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이 카지노 게임을 맞이하는 서로 다른 방식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낸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족처럼 지내온 그 아이가 곧 떠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예감을 서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말을 못 하는 동물이지만, 스스로 카지노 게임을 감지하고 마지막 모습을 주인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 집에도 길고양이가 들어와서 약 3~4년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또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죽기 며칠 전부터 잘 먹지도 않고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길에 집 건너편 가로등 아래에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또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햇볕이 잘 드는 그곳에 누워 있다가 생을 마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후의 순간에도 우리 집 영역에는 없었다.
고래낙하라는 말이 있다.
고래는 때가 되면 스스로 카지노 게임을 느끼고, 살던 곳에서 최대한 멀리 이동한 후 카지노 게임 직전에 온 힘을 다해 바다의 깊은 곳으로 잠수한다.
그리고 깊은 심해에서 최후를 맞이한다고 한다.
많은 동물들이 스스로 카지노 게임의 시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왜 자신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카지노 게임을 맞이하려 하는 것일까?
자신의 시체가 썩어 사는 곳을 오염시키고 후손들에게 병을 퍼뜨리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마지막 흉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일까…
인간은 스스로 카지노 게임의 순간을 알아차릴 수는 있을까?
나는 아직 삶의 경계를 느껴본 적이 없다.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고통의 순간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의학적으로 카지노 게임 직전까지 간 적은 없다.
반백 살이 되었지만, 아직 노화로 인한 카지노 게임을 생각할 정도의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궁금하다. 과연 나는 카지노 게임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알아차림 후, 온 힘을 다해 살던 곳을 멀리 떠나고 싶어 할까?
내가 지켜봐 온 카지노 게임은 그리 많지 않다.
몇 년 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적이 있다. 법적으로는 나의 친할머니지만, 아버지의 계모였기에 어릴 적 자주 만나지도 않았고, 만났을 때도 손자인 내가 살갑게 대접받지는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들은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슬프지 않았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작년에는 일하면서 알게 된 카메라 감독님께서 돌아가셨다.
나보다 다섯 살 많으셨고, 같이 지방으로 출장도 자주 다녔으며 쉬는 날에는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던 분이었다. 몇 년간 얼굴을 보지 못하다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카지노 게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50대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인생이 안타까웠고, 남겨진 딸과 배우자를 보니 더욱 슬펐다.
먼 가족보다 가까운 지인의 카지노 게임이 더 슬픈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카지노 게임은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을 강제한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무덤이라는 징표를 만들었고, 제사라는 기념일을 남겼다.
카지노 게임의 당사자 역시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인류가 무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1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무덤은 이스라엘과 이라크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관련된 것으로, 단순히 시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묻힌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는 인간이 카지노 게임을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무려 10만 년 전부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고인은 사후 세계를 두려워하여 살아 있을 때 대비했고, 주변인들은 죽은 자의 빈자리가 아쉬워 기념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부질없다. 사후를 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짓인가… 주변인들이 기억하도록 만든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이 점이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동물들은 주변에 카지노 게임을 알리지 않기 위해 멀리 떠나서 카지노 게임을 맞이하지만, 인간은 죽을 때가 되면 멀리 갔다가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는 주변인에게 카지노 게임을 알리고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카지노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카지노 게임은 ‘무’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리라면, 누구나 결국 죽는다는 것이다.
그 진리를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련을 갖지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병들어 죽든, 다른 동물에 잡아먹혀 죽든, 나이 들어 죽든, 우연한 사고로 죽든 모두 당연한 이치, 순리, 운명이라고 여긴다.
무지하게도 인간만이 카지노 게임을 아쉬워하고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