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만든 오아시스
<복음과 상황 5월호에 실린 '다정'에 관한 글을 읽다가 "외로워본 사람만이 다정할 수 있다"는 말, "외로움의 층이 쌓여 다정이라는 행위와 감각을 낳는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오아시스는 사막에서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다. 눈 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열대지방에서 꿈꾸는 로망이다. 그렇게 따지면, 다정은 매정과 비정 혹은 몰인정에 둘러싸여 지내는 이가 스스로 판 우물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다정에 둘러싸여 지낸 이에게 다정이 딱히 더 귀할 일이 없을 테니.
버텨내고 지켜내는 삶 속에 '무료 카지노 게임'이 깃드는 순간은 매우 드물다. 있어도 가까운 거리에서 만지고 안을 수는 없다. 잠시 어깨를 토닥이고 스쳐 지나간 무료 카지노 게임의 온기를 붙들어야 한다. 저 멀리 희미하게 비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등대를 바라보며 어두운 밤을 버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무료 카지노 게임'을 감지하는 눈이 밝아진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기억하는 감각이 촘촘해진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맛을 음미하는 후각과 미각이, 일상의 매운맛으로 얼얼해진 혓바닥을 기어이 잠재우고 살아난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짓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외로운 사람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기른다.
그렇게 길러낸 다정은 '과도한 눈치보기' 혹은 '경계 없는 내어줌'과는 다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달랐다. 외로움에 허기져 양잿물이라도 벌컥벌컥 들이켜는 건 '다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정'은 평소 외로움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대한 고민이 흔적으로 새겨져, 상흔 대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애정의 모양으로 살아남은 것"이라는 표현이 퍽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상대방이 하는 '선택과 집중'이 왈츠를 추듯 만나는 찰나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순간'이라 믿는다. 마음만 성급한 스텝으로 서로의 발을 밟지도 않고, 너무 세게 부둥켜 안아 함께 고꾸라지지도 않는 그런 '마주침'이 물 흐르듯 만들어내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찰나.
삶의 모든 순간을 버티기 위해서라도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추구하며 살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무료 카지노 게임'을 공부하며 살 것 같다. 그냥 생겨먹은 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나에게 또 다른 '산소'였던 것이다. 그걸, 이제야 알았을 뿐.
* 사진 속 글은 <복음과 상황 2025년 5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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