라도 프로젝트의 방향이 명확하다면 괜찮았겠지만, 우리 스튜디오의 성향은 여기에 맞지 않았다.
본부장님은 즉흥적인 아이디어 뱅크였다. 팀장님 말로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날 출근하자마자 말씀하셨다. ‘우리 캐릭터, 로봇으로 변신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오늘 저녁까지 만들어봐!’ 어떤 날은 ‘물총을 쏴서 방울에 가두면 좋을 것 같아! 보블버블처럼! 오늘 저녁까지 만들어봐!’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전자는 트랜스포머를 보고 오신 다음 날이었고, 후자는 아이와 함께 비누방울 놀이를 하고 온 날이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찾아낸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없이 던지셨고 우리는 그것이 게임에 적합한지 매번 검증해야 했다. 이런 형태로 게임을 개발하는 분이다 보니 허들 시스템과 맞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방식을 통해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물총 이야기를 하고 들어가시면 곧바로 긴급 회의가 소집된다. 구현 방식에 대해서 파트장들과 논의를 마치고 동시 작업이 진행된다. 파티클로 할까? 물리는? 판정은 어떻게 해야 하지? 저녁까지 보여드려야 했으니까. 파트장 급이 기본 구조를 잡는 동안 기획자는 다른 파트원들이 작업할 사양과 데이터를 정리한다. 때로는 목 업을 만들거나 직접 프로그램이나 그래픽, 사운드 지원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시연을 하며 세부 조정을 하는 일은 기획팀에서 해야 하기에 팩터 정리와 밸런스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모르던 기술을 많이 접하기도 했고 작업 속도가 현저하게 증가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방식이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충분히 경험해 볼만한 개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매년 진행하는 한국 최대의 게임 행사인 지스타. 우리 본부도 이 곳에 게임을 출품하게 되었다. 이미 업력이 10년차였고 지스타 출품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내려갔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생각과 너무 달랐다. 예전 회사에서 참가 했을 때, 개발팀은 주변에서 대기하다가 빌드 문제에 대응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 본부 개발진 전원이 게이머들의 줄을 세우고 간판을 들고 돌아다니며 안내를 해야 했다. 대기업인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본부장님의 성향이었다. 회사 지원 팀이 아닌 우리 본부 구성원들만을 믿기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다른 부스를 구경할 수도 없었고 첫 날 전시가 끝난 뒤에도 본부장님의 즉흥 아이디어로 인해 아무도 없는 행사장에서 추가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역사는 이루어졌다.
오래 전 지스타에 참가했을 때, 한 여성분에게 말을 건 적이 있었다. 어쩐지 안절부절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모 콘솔 게임의 가방을 메고 있어서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으세요? 상대의 답변이 영어로 돌아왔다. 외국 분인가 싶어 명찰을 보니 가방에 새겨져 있는 게임을 개발한 일본 회사 이름이 있었다. 일본어로 말을 걸었더니 길을 잃었다고 하셨다. 행사장으로 모시고 가서 부스를 찾아 드렸고, 명함을 교환했었다. 몇 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 여성분으로부터 얼마전에 이번 지스타에 참가한다는 메일이 온 것이다. 늦은 시각에서야 업무에서 풀려난 나는 고민 끝에 그 분에게 문자를 보냈다. 23시였다. 해운대 인근 카페에 일행과 있다는 답장이 와서 달려갔다. 동경하는 회사의 직원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고,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한국 최고의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당당해졌다.
카페에는 지난 번의 뵌 일본 여성분과 함께 다른 남자 분이 두 분 더 있었다. 한 분은 한국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일본 분이셨다. 인사를 나누던 중 명함을 받고 깜짝 놀랐다.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 중 하나인 C사에 있는 분이셨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던 중 내가 N사에 다니며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자 갑자기 즉흥 면접이 진행되었다. 내가 감히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회사의 파트장 급과 면접을 보다니. 꿈만 같았다. 일본에 가고 싶다고. 한국 최고의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나는 더욱 성장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일본은 온라인 게임의 경력자가 많지 않아요. 안그래도 네트워크 게임을 잘 만드는 사람이 필요한데, 운명 같은 만남이네요. 그 놈의 운명... 그 이후로 몇 번의 메일을 더 주고 받았고, 가벼운 입사 테스트도 풀었다. 그리고 일본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의 일상어 수준으로는 일하기 힘들 테니까. 그렇게 바쁜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일본어 학원을 다녔냐고? 새벽 3시 경에 퇴근하고, 오전 7시에 학원을 갔다. 한가할 줄 알았건만 그 시각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지금까지 대체 뭐하고 산걸까?
그렇게 일본 회사를 목표로 하게 되며 회사 생활은 더욱 답답해졌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닌 동료들이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자만심이 가득해진 탓이겠지. 대기업 답게 명품 관련 취미를 가진 분들도 계셨는데, 그런 모습에서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니까. 심지어 과거의 성공 작에 다들 묶여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중 C사에서 연락이 왔다. 대면 면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으로 떠날 때가 온 것이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좋다. 동생이 일본에 있으니 그 곳에서 새로운 회사를 찾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17화 최고의 파트너)
회사에 퇴사 의사를 표명카지노 가입 쿠폰. 바로 다음 날, 인사팀과 면담이 잡혔다. 회사에 문제가 있어서 그만 두는 것인지 꼼꼼하게 체크 했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 폐가 될 수는 없었기에 나쁜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인사팀에서는 꼭 나가야 겠냐고, 본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줄 테니 계속 회사를 다니라고 해주셨다. 솔깃카지노 가입 쿠폰. 모든 N사 직원들이 동경하는 곳이 하나 있었다. 고양이 스튜디오로 갈 수 있다면 남겠습니다. 그 곳이 이 회사에서 최고의 실력자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당연히 될 리가 없었다. 내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결국 퇴사를 확정했고, 연좌와 조군 등 친했던 동료들에게도 이를 알렸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두 사람과 한가지 약속을 카지노 가입 쿠폰. 우리 본부의 문제점들을 본부장님에게 투서하고 가기로. 누군가가 말해야 한다면 그만두는 사람이 말하는 편이 뒤 끝도 없고 좋을 것 같았다.
장문의 메일을 썼다. 우리 본부의 장점과 감사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본론은 아랫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선점이었다. 회사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 본부장님에 대한 불만, 개발 관리에 대한 불만 등. 너무 심하게 쓴 것은 아닌가 싶어서 여러 번 고쳤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본부장님 성격에 이 메일을 읽으면 엄청 화내시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 메일을 전송하고 퇴근해 버렸다. 다음 날, 출근한 본부장님은 나를 찾았다. 메일을 읽고 할 말이 있으신 듯 했다. 본부장 실에 처음으로 단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 같이 화를 낼 줄 알았던 본부장님은 의외로 나의 새로운 앞날을 축복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한 때 꿈에도 그리던 대기업, N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일본 C사에 다니고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출국조차 하지 못카지노 가입 쿠폰. 어떻게 되든 일단 나가자고. 안되면 다른 일본 회사에 들어가자고 했던 결심이 무색카지노 가입 쿠폰. 내가 있는 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주변이 논과 밭으로 둘러 쌓인 곳. 기름과 금속 냄새가 가득한 공장에서 거대한 쇠 톱으로 철판을 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