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 살면 철마다 남편과 금오산에 가게 될 줄 알았다. 대구에 살 때 데이트 코스로 팔공산이나 앞산에 다녔듯이 금오산 주변을 걷고 맛집에도 다닐 거라 기대했다. 봄이면 벚꽃을 구경하고 가을이면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부부의 모습, 서로의 손을 잡고 커피를 마시며 저수지 둘레길을 산책하는 남편과 내 모습을 당연하게 그리고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구미에 오가던 시기, 구미역에 마중온 남편의 차에 오르면 자연스레 금오산 방향으로 올라가곤 했다. 저수지를 따라 막다른 길 연수원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오거나, 전망대 쪽을 들러 신혼집으로 가곤 했다. 어쩌다 한 번씩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고 금세 돌아오는 길이 아쉽지 않았다.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 짧은 약혼 기간, 데이트는 결혼 후에 이어질 테니.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나의 금오산 데이트 낭만은 결혼하자마자 깨졌다. 내 시간을 몽땅 가져간 남편에게는 놀랍게도 나와 보낼 시간이 없었다. 남편의 시간에는 언제나 회사와 동료들과 형님들이 있었다. 금오산은커녕 동네 뒷산에 한번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관광지, 식당, 카페까지…. 스무 번쯤 반복해서 데이트 권유가 거절당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청유형 문장을 남편에게 건네지 않았다. 아내를 내버려두는 남편 덕분에 나는 알아서 일을 찾고 취미를 만들고 용기를 쥐어짜 동네 친구도 만들었다. 친구나 여동생과 금오천을 따라 핀 벚꽃을 구경하고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낯선 식당을 탐험할 용기가 부족해 익숙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별다방 같은 곳만 찾아다니다가 나들이를 반복하며 이곳저곳을 드나들게 되었다.
어느날 친구와 채미정을 구경하고 저수지까지 돌고 나니 무진장 허기가 졌다. 주차장 앞 상가에 늘어선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가게에 눈길이 갔지만, 어쩐지 수줍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이열치열을 외치며 옹심이 칼국숫집에 들어섰다.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평일의 식당 벽에는 여름 별미 메밀국수 사진도 있었지만 우리는 바글바글 끓는 칼국수와 감자전을 주문했다. 쫀득한 옹심이를 숟가락으로 잘라 뜨겁고 걸쭉한 국물과 한 입 먹었다. 입천장이 홀랑 까질 듯했지만 구수했고, 면발은 부드럽게 호로록 넘어갔다. 푹 익은 달큰한 감자와 푸짐하게 들어있는 옹심이를 한입 먹고 매콤한 배추김치를 한 조각 먹고 다시 칼국수를 호록호록, 그릇이 빌 때까지 숟가락 젓가락 부지런히 바꿔 쥐어가며 먹는 옹심이 칼국수. 적절한 얇기로 노릇노릇 부쳐진 감자전은 또 얼마나 맛나는지 모른다. 다음에는 차를 두고 와서 막걸리를 마시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는 고소하고 바삭한 감칠맛!
그날 이후 금오산에 갈 때마다 점심은 옹심이집에서 먹게 되었다. 단풍이 물든 계절 여동생과 금오지를 산책한 날이나 동네 친구와 바람 쐬러 나온 봄날이면 옹심이 칼국숫집을 찾았다. 겨울바람이 쌩쌩 불어 걸어다니기 힘든 날에는 뜨끈한 국물을 찾아 또 옹심이를 먹으러 갔다. 맨날 보는 친한 형님들과는 파전에 동동주도 잘 먹고 들어오면서, 내가 옹심이를 먹고 싶다고 하면 ‘금오산? 너무 멀다. 나는 옹심이는 별로!’라는 남편에게 ‘감자전도 있는데….’했더니, ‘감자전? 그것도 별로.’ 건성으로 대답하기에, 나의 최애 맛집은 여자 친구들과만 공유했다.
결혼 후에 남편과 금오산에 아예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친한 동생과 셋이 시청 아래 맛집에서 꼬막 정식을 먹은 겨울날에는 남편이 먼저 금오산에 가자고 나선 적이 있었다. 성리학 역사관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수지 앞이 어수선할 때였는데, 그 앞에 있는 자판기가 특별하다는 거였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 큰일나는 줄 아는 아저씨가 그러면 그렇지, 김이 샜지만 모처럼 야외에서 자판기 믹스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투입구에 천 원짜리를 밀어 넣고 밀크커피를 누르자 치익 소리 후에 딸그락 소리가 났다. 커피가 든 종이컵에는 막대기가 하나 들어 있었다. 뭔가 잘못된 자판기가 아니냐며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과 동생이 낄낄 웃었다. “모르나? 막대기 커피? 구미에서 유명한 건데! 티브이에도 나왔는데 모르다니! 금오산 오면 원래 막대기 커피 딱 마셔줘야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구미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 하나 있었고, 아내랑 나들이라고는 나서지 않는 사람인데? 겨울치고 푸근한 날씨여서 좀 걷자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남편과의 금오산 추억은 이듬해 봄 금오천 벚꽃 축제가 마지막이었다. 벚꽃 축제도 그나마 낮에는 사람이 많다며 나서지 않고 야시장 푸드트럭이 있다고 하니 마지못해 나와서 닭꼬치를 하나 사 먹었던가? 꽃길을 걸은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저수지 둘레길을 함께 걸은 건 결혼 전 밤늦은 데이트날 뿐이었는데, 그날은 하필 맛나게 과식한 찜갈비 때문에 내가 배탈이 나서 급히 집에 돌아왔으니, 금오산은 우리 부부와 별 인연이 없다고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시 옹심이집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가 네 살쯤 된 무렵부터는 아이 손을 잡고 함께 가는 단골 식당이 되었다. 여기는 아이와 가기에도 참 괜찮은 식당이다. 칼국수와 감자전을 어른과 아이 모두 맛나게 먹을뿐더러 어린이 돈가스도 맛있다. 여동생과 딸아이와 함께 가서 한상 푸짐하게 먹어도 착한 가격에 배가 부르다. 늘 친절한 사장님은 주차장이 복잡할 때면 직접 나와서 주차를 봐주시고, 직원분들도 아이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신다. 주말에 아이와 금오랜드나 탄소제로교육관에 놀러가면 브런치로 옹심이를 먹으러 가는데, 일찍부터 산행을 마친 어른들과 가족들로 오전부터 가게에 활기가 넘친다.
성리학 역사관에 자주 갔던 초여름에도 친구들을 데리고 옹심이를 먹었고, 무지막지하게 더운 날에는 별미 막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살얼음이 동동 뜬 메밀국수도 역시 맛있었다. 드디어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다시 옹심이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곧 결혼 10주년 기념일인데, 아이와 남편과 금오산 나들이를 나가볼까? 옹심이 칼국수를 배불리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하고, 저수지 둘레길도 한 번 걷자고 말해볼까? 여전히 옹심이는 안 먹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이 글을 먼저 내밀어볼까? 그때도 뚱한 얼굴이라면 기념일은 각자 보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