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할아버지의 기일이구나. 음력으로 제사를 모시는 문화에는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아서 매년 바뀌는 기일을 기억하는 건 불가능했다.
"엄마, 나한테 할아버지 기일은 내 생일이야. 할아버지내 생일에 돌아가셨잖아.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 생일 챙겨주셨고."
"그래, 맞다. 나도 그날 ‘진아 생일 챙겨주러 안 가나?’ 묻던 아버지 목소리가 선명하다."
"그래서 나는 내 생일이 할아버지 기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그날은 평생 못 잊지."
할아버지는 4년 전, 내 서른다섯 번째 생일날 이승을 떠나셨다. 거짓말처럼, 돌아가시기 직전에 첫 손녀였던 나의 생일을 챙겨주시고는.
할아버지는 내게 아버지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빈자리였던 아빠의 자리를 조금의 빈틈도 없이 메워주신 분. 타지에 직장을 갖고 독립하기 전까지 할아버지 그늘에서 살았고, 그게 더없이 든든했다. 할머니와 엄마, 여동생, 나까지. 여자 넷을 지키던 할아버지는 대체로 무뚝뚝하셨지만, 종종 호탕하셨고 때때로 무심한 듯 다정하셨다.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 중학교 때 할아버지가 학부모 수업의 교사로 오셨다.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교탁에 서 계시던 모습만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친구들이 왜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오셨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했고, 나는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소문날까 두려웠을 법도 했다. 신기하게도그런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소리 내 웃던 친구들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TV 퀴즈쇼 보시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얼마나 다방면의 지식이 많으셨는지 웬만한 문제는 다 맞히셨다. 겨우 국민학교만 졸업하셨던 할아버지가 어디서 그 많은 지식을 듣고 익히셨는지 내내 신기해하며 퀴즈쇼와 할아버지를 번갈아보던 기억이 또렷하다.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시며 '고!'를 외치시던 할아버지의 유쾌한 목소리도, "진아, 하드(아이스크림) 사오너라!" 하시며 고스톱에서 딴 돈을 내미시던 손짓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귀가가 늦어지는 밤이면 지하철역으로 나를 데리러 나오셨던 할아버지의 모습도, 손녀와 함께 걷는 게 어색하셨던지 늘 몇 걸음 앞서 걸으시던 할아버지의 뒷모습도 어제 일처럼 눈에 아른거린다.
큰 병을 앓지는 않으셨지만, 당뇨와 고혈압을 오래 앓으셨던 할아버지는 4년 전, 83번째 생신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린 겨울날 세상을 떠나셨다. 하필이면, 일 년 중 마지막 날이자, 나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날, 내가 둘째 딸아이를 출산하기 꼭 한 달 전에. 할아버지 곁을 지키던 엄마에게 "진아 생일 챙기러 안 가냐"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시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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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아빠를 잃었던 나와 동생에게, 남편을 잃었던 나의 엄마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 같은 존재셨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몸을 낮추어생을 다한 할아버지. 비스듬히, 생을 기울여 우리 세 식구가 몸을 기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해주신 할아버지. 우리는 할아버지에게기대어 싹을 틔우고 꽃도 피웠다. 이제는 한 줌 흙으로 사라진 할아버지는 여전히 내 뒤에 반쯤 몸을 기울인 채, 더없이 든든한 무료 카지노 게임이 되어주고 계신다. 그렇게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