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선전물과 시궁창 현실 ①
#1
병원은 아직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르는데,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차피 병원 문패와 교수 이름만 보고 가기 때문에 전공의에게 관심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하며 병원을 굴러가게 만드는 전공의들을 '의사'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공의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며, 있어도 놀면서 배우기만 하는 '잉여 실습생'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정작 전공의들이 사직하자 '의사가 생명을 담보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라고 '의사'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 뿐. 교수는 전공의에게 시키던 온갖 잡일을 'PA 간호사'를 만들어 합법적으로 떠넘겼고 덕분에 대학병원은 여전히 돌아간다. '이제는 전공의가 없어도 된다'는 말까지 나왔고 '전문의 중심 병원'이라고 멋있게 포장도 되어 대한민국이 여전히 선진 의료 국가임을 홍보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그렇게 잊히고, 의료계의 혼란도 성공적으로 수습되었다
...가 되겠냐?
#2
전공의는 대학병원을 굴리는 바퀴 역할을 하는 위치이다. 비록 명령을 내리는 건 핸들(교수)이지만, 가장 낮은 위치에서 온갖 과중한 업무에 짓눌리며 차(병원)를 떠받치고 있었던 건그들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시키는 업무가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내가 본 사례 몇 가지를 회상해 본다.
① 남성 환자 성기 제모
비뇨기과에서는 수술 전날 수술 부위(즉 성기 주변)를 제모한다. 다른 과는 환자를 제모하는 일이 간호사 업무였는데, 비뇨기과는 간호사들이 수치심이 든다며 제모를 인턴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떠넘기는 게 언제부터인가 관례가 되었다. 남자 성기 주변을 제모하다 보면 남성기가 자꾸 방해하기 때문에 그걸 잡고 치우면서 할 수밖에 없는데, 종종 발기하는 게 수치스럽다는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떠넘기는 대상이 가끔 여의사일 때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어떤 여의사 선생님이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느냐? 나도 여자 아니냐?"라고 되묻자, 간호사는 말했다.
"선생님은 의사시잖아요."
② 주말 항암제 조제
항암제는 치료 약이면서 동시에 독성물질이기도 하다. 평소엔 안전한 장소에 격리 보관되어 있다가 사용 시 개봉하여 수액에 섞는데, 문제는 개봉해서 수액에 섞는 사이에 항암제 성분이 공기 중에 떠다녀 그걸 흡입할 수 있다. 그래서 항암제를 수액에 섞는 (이걸 항암제 조제라고 한다) 건 반드시 음압 처리된 전용 방에서 방호복으로 중무장하고 해야 한다. 대학병원은 보통 소속 약사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약사는 평일 칼퇴근에 주말은 당연히 출근하지 않는다. 그런데, 환자들은 금요일에 입원해서 토요일에 항암제를 맞은 뒤 일요일에 상태 보고 일요일이나 월요일쯤 퇴원하고 싶어 한다. 그럼, 토요일에 항암제 조제는 누가 하는가? 그걸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전용 방도 방호복도 제대로 안 갖춰진 환경에서 N95 마스크만 달랑 던져주고 말이다.
항암제는 암과 기형아를 발생시킬 수 있어 가임기 여성은 항암제 조제 업무를 기피한다. 방어 시설을 다 갖춰도 찜찜한 일이다. 먼 훗날 내가 암에 걸리거나, 기형아를 출산하면 과거 위험한 환경에서 항암제를 조제한 업무 때문이라고 사실 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까? 그 때문에 간호사들은 진즉 이 업무에서 손 뗐다. 어떤 여의사 선생님이 "이걸 왜 내가 해야 하느냐? 나도 여자 아니냐?"라고 되묻자, 간호사는 말했다.
"선생님은 의사시잖아요."
③ 방사선 촬영 중인 환자 곁에 있어야 하는 업무
원치 않게 방사선을 계속 쬐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병원에선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CT 찍는 동안 의식 없는 환자의 엠부(호흡기)를 계속 짜고 있어야 한다든지, 난동 부리는 환자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든지 상황에서 누군가는 방사선을 같이 쬐면서 기계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걸 누가 하냐? 당연히 전공의다.
