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이는 입관이 끝난 뒤에 내가 떠날 채비를 하자 그냥 혼자 있는 게 무서웠는지 좀 더 있어 달랐고 말했다. 그런 놈이 아닌데 자꾸만 근처에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해서 난 한숨을 크게 쉬고 녀석을 따라나섰다. 우린 장례식 장 1층의 간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다 녹지도 않은 설탕이 둥둥 떠다니는 자판기 카지노 게임 추천를 두 개 뽑아놓고 우리는 피로함에 얼굴을 문질러댔다. 내가 콧구멍과 인중을 집중적으로 문질렀고, 종범이는 목과 정수리를 비벼댔다. 녀석이 어깨에 쌓인 비듬이 묘하게 창밖으로 보이는 눈과 어우러졌다. 그리고 우린 별말 없이 카지노 게임 추천만 마셨다. 문득 자판기 한 달 수익이 궁금해졌다.
카지노 게임 추천 옆으로는 가슴에 반짝이 브로치가 크게 박힌 검은 터틀넥 셔츠를 입은 한 중년의 여자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를 앞에 두고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 새끼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내가 그때 일을 칠 줄 알았어.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남자는 장초를 피우며 그 얘기를 듣다가 옆에서 경비가 담배 끄라고 소리를 지르자 아 씨 하면서 바닥에 꽁초를 문질렀다. 마치 스러져가는 연기가 내는 소리처럼 불이 아 씨하면서 꺼져갔다. 그는 꽁초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면서, 그걸 그때 알았으면 말렸어야지. 짜증 나게 뭘 지금에 와서 알았다고 난리야. 그만 울어 심란하니까 씨. 그는 주머니에 있던 냅킨을 꺼내 건넸다.
장례식장에서 퍽 어울리는 대화 내용이었다. 난 그럴수록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사람들이 가득 찬 성수역 카페에 앉아서 활기찬 주말 오후를 느끼고 싶었다. 점원에게 무슨 치노 카노 따위의 음료를 시키고 라디오스타 짤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이런저런 의심이나 원망에 근거한 이상한 결론이 내게도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봤다.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 어떤 얘기들이 나올까. 저 여자처럼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하면 어쩌지. 저 남자처럼 아 씨 하면서 주말에 장례식에 온 걸 불평하려나.
붙잡았으면 뭐라고 할 말이 있어야 할거 아냐 생각을 하는데 한참만에 카지노 게임 추천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얼마 전에 회사 그만두고 딴 거 한다고 하지 않았냐. 너 이제 다르게 살 거라고, 재밌는 거 하고 살 거라고 그랬는데. 난 얼마 전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뭔가 다른 일을 해보려고 떠들고 다닌 8년의 시간이 녀석에게는 ‘얼마 전’ 정도로 보였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무는지 차가운 회색 황혼 속에 드문드문 불 밝힌 창들이 반짝이고, 그 때문에 길에 쌓인 눈이 더 희어 보였다. 때 아니게 유럽에서 내가 자주 다니던 드니즈라는 카페가 생각났다. 다시 거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할 텐데.
나는 종범이와 마주 앉아서 딴생각만 했다. 창밖으로 계절이 지나가는 게 다 보였다. 조금 있으면 이 죽음일랑 잊고 봄날을 맞을 것이다. 봄에 어울리는 클럽을 만들고 새 단장 어쩌고 하면서 매년 반복하는 봄과 청춘을 입에 올리겠지. 꼴 보기 싫은 종범이에게 눈을 돌렸다. 나 재밌고 신나는 거 하지. 한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뭔 소리야. 녀석이 장례식장에서 빌려 입은 양복이 어색했다. 평생 후드티 입고 개발자만 하던 놈이라서 그런지 태가 나지 않았다. 야 구두도 빌려야지 양복에 스니커즈가 뭐야 이 미친놈아. 아버지 가시는데 스키너즈 신는 게 말이 되냐. 야 우리 아버지도 스키너즈 신으셨어. 그래서 일부러 신은 거야. 지랄하네. 맞아 지랄 같은 소리다. 바깥 눈밭에서 비쳐 오는 희뿌연 빛 때문인지 종범이는 보통 때보다 더 파리해 보였다. 두 눈 사이에 나 있는 두 줄의 주름살도 더 짙어 보였다. 스무 살 초입의 청년은 이제 전자담배 없으면 한 시간도 버티질 못하고 시들었다. 야 양말 밖으로 유니클로 히트텍 보인다, 칠칠치 못한 새끼.
배가 고프고 속이 쓰렸다. 나는 할 말이 없어 푸념을 늘어놨다. 밤새는 게 무서운 거다. 우리 나이에는 이제 잠도 잘 자야 해. 저속노화 알지? 하루만 밤새도 3일이 망가지는 게 느껴져. 진짜 죽을 것 같더라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은 사라지고, 할 말 없음이 압박으로 느껴졌다. 장례식장 자판기 앞에서 난 우리의 청춘은 종적을 감췄음을 이해했다. 야 힘 빠지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그만 일어서자. 종범이는 설탕이 잔뜩 든 카지노 게임 추천를 후루룹 소리가 나게 혀로 핥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탕으로 기운을 차린게영락없이 아저씨였다. 장례식장까지 맥북을 챙겨 온 개발자 아저씨.
카지노 게임 추천아 너 그거 아냐. 뭐. 너 선아 누나랑 사귀었었잖아. 내가 다 알았는데 아무한테도 말 안 했다. 어떻게 알았냐. 두어 달 만나고 헤어졌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가만 보니 미친 자식이네. 너 왜 갑자기 20년 전 얘기를 하는 거야, 소름 끼치게. 그걸 왜 지금 말해. 우리 아버지 죽었는데 선아 누나 얘기가 왜 나와. 애 낳고 잘 사는 사람 얘기를 왜 해. 스토커네 이 새끼. 지금도 훔쳐보는구먼. 암튼 너 내가 선아 누나랑 만났던 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동네 앞 교회 모퉁이를 도는데 거기 벤치 하나 있었잖아. 너네 둘이 거기서 막 꺄르륵 대며 웃으며 놀고 있더라고. 진짜 꺄르륵 소리 내면서. 녀석을 한 숨을 푹 쉬고 아 씨 거렸다. 아 씨.
카지노 게임 추천는 보기 드물게 재치 있고 세련되면서 표현력이 풍부한 선아 누나를 따라다녔지만 번번이 까였다. 그러다 군대 가기 전에 잠깐 그 누나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카지노 게임 추천나 나나 군 기피자였는데, 그 두려움을 나는 장교 임관이라는 명목으로 지연시켰고 녀석은 대책 없이 선아 누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선아 누나는 곧 군대 갈 놈이니까 불쌍해서 만나줬는데 녀석은 덜컥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그 결정을 하자마자 누나는 바로 녀석을 차버렸다. 녀석의 미래도 내 미래도 그렇게 뒤틀렸다.
우리 옆자리에서 있던 브로치 여인은 사라지고 아 씨 남자만 남아서 담배를 한대 더 피우고 있었다. 문득 나도 다시 저런 모습으로 여기에 오겠지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데 이 순간 내 마음속에 들끓던,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사라지고, 이 장례식장 카지노 게임 추천이 지속과 안정이라는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종범아 맥 빠진 얘기 그만하고 이제 집에 가련다. 그래 수고했어. 고마워 다 도와줘서. 그래 별거 아냐. 난 좀만 더 앉아 있다 갈게. 여기서 뭐 하게? 글 좀 쓰게. 지랄은 무슨 글이야. 뭔 글? 너에 대한 글, 너희 아버지 장례식에 관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