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딸, 아들을 위한 소울 반찬
정말 오랜만에 Mom Box를 열어보면서 우리 딸들을 위해 뭘 담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반찬 이야기를 드디어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성인이 되고 엄마가 더 바빠지면서 밥 챙기는 일을 놓아버려 매우 미안한데 반찬 만드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려니 좀 민망하긴 하네. '너희, 엄마 없으면 김치는 어쩔래?'라고 걱정하시는 외할머니께 엄마가 항상 걱정은 접어두시라고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다고 말씀드리거든. 너희에게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엄마 손맛 어쩌구 하면서 써보려 한다.
엄마가 중학교 다닐 때였어. 그날 엄마는 학교에서 매우 부당한 일을 당했어. 엄마가 다니던 학교는 반마다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 학급 문집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 부반장이었던 엄마는 담임 선생님, 다른 임원들과 함께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인쇄소를 여러 군데 방문했어. 그런데 빠듯한 예산에 인쇄비를 아끼려고 하셨던 선생님은 인쇄소를 들어갈 때마다 사장님들에게 거짓말을 하셨어. 사장님들이 가격을 부를 때마다 저기 어디 인쇄소는 얼마 불렀다... 거기로 가야겠다... 엄마는 선생님의 천연덕스러운 흥정이 너무 부끄럽고 더위가짜증스러웠다. 마지막 인쇄소에서 참지 못하고 엄마는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 말았어.
"선생님, 아닌데요. 그 사장님은 OOOO원이라고 하셨는데요..."
담임 선생님은 눈짓을 하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셨어. 무슨 대단한 의협심에 그런 건 아니고 햇빛도 따가웠고-뫼르소처럼 ㅋㅋ- 우리들이 듣는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시는 선생님께 우리도 듣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때부터 엄마는 눈치도 없고 버릇도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어. 선생님은 학교로 돌아와서도 엄마를 그림자 취급했어. 친구들도 그날은 엄마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중학교 1학년 때야.
아침에 헤어진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더라. 공중전화를 걸러 갔어. 줄이 참 길었는데 그래도 기다렸어. 집에 전화를 해도 할머니가 없을 확률이 90%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다정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신호가 가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으시더라.눈물이 왈칵 맺혔지. 할머니는 일 없이 전화할 리 없으니 걱정하시며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는데 엄만 '그냥'이라는 말만 반복하다가 먹고 싶은 게 있다고 저녁에 해달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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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와하하하 웃으셨어. 당연하지. 줄까지 서가며 전화하는 수고를 하고는 흔하디 흔하고 싸디 싼 콩나물이 먹고 싶다고 하니... 맞아, 그날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그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익숙한 그 맛을 찾았던 것 같아. 그리고 밥상머리에서 그날 있었던 일을 쏟아 놓을테니거기 함께 있어달라고, '그럴만했다... 선생님이 잘못하셨네...'라는 위로를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 먹은 콩나물 맛은 최고였지. 할머니의 손맛 알잖니.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고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동안 마음속 작은 분노와 서운함이 콩나물과 함께 꿀꺽 넘어갔단다. 할머니 콩나물 무침은 지금 엄마가 너희들에게 해주는 아삭한 콩나물 무침이 아니라 숙주나물처럼 흐물흐물한 콩나물 무침이었어. 엄마가 결혼 후 알게 된 건데, 할머니는 콩나물 무침을 할 때 콩나물을 데치고는 찬물에 씻지 않고 무치셨다더라. 그래서 콩나물들이 뜨끈한 물에 들어갔다 나와 축 처져 있었던 거지. 엄마가 한 콩나물을 맛보시고는 '찬물에 씻어야 이렇게 아삭하구나... 평생 배운다...' 이러시더라. 엄마는 할머니 방식이 아닌 엄마 방식으로 아삭하게 콩나물을 무치지만 가끔은 양념이 쏙 밴 흐물흐물한 콩나물 무침이 더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울 큰 딸, 엄마 콩나물이 최고라고 늘 말해 주어 콩나물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 졌지. 일단 뚜껑을 열고 끓는 물에 콩나물을 넣고삶아. 반드시 뚜껑을 중간에 열었다 닫았다 하면 안 돼. 비려지거든. 그러고 나서찬물에 헹궈내야 아삭해진다. 그다음 물기를 충분히 뺀 후 간을 해야지. 엄마는 설탕을 먼저 넣고 나중에 소금 간을 해. 설탕을 먼저 넣어야 삼투압을 완화시키고 아삭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대. 그리고 콩나물의 단맛도 유지시키고 간이 골고루 배게 한다고 하네. 할머니는 마늘도 파도 넣지 않은 무침이 어딨냐고 하셨지만 고춧가루로만 향신료 냄새를 낸 콩나물도 깔끔하고 맛있어. 조물조물 무친 후 마지막에 참기름과 통깨를 넣으면 완성. 몇 그램이니 몇 스푼이니 하는 레시피는 줄 수 없구나. 그건 손 맛이 아니지. 하하하~~
이 간단한 음식이 엄마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대를 이어 울 딸의 입맛도 사로잡았구나. 너희가 상처받고 힘들 때 생각나는 엄마 반찬이 있으면 좋겠다. 너희들도 너희의 아들, 딸을 위한 엄마 손맛 하나는 치트키로 장착하렴~~
그림 출처: 핀터레스트_ Eva Armi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