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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진 Mar 06. 2025

프리츠커! 프리츠커!

카지노 게임에 대한 진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한국 카지노 게임 프리츠커

왕슈의 프리츠커 상 수상당시 유명한 모 교수님은 왕슈의 논리나 이론이 약하다면서 프리츠커상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비판했었다. 물론 프리츠커상이 모두가 인정하는 완벽한 카지노 게임인증서는 아니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분야에서 세계가 공히 인정하는 권위적 상으로 카지노 게임가(이글의 모든 카지노 게임가는 법적 자격자인 카지노 게임사를 지칭한다.) 개인의 카지노 게임적 성과에 부여하는 것으로는 유일무이하다. 프리츠커상은 카지노 게임계의 검증된 인증이라는 의미이며, 핵심은 카지노 게임적 가치의 결과물이 카지노 게임으로 입증된 카지노 게임가를 인정하는 것이다.


어제 중국인으로는 두번째로 류자쿤이 수상했다. 벌써 베트남 카지노 게임가이름도 오르내리고 일본의 이시가미 준야도 오르내린다.


노벨상 트라우마처럼 프리츠커상에 대한 언급이 한국 카지노 게임계에서 9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언론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서... 그리고 정부에서는 2010년 이후 발언하기 시작했다. 참 우스운 것은 한국정부 내에 정책으로 프리츠커 수상을 지원하는 내용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이 정말 후진국스러운 발상이어서 한심하다 했다.


미래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키우기 위한 "선진문물 받아들이기"같은 19세기적 발상인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카지노 게임에도 식민지 시대가 참 나쁜 것이 카지노 게임의 가치에 대한 접근이 스스로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수많은 학교 기구에는 카지노 게임가를 키워내는 전공도 내용도 없었다. 기능공이나 기술자를 키우는 교육은 있어도... 사실 공학대학이라는 것 자체가 일본 식민시대에 우리나라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기술학교 정도였으니..


그래서 공대를 가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 했는데, 카지노 게임은 그나마도 유학생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다. 제도학교나 단기대학정도도 드물었다. 산업혁명 이후 근현대 카지노 게임 초창기의 혼란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 일본은 서구와 거의 동일한 흐름을 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우리나라 유학생들이 카지노 게임을 제대로만 전공하고 공부한 사람들이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카지노 게임은 기획과 전략의 출발점이라 그랬는지 모르고,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카지노 게임가로 교육받아 일선에 나온 우리나라 사람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제도학교나 단기대학을 나온 몇몇은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카지노 게임사 자격을 취득하고 카지노 게임사사무소를 개설한 경우는 있었으나 그나마도 열손가락 미만이다.


이런 풍토에서 해방 이후 카지노 게임은 건설의 후속조치(? 설계는 대충 하고 시공으로 마무리하다 보니 부실공사로 되고)처럼 여겨졌고, 시장이나 정책이나 모두 건설=카지노 게임으로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카지노 게임은 그래서 건설이다.
프리츠커상은 건설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수상자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카지노 게임이 건설이 아닐때가 오면 받으리라!!


한국에서 이토록 프리츠커상을 이야기하는 배경에는 카지노 게임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지노 게임계조차도 카지노 게임의 가치에 대해서 이해도가 낮다. 여전히 건설 산업의 부속으로 이해가 크고 부동산의 교환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 크다. 한마디로 돈만 남은 것이다. 이런 인식은 결국 카지노 게임의 시간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나 주장, 또는 관심이 불가능하다. 카지노 게임의 역사적 궤적에 대한 존재 인정 같은 것이 어려운 이유다.

영등포에 가면 오래된 카지노 게임보존과 새로운 카지노 게임의 조화에 대한 시도로 만들어진 타임스퀘어가 있다. 국내 굴지의 카지노 게임사사무소가 설계한 이곳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이 있는데, 우습게도 거의 새로 지은 재현 건물이다. 명동의 신세계 백화점 역시 미츠코시 일본 백화점의 흔적인데, 원래의 석조조각이 아닌 교체된 외장이다. 더 코미디는 성수동에 도시재생 (일본에서 만든 용어로 범위가 매우 넓은 대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용어고 공격대상이 되면서 벽화나 낡은 창고건물 보존 같은 것으로 축소되어 버렸다.) 운운하면서 낡은 벽돌 건물 유지하라 해놓고, 실제로는 다 헐어버리고 이미테이션으로 만들어진, 공모전 당선작서울도시제조허브도 있다. 단기 연극 세트장 꾸미는 것도 아닌데 이런 연극 영화세트 같은 접근의 카지노 게임이 횡행하는 한국이다.

프리츠커상은 매번 다른 팔색조식 접근의 카지노 게임가에게 주는 상이 아니고, 카지노 게임에 대한 사유적 표현과 변화의 흐름을 드러내면서 고민하는 창작으로서 평가한다. 카지노 게임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기능과 관점, 미학적 결과로 평가한다. 최근에는 그런 카지노 게임가의 시선이 사회에 있는지, 역사에 있는지, 장소에 있는지 등등 카지노 게임의 주제와 철학을 더 확산해서 평가한다. 몇 해 전 이런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 듯한 데이비드 치퍼필드 상의 수상을 두고 한국 카지노 게임계가 프리츠커상 수상 평가가 카지노 게임적 미학에 주목했다고 결 벗어난 언급들을 했었다. 천만에!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자본과 정치로 흔들리는 21세기 카지노 게임사적 흐름에서 카지노 게임적 미학의 본질을 재조명하는 위치로 평가받은 것이다.


우리도 프리츠커 받을 수 있다고 희망하고 발언하고 주제를 삼는다. 언론도 이야기하고, 정부도 이야기하고, 학교도 이야기한다. 필드에서도 물론이다.


그런데 가능할까? 현재 후보는 있을까? 나도 한국인 누군가가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야 받을 수 있을까?

1. 카지노 게임가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현상공모와 설계방식이 가능해야 한다.

2. 한국 카지노 게임계 역시 새롭고 창의적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 관용적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카지노 게임을 이리 판단하는 심의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

3. 카지노 게임적 창작을 응원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카지노 게임계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

4. 카지노 게임법의 해석과 권한, 규정을 완화하거나 카지노 게임가의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5. 카지노 게임실현과정인 사공과정에서 임의로 바꾸거나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존중감이 필요하다.


사실, 카지노 게임계 스스로의 치열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 발행되는 잡지들의 카지노 게임들을 보면 거의 비슷비슷하다. 무채색, 기하학의 원초적 도형으로 모범적 퍼즐 구성… 일조권 사선제한으로 만들어지는 디지털 트윈같은 유사한 형태 시리즈들.... 물론 법과 제도,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한계는 익히 알고 있다만....


노력하면 언젠가 한국카지노 게임가(사)들도 프리츠커 받겠지....만


적어도 상당 기간 한국의 카지노 게임에 대한 시선이 부동산과 건설에 집중하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디. 그냥 디자인 중심의 상은 가능하니 계속 도전해서 GOOD DESIGN 상을 받기라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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