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고 비위는 좀 상하고 그렇지 뭐
대학에 갔더니 공지사항이 올라오는 학과 카페가 있었다. 그때에는 다음 카페(감성적인 파스텔톤의 텔레비전 광고도 있었다)가 유행이어서 여학생들 다섯 명이 친목카페를 열어 단톡방처럼 썼다. 리포트 관련 소식은 평범한 게시판에올리고(플로피 디스크를 쓰던 시절), 잡다한 이야기는 익명 게시판에 올렸다. 거기에서 스무 살이던 우리에게 중요한 화제는 첫 온라인 카지노 게임였다.
익명게시판이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분위기로 누가 누군지 다 알 수 있었다. 어느 밤 남자친구와 첫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한 아이가 글을 올렸다. "첫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맥주맛? 소주맛?"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남자친구가 자꾸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했고, 봄밤이 따뜻하다며 강변에 산책을 자꾸 권했고, 부자연스럽게 으슥한 다리 밑으로 자꾸 손을 이끌었으며, 갑자기 껌을 내밀었다고 했다. 우리 시절에도 이미 옛날 영화라 본 사람이 거의 없었던 영화 '프렌치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보았느냐는 질문도 했다고. 글을 읽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커플의 얼굴을 잘 알았기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드름 자국이 많은 남자애와 너무 예뻤던 내 친구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하다니!! 내 친구도 원했을까? 좋았을까?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친구는 동아리에서 만난 오빠와 동네 골목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허기진 느낌을 좋아한다던 잘생긴 오빠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굉장히 잘한다고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 그냥 해 보면 아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잘하는 사람과 첫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하면 좋지 않을까?
그때 나와 친구는 두세명의 복학생 남자선배들과 자주 술을 마셨다. 스물넷, 스물여섯 쯤 되는 선배들이 밥과 술을 사주며 웃긴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바로 윗학번 선배들이 기강을 잡으려 꼴같잖은 짓거리를 많이 하는 바람에 오히려 복학생 선배들이 편했다. 영화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선배들은 1학년인 우리가 야, 너 해도 개의치 않았고 영양가 없는 사람들인만큼 부담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중 스물넷인 선배와 내가 사귀게 되었는데, 말만 사귀는 사이일 뿐, 여전히 소주를 자주 마시며 무리 지어 다니기만 했다. 데이트라고 부를 만한 경험은 세 번도 되지 않았다. 둘 다 서로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이 분위기를 이끌어가서 커플티도 사 입었었다.
나의 첫온라인 카지노 게임 상대는 이 선배였다. 그날도 또 다른 복학생 선배네 동네에서 소주를 마시며 놀다가 남자친구인 선배가 택시를 태워주겠다고 나를 따라왔다. 아주 늦지는 않은 밤이어서 번화가 길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좀 있었다. 횡단보도인지 가로등인지 근처에서 별로 분위기도 잡지 않고 얼떨결에 한 첫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낭만이 없었고, 로맨스 대신 뭐라도 찾는 심정으로 찾아본 단어는 효능.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효능이 있었다면 과음으로 더부룩하던 속이 가라앉은 것 정도였다. 그 후에도 술을 많이 마시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한 두 번 더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친구들과의 익명 게시판에 "소주맛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괜찮더라."라고 댓글을 달았다.
서로 남자친구, 여자친구라고 정하기는 했어도 시시하기만 했던 우리는 결국 여름방학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던 선배는 먼 곳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전화가 잘 안 될 거다라고 거짓말을 했는데(물론 나는 나중에서야 거짓말이란 걸 알았지만, 화도 딱히 나지 않았다. 본인답게 비겁하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 나도 전화와 문자를 잘하지 않았다. 그러다 광복절에 비장한 목소리로 연락을 해서 술집에서 만났더니, 혼자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는 겨우겨우 쥐어짜며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 알겠다고 말하고 일어나려니 굳이굳이 마지막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하자며 사람을 붙잡고 얼굴을 마구 들이밀던 선배를 억지로 떼어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컴퓨터를 켰더니 마침 msn메신저에 있던 동호회 친구가 오늘 헤어졌다고 하는 바람에 꺄꺄 하며 나도 방금 헤어졌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그날의 재미있는 추억이다. 헤어지는 마당에 마지막 온라인 카지노 게임라니, 20년도 더 되었지만 역시 우스꽝스러워서 실컷 놀려줄 걸 싶기도 하다. 시간이 좀 지나서 내가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고 또 다른 선배를 사귈 때도 구남친이 된 복학생 선배와 계속 놀았다. 이 무리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고 그도 나도 서로의 존재를 개의치 않았다. 나는 구남친과 친하던 선배와 사귀었고 그는 나중에 나의 절친에게 껄떡거렸으니 뭐.
그러나 가장 불쾌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기억 역시 첫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주인인 이 선배가 남겨주었다. 어느 날 또 비슷한 멤버가 모여 술을 잔뜩 마시고, 선배는 운전을 하기로 해서 맨정신인 날이었는데. 조수석에서 헤롱거리는 나에게 입술을 들이대며 이런 멘트를 한 것이다. "자꾸 이러면 확 따먹어 버린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 머리통에 주먹을 날리고, 개소리하지 말라고 말했다. 무사히(?)집에 돌아왔는데, 이 일이 있고 나서 바로 여름방학이었으니 이게 그와 나의 마지막 데이트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