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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지않긔 Apr 05. 2025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 싫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종 목격되는 담론의 표면에는 흥미로운 자기기만이 깔려 있다.

흔히들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전체주의', '독재', '억압'이라는 단어들이 연결되곤 한다.

마치 공산주의라는 이념 자체가 시민의 자유를 파괴하고 표현의 권리를 박탈하며 강제노동과 사상 통제를 내포하는 절대악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상 작용은 우리가 지난 세기 내내 들어온 '반공주의 담론'의 유산일 뿐 냉철한 분석이라 하기는 어렵다.

실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독재는 그 어느 체제에서도 자라날 수 있는 권력의 독성이다.




중국은 무료 카지노 게임주의 국가라고 불리지만 그 실체는 오히려 유교적 위계질서와 국가자본주의가 결합된 '일당 독점 통치체제'에 가깝다.

표현의 자유는 위협받고 시위는 '사회 질서 교란'으로 간주되며 인터넷조차 방화벽 안에 갇혀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다국적 자본이 탐내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기능하며 무료 카지노 게임 고위 간부들의 자녀들은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해외에 호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처럼 ‘무료 카지노 게임’이라는 깃발 뒤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결코 노동자 계급의 해방과는 무관하다.




홍콩의 경우는 더 직접적이다.

1997년 반환 당시 ‘일국양제’를 약속했던 중국은 2020년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면서 그 약속을 서슴없이 무시했다.

표현과 언론, 선거의 자유는 명목상으로만 남았고 민주화 인사들은 체포되거나 추방당했으며 시민들은 “광복 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조차 마음대로 외칠 수 없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한때 세계 금융 중심지이자 무료 카지노 게임 자유의 모범이었던 도시는 이제 사법도 무료 카지노 게임도 모두 '당의 의지'에 복속된 전초기지로 변해버렸다.




쿠바 또한 마찬가지다.

피델 카스트로 이후의 '사회주의' 정권은 교육과 의료 체계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자유에는 인색했다.

21세기에도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자유는 없으며 노동자 스스로 조직한 독립 노조는 인정되지 않는다.

체제는 '반제국주의'라는 말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권력의 세습과 중앙 엘리트의 특권 유지를 위한 통제 체계에 불과하다.

결국 ‘사회주의’라는 명분은 독재를 감추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무료 카지노 게임주의'라는 이념의 실패로만 규정하는 것은 극히 단편적인 해석일 뿐이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훨씬 복합적이다.

자유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실상은 권위주의적 통치와 정치적 자유의 제한이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러시아는 선거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야당 후보는 독극물 테러를 당하거나 투옥되며 국영 무료 카지노 게임은 사실상 크렘린의 확성기일 뿐이다.

미국조차도 특정 시기에는 권력이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무료 카지노 게임을 ‘가짜 뉴스’라 부르며 선거 결과조차 부정하는 ‘합법을 가장한 반민주적 통치’가 현실화된 바 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독재는 이념의 소산인가, 아니면 권력 그 자체의 자기증식 본능에서 비롯된 현상인가?

무료 카지노 게임 후자라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무료 카지노 게임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권력 집중과 그것이 낳는 통제의 야만을 경계해야 한다.




독재는 좌우의 구분을 가리지 않는다.

20세기의 파시즘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등장했으며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언론을 폐쇄했으며 시민의 자율성을 질식시켰다.

군사독재 하의 남미 국가들, 한국의 박정희 정권 또한 반공을 외치며 권력을 정당화했지만 그 실상은 야당 탄압과 언론 통제, 고문과 살인으로 점철된 ‘한국형 파시즘’이었다.

반대로 동유럽의 '인민 민주주의' 정권들 역시 이념의 이름으로 시민을 감시하고 사상의 자유를 제거했다.

이 두 흐름은 외양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길, 곧 시민 없는 국가, 권력만이 남은 체제로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다시 그 길목에 서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수백 번 외치는 정치인들이 언론을 적대시하고 사법부를 압박하며 시민의 비판을 ‘가짜 뉴스’로 몰고가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시민의 자율적 조직은 '외부세력 결탁'으로 간주되고 반대자는 ‘비국민’으로 낙인찍힌다.

이 모든 언어는 과거 독재가 사용한 바로 그 어휘들의 재활용이며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언해야 한다.

문제는 무료 카지노 게임주의가 아니다.

문제는 독재다.

독재는 단일한 형태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이념이라는 옷을 갈아입고, 대의라는 가면을 쓰며, 국가안보나 민족주의 같은 감성적 언어를 무기로 삼는다.

파시즘이 늘 그렇듯, 독재는 무력을 앞세우기 전에 사람들의 사고를 먼저 장악한다.

바로 그 점에서 시민의 침묵이야말로 독재의 최고의 우군이다.




독재에 맞서는 힘은 제도에 있지 않다.

헌법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시민 속에 존재하지 않으면 헌법은 단지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에 맞서는 진정한 힘은 시민의 각성과 연대, 그리고 비판의 언어를 멈추지 않는 데 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고문당하고도 굴복하지 않았던 양심수들, 금서의 복사본을 돌려가며 읽던 젊은이들.

이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런 시기로 회귀할 수도 있다.

언론이 침묵하고, 사법이 무력해지고, 시민사회가 마비되면, 다시 광장은 닫히고 어둠은 깊어진다.

그러나 독재는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지 않을 때, 질문하지 않을 때, 옳고 그름을 ‘진영 논리’로 덮을 때, 조용히 다가와 우리의 권리를 가져간다.




그래서 묻는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은 감시받고 있는가?

무료 카지노 게임은 자유롭게 말하고 있는가?

사법은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도, 이 순간에도 조용히 자유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주의가 아닌, 독재가 문제다.

그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문제이며, 시민의 권리와 존엄의 문제다.

우리는 권력자에게 묻지 말아야 한다.

'어느 편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감시받고 있는가?'라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이 시대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민적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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