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댁에 가면 집안 이곳저곳에서 두 분이 쓰신 메모를 보게 된다. 지난해 12월 부모님의 안방 달력에 카지노 게임가 써 놓으신 글은 짧지만 강렬했다.
'누워있으면 죽고 걸으면 산다'
꼭꼭 눌러쓰신 이 문장을 보니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무언가 울컥한 덩어리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듯하다. 2년만 더 있으면 팔순이 되시는 카지노 게임는 작고 마른 체구, 날렵한 움직임을 동반한 빠른 일처리가 특징이다. 하지만 심장기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히 약하시다는 걸 카지노 게임가 쓰러지셔서 입원하신 후에야 자식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기적적으로 중환자실에서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때 우리 세 딸들은 순번을 짜서 매일 카지노 게임 곁을 24시간 지켰다. 막냇동생이근무했던 병원이어서 담당 의사 선생님도자주 병실에 들러 카지노 게임의 상태를 살펴주셨다.
퇴원 직전 담당 의사는 카지노 게임가 차로 15분 안에 종합병원에ㅇ도착할 수 있는 곳에 살아야 하고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이니 요양병원에 들어가기를 적극 권하였다. 카지노 게임는 답답한 곳은 싫다고 하셨다. 우리 4남매는 회의를 했고 요양병원에 들어가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오신 어르신들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으므로 하루를 사셔도 마당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꽃을 가꾸고, 편안하고 익숙한 잠자리에서 주무실 수 있도록 시골집으로 카지노 게임를 모셨다. 집에 돌아온 카지노 게임를 가장 반갑게 맞은 것은 아버지였고 그다음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우리들이 내린 결단은 옳았다. 카지노 게임는 농사일을 줄였고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가 병원에 계신 동안 시골에 홀로 계시며 현관에 놓인 카지노 게임의 신발을 안고 눈물 흘리던 아버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세탁기 돌리기 등의 집안일에 적극 참여하시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들은 일주일에 한 팀 씩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신선한 식재료로 장을 본 후 시골집에 갔고 카지노 게임의 꾸준한 산책의지와 아버지의 보살핌, 자식들의 정성이 모아져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오신 후 카지노 게임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하신다. 카지노 게임는 동네 저수지 둘레로 난 산책로를 하루 한 바퀴씩 걸으신다.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남짓 소요되는 거리이다. 딸들과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하면 아버지는 늘 새로운 곳에 관심을 보이시지만 카지노 게임는 당신이 살던 곳이 제일 좋다고 사양하신다.
2024년 12월의 마지막 토요일. 카지노 게임와 동생, 그리고 나는 끝끝내 대천 바닷가 콘도에서 부모님과 송년회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카지노 게임와 동생과 함께 동네 저수지 둘레길을 걷는다. 언니와 형부만 대천 바닷가 콘도로 떠났다. 함께 걸으며 보니 체구가 작고 마른 카지노 게임의 뒷모습은 멀리서 보면 초등학교 5학년쯤 된 어린이 같아 보인다. 동생은 카지노 게임와 우리들의 산책을 깔깔거리며 핸드폰 비디오로 담는다.
"저기 봐봐. 천둥오리야."
"와~ 많다. 저 천둥오리들 지금 뭘 먹고 있는 거야 카지노 게임?"
"여기 민물새우가 아주 많거든. 겨울엔 사람들도 많이 오지 않고."
"새들의 지상낙원이네. 하루 종일 헤엄치고 놀고, 먹고."
여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본다. 천둥오리가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해맑게 웃는 평화로운 그 얼굴을. 어릴 적 우리가 밥 먹을 때 바라보던 바로 그 미소가 얼굴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걷다가 멈춘다. 구름사이로 숨바꼭질하던 저녁해가 구름에서 완전히 나와 저주지 가득 사력을 다해 찬란한 햇살을 뿌리고 있다.
"저거 봐봐. 반짝이는 거. 나는 저게 참 좋아."
"물결이 빛에 반짝이는 거. 윤슬이야 카지노 게임."
"그래, 윤슬! 얼마나 이쁘냐? 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거 봐. 세상에나!"
"카지노 게임, 내가 누굴 닮아서 감탄을 많이 하나 했더니 카지노 게임 닮았네."
신기하게도 카지노 게임의 얼굴은 소녀의 해맑은 표정과 시끄럽고 번잡한 것을 거부하는 단호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우리 보다 걸음이 빠른 카지노 게임.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날렵하고 여린 몸애 감성이 살아있는 78세 소녀가 우리 앞에 있다.
"저어기 봐라. 사람 키만 한 백로 보이지?"
카지노 게임는 손을 들어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저수지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세 마리의 백로가 거기 있었다. 저수지 가장자리 얕은 물에 서서 물고기를 잡아 저녁식사를 하는 듯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백로는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어른 키만큼 크다고 카지노 게임는 설명한다. 눈이 저녁 햇살을 받은 물결처럼 빛난다.
"백로는 짝을 만나면 평생을 함께 산대. 그러다가 하나가 죽으면 혼자인체로 남은 생을 살아간다는구나."
"그럼 저 중에 한 마리는 혼자된 거야?"
"지난여름 한 마리가 농약 친 논에서 무엇인가를 잡아먹고 시냇가에서 죽었대."
"아, 정말? 너무 가엾네. 사람들 때문에......"
오늘 세 마리의 백로는 조용한 그곳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는 물 위로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아름답고 쓸쓸하다. 카지노 게임는 또 넋을 놓고 백로가 날아오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럴 때 카지노 게임를 보면 정지된 화면 같다. 새가 산 너머로 날아가자 카지노 게임는 얼음땡 놀이에서 '땡'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 일 년에 한두 번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부모님을 모시기보다는 부모님의 일상생활 속으로 내가 더 자주 들어가는 것, 그렇게 부모님의 삶에 스며드는 것이 맞다.'
아름다운 겨울 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며 나의 생각은 깊어진다. 늘 살뜰하게 부모님을 챙기는 동생이 카지노 게임를 촬영하며 활짝 웃는다.
오늘따라 물가의 겨울 감나무에 차갑게 언 감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