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아 남편에게 외치고 싶었다. "차가 없으면 시가에 갈 일이 생겨도 못 가니 아쉬울 것 하나 없다. 놀러 다닐 때는 동생 차를 얻어 타면 된다. 이제 곧 학교에 가는 딸아이도 버스 타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 필요할 때는 택시 타면 된다. 네가 내어주지 않는 차 필요 없다. 너나 실컷 타라!"
물론 이런 말을 대놓고 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이렇게 좀스러운 험담을 시작한다.
며칠 전 새 차가 나왔다. 하얗게 반짝이는 커다란 suv, 내가 원하는 차가 아니었다. 18만 킬로를 탄 차를 바꿔야 한다면 타던 차와 비슷한 새 승용차이기를 바랐다. 운전 경력이 10년이니 조금 큰 차도 금세 손에 익기 마련이겠지만, 겁이 많아서 익숙한 크기의 차를 타고 싶었다. 세 식구 타기에 충분하고 큰 차보다 천만 원 이상 저렴한 가격이 합리적이니까. 시원찮은 수입에 쪼들리는 생활비를 보면 큰 차를 굴릴 때가 아닌데 어쨌든 우리 집에는 크고 번쩍이는 새 차가 생겼다. 남편과 아이는 들떴지만 나는 심경이 복잡했다. 이제 오래된 회색 승용차는 내 차지가 되었다. 그깟 똥차를 마음껏 탈 수 있게 된 상황에 속이 뒤집힌다.
몇 년 전부터 시어머니가 돈을 좀 보태줄 테니 새 차를 알아보라고 했었다. 오래된 차가 아무래도 걱정스럽다고(당연히 잔고장이 많았다), 차를 골라보라고 했다. 애가 하나 더 생기면 지금 타는 차는 너무 작지 않겠냐고 덧없는 기대를 내비쳤다. 애가 생길 일은 없기 때문에 하하 웃고 말았지만, 차가 한 대 더 생기면 내가 편하겠지 싶어 남편이 구경하는 차 목록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시어머니가 세 번째쯤 차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는 나도 적극적으로 시모 말에 맞장구를 쳤다. 돈을 보태준다고 하실 때 사야지, 언제 차를 사겠는가? 매달 여윳돈 한 푼 남지 않는데.
배달음식을 하나 고를 때도 한 시간씩 걸리는 남편이 선뜻 차를 고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시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결정을 독촉했기 때문에 시가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말을 꺼냈다. "차를 얼른 고르면 안 되겠나? 어차피 나는 헌 차 탈 테고 당신이 좋은 차로 고르면 되잖아."
남편은 바로 언성을 높였다.
"우리가 카지노 쿠폰 두 대나 굴릴 형편이 되나? 엄마도 카지노 쿠폰 바꾸라고 한 거지, 지금 있는 차까지 타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보험에 주유비에 유지비 따지면 차 두 대 못 탄다. 돈도 없는데 무슨 카지노 쿠폰 사냐? 돈 천만 원 보태준다고 카지노 쿠폰 바꿀 수 있는 줄 아나?"
그러니까 형편에 맞게 저렴한 카지노 쿠폰 사면 되는 일 아닌가? 남는 똥카지노 쿠폰 받아 타겠다는 아내를 비꼬기에는 좋은 차 타고 싶어 하는 본인의 허영이 더 우습지 않나? 떠오르는 말은 많았지만, 아이 앞에서 같이 언성을 높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차가 자주 고장 나니까 도와주신다고 할 때 고르는 게 좋지 않겠어? 큰돈을 한 번에 넣을 수는 없잖아. 어차피 차 살 때는 다 할부로 하는 건데."
무엇이 문제인지, 돈이 없어 불만인지, 남편은 더욱 기분 나쁜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가 그런다고 같이 신나서 부추기지 마라! 차 사는 건 큰일인데 마구잡이로 급하게 밀어붙이는 게 싫다고! 너는 집 살 때도 그러더니! 또 이런 식이냐!"
남편은 거의 10년 전에 집 사던 일을 들먹였다. 서두르지 않았으면 2년, 3년 더 기다려 입주할 아파트에 가도 충분했다고, 요즘 그 아파트가 얼마나 비싸졌는가 보라며.
