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4 : 혼자 상처받는 이들에게
결코 상처 줄 것 같지 않았던 너희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들의 진심이나를 다치게 할 리 없을 것 같았다.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오는 신호다.
이쯤 되니, 어제의 사건—발단, 전개, 절정의 연출자가 나였다는 걸 마지못해 수락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말도 내가 지어야 하지 않을까.
어제 합평 시간에 들은 세 사람의 코멘트는 내 예상과 달랐다. 글의 내용보다는, 책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나는 그 점을 놓쳤고, 그래서 부끄러웠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고, 미성숙한 못난 모습을 들켜 화가 났다. 항상 ‘우리’였던 우리가, 어느새 ‘나와 나머지 셋’이라는 구도가 된 것 같아 배신감도 들었다.
어렵게 자백을 끌어냈지만, 내 안의 치사함이 또 고개를 들었다. 결국, ‘그냥 나 다 싫어’라는 투정 섞인 선언까지 하게 됐다. 머릿속으로 앞으로 마주할 곤란한 상황들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마치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처럼, 멀티버스가 있다면, 우주 어딘가에서 나와 똑같은 상황을 겪는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어떤 결말을 맞는지 엿볼 수 있을까. 지구에서는 보나마나나는 백전백패인데. 그들 없이 이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중독되었는데...
내가 졌다.
갈등.
관계에서의 갈등엔 내 안의 불안과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렇게 글로 써 보니, 내 마음이 편해진다. 나를 객관화하는 능력을 기르려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이루어 간다.
오늘 토요일 중요한 일을 결국 해낼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중요한 일이란
내일부터 단톡방에서괜히무게잡지말고,
예전처럼 신나게 까불거리기다.
그리고 상처주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상처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 하는 것.
P. S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는 가시가 있다.
하지만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 덕분에 아무나 꺾지 못했고,
끝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꽃잎을 틔울 수 있었다.
가시가 있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로 살 수 있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온전히 보는것이다.
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같은 콤플렉스가 있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너도 찔리고 나도 찔리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같은 꽃잎을 틔우려고 그러는지 누가 알겠는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지키고 있어서,
지금 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착각하고 살고 있는지도모를 일이다.
나를 지켜주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내가 찔려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꽃잎을틔우려면 필요한 고통일지 모른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상처받고 아픈이들에게...
괜찮다고,
단단하게 버티자고,
위로를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