④ 교수의 연구 업무를 '상당량' 보조
카지노 게임 추천는 퇴근 후에도 편하게 쉴 수 없는 온갖 잡일이 많았다. 교수님이 연구를 '도와달라'며 일을 넘기기 때문이다. 그 일은 굉장히 다양하나, 하나같이 지루하고 단순 반복에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모집된 환자군의 정보를 정리하는 데이터 set 엑셀 파일을 만드는 일이 있다. 그게 완성되어야 통계를 돌리든 하니 가장 기초 중 기초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엑셀 파일 양이 매우 방대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당 수십 개의 열로 이뤄진 행이 최소 수백에 많으면 천 단위까지 있으니 그 모양새가 마치 논밭과 같아, 그 칸들을 채우는 작업을 '밭갈이'라고 불렀다.
교수님은 쉴 때 놀지만 말고 (?) 조금만 시간 내서 틈틈이 하면 금방 한다고 하며 "1달 주면 넉넉하지?"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러나, '밭갈이'의 칸을 채우는 정보는 '환자의 의료 정보'로 오직 병원 내에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게다가 모든 환자가 기계적으로 동일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정보가 '딸깍' 몇 번으로 엑셀 파일에 옮겨지는 것도 아니니,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찾아 옮겨야 한다. 그야말로 고된 '삽질'인데, 심지어 병원 밖에서 할 수 없으니 퇴근 후에도 퇴근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죽을 만큼 일을 한 전공의에게 "퇴근 후에 놀면 뭐 하니?"라고 말하는 게 교수님이었다.
난 이게 너무 괴롭고 (졸리고) 힘들어서 어떻게든 단순노동을 줄이려고 마우스/키보드 매크로도 써봤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정보가 동일 위치에 있지 않고,수기 차트로 되어 있는 것도 있어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요즘 AI로도 여전히 힘들 것 같다.
한번은 교수님이 카지노 게임 추천 업무를 덜어주겠다고 의국 비서에게도 '밭갈이' 업무를 일부 할당했는데, 비서가 엑셀 파일을 보더니 자기는 이런 일까진 못 하겠다고 그만둔 훈훈한 일화도 있었다.
모 카지노 게임 추천는 너무 짜증 나서 그냥 데이터를 랜덤 함수로 채워서 제출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차피 교수가 그걸 검토하긴 불가능하니까. 그런 데이터는 대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의미한 결과가 안 나오는) 것이 되기 마련인데, 그럼 교수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카지노 게임 추천의 노력을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운 연구를 또 부탁한다. 시키는 인간도, 하는 인간도 스트레스받는 코미디 같은 업무였다. 이런 사례를 보면 성실하든 아니든 똑같이 병신 되는 게 카지노 게임 추천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일한 곳은 연구 '보조'만 시켰으니 상당히 양반인 편이었다. 나중에 다른 병원 얘기를 들어보니 거긴 교수가 자기 논문(=제1 저자)을 전공의에게 쓰게 시킨 곳도 있다고 하더라. 그런 교수 자격도 없는 놈들이 교수랍시고 요즘 전공의들을 꾸짖고 있더라.
사실 그동안 묵묵히 일해온 게 비정상 아닌가?
#3
수면 부족,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치는 요인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독성물질과 방사선까지. 그런 면에서 볼 때 카지노 게임 추천 생활은 분명 슬기롭지 않았다.
노조도 없는 전공의가 ②, ③, ④ 때문에 나중에 병에 걸리면 산재 처리라도 받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지. 참고로 내 동기 중엔 '알 수 없는 이유'로 전공의 때 유산한 이도 있고, 전공의 마친 뒤 혈액암 진단 받은 이도 있어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심증은 가득하나 대학병원은 뭐 하나 보상해 주지 않았다. 모든 부조리함을 "그래도 나중에 전문의 되면 돈 많이 벌잖아요" 따위 희망 고문으로 덮고, "의사 인성이 어찌 그럴 수 있냐"라고 윽박질러서 지금까지 시스템이 유지되었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4
하필 민감한 시기에 전공의를 미화시킨다며 출시가 밀린 비운의 '그 드라마'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공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폐급 바보로 그려놔서 의사 사이에서도 '기분 나빠서 보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높으신 분에게 내용을 수정 당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올 정도다. 이렇게 바보인 전공의가 일하고 돈 벌게 해주는데, 그런 주제에 어딜 감히 대학병원을 기어 나와 시위하고 있냐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 목적 아니냐는 것. (사직한) 전공의는 항상 바보고, (병원에 남은) 교수님은 맞는 말만 하는 구조는 그 드라마가 '특정 편'에게만 자문을 받은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출신 병원은 달라도 전공의 생활을 해본 의사들은 다 비슷하게 공감하는 그런 슬기롭지 못한 착취 시스템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