콧방귀를 뀔 뻔했다. 시모가 밀어붙이고 내가 알아보지 않았더라면 월세 투룸에서 오늘까지도 살고 있었을 걸? 당신은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어서 아무 결단도 못 내렸을 걸?
이 말도 속으로 삼키고 대꾸했다. 차분하게 감정을 싣지 않으려 애썼지만 온화한 보살까지는 될 수 없었다.
"우리 집 좋잖아. 당신이 집 문제를 이렇게 마음에 담아놓은 줄은 몰랐네. 나는 집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해서 그때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차는 다르다. 정말 상관없다. 어머님이 나한테 자꾸 차 바꾸라고 하셔서 말한 거다. 당신 마음대로 결정해라. 새 차 안 사도 되고 사도 된다. 당신이 운전하고 다닐 차니까 나는 이제 이 문제에서는 빠질게. 전적으로 당신 결정에 따를게."
남편은 씩씩대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뱉었다.
"사람을 아주 등신 취급하네."
내가 사람을 등신 취급해? 네가 나를 거지 취급한 게 아니고? 집 문제로 마음 고생한 일들과 카지노 쿠폰 쓸 때마다 눈치를 보던 때가 떠올라 분한 눈물이 왈칵 솟았다. 다시 한번 말했다. '나에게는 집을 가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했고, 이 집 산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큰돈 쓰는 일을 서둘러 결정하는 건 옳지 않으니, 당신 결정을 따르겠다고. 차에 관해서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그날 이후 어떤 말다툼에서도 집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자동차가 필요할 때마다 나는 비굴해졌다. 애걸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차는 주로 내가 타고 본인은 자전거나 타겠다던 허황된 선언을 믿은 적도 없었지만, 걸어가도 될 회사까지 기를 쓰고 운전해서 가는 남편은 내가 가끔 차를 가지고 나가면 꼭 언제 오냐고 물었다. 아이가 하원하는 4시 전에는 무조건 들어가는데, 아이를 챙기지는 못할 망정 2시에 차를 타야 한다고 나를 서두르게 만들었다. 먼 곳에 볼일이 있어 며칠 전부터 차를 쓰겠다고 약속해 놔도 당일에 어겼다. 본인이 미용실(도보 10분 거리)에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주차를 먼 곳에 해놓았다고 꼬박꼬박 잔소리를 했다. 도서관 수업자료 책이 무거워 차를 가져갔던 날, 차키를 점퍼 주머니에 넣어놓지 않고 책상에 올려두었다고 한 소리했다. 다음날 가방이 찢어질 듯 무거웠지만 남편이 건네주는 차 키를 받지 않았다.
"걸어갈게. 당신 차 이제 안 탈 거야. 운전할 일 없어."
시간이 지나 차 쓸 일 있으면 쓰라고 선심 쓰듯 하는 말도 거절했다.
"걸어 다닐 거야. 나는 잘 걸어 다니잖아. 당신과는 다르게. 당신도 좀 걸어 다니지 그래?"
아이와 외출한다고 할 때 카지노 쿠폰 타냐고 물으면 대답했다.
"버스 탈 거야. 저녁에 주차할 곳 없다고 뭐라 할 거잖아? 늦으면 택시 탈게. 차는 당신 써."
싸움 이후로 2년 반이 흘렀다. 낡은 차는 그새 더 낡아 중고로 팔아봤자 손해이기 때문에 놔두기로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살림살이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남편이 바라던 크고 비싼 차를 샀다. 계약을 앞두고 옵션을 정할 때, 차 색을 고를 때, 시트 색을 정할 때 남편은 들떠서 시도 때도 없이 내 의견을 물었다. 매번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차가 나온 날 주차장에 보러 내려가지도 않았다. 새 차는 잘못이 없겠지만 타이어에 발길질을 해버리고 싶었다. 남편에게 묻고 싶은 말은 여전히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우리 엄마아빠도 돈을 보태줬으니까, 나도 돈 벌어서 자동차 유지비 내니까, 나도 이 차 타도 되니? 언제 멈출지 모르는 똥차만이 이제 정말 내 차니? 그런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