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집은 ‘아파트’이다.
건축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파트에 산다.
83제곱미터의 방 3개, 화장실 2개는 기본이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시골로 이사를 가셨다. 특별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지만, 아빠는 흙집을 원하셨다. 엄마는 살고 있던 아파트와 같은 구조를 원하셨다. 카지노 게임 집이 아파트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카지노 게임 집은 아파트이니,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 세대에겐 건축이란 것도 그저 인테리어에 불과하다. 공간을 설계해서 원하는 삶을 산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대형설계 사무소는 대부분 용도에 따라 팀이 나뉜다. 그중 하나는 주거팀이다. 우리나라의 건축법에서도 공동주택은 그 규모에 따라 별도의 법과 행정 절차를 거친다. 주거팀에서 오 년 이상 보내고 나면 다른 팀으로 가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주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주거공간을 계획하기도 쉽지 않다. 그냥 집이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닐 거 같지만 아파트는 다르다.
거대한 땅과 거대한 주차장, 세대별 특화구성, 그럴싸한 컨셉과 다양한 외부공간계획이 잘 짜여야 한다. 크게 보면 거대한 땅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거대한 건축물을 이리로 저리로 앉혀서 최대한 많은 세대를 넣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에 법적 동별 이격거리를 맞추고 지하의 주차장까지 최대로 확보하려면 수많은 옵션을 검토하고 검토해야 한다. 이런 걸 몇 년 하다 보면 감이 잡힌다고들 한다. 그래서 오직 공동주택을 위한 배치만 익숙해지는 것이다.
대학교 인턴 때 운 좋게도 당시 획기적인 기획을 하던 디벨로퍼 사무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디벨로퍼가 고용한 건축사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건축가가 기획하는 것이 아닌 디벨로퍼가 브랜딩을 하고 자본가에게 투자를 받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몰랐다. 한참이 지나고 첫 회사를 들어가고 얼마 안 돼 그 획기적인 기획이 실제로 지어진 걸 보았다. 다만 내가 인턴 했던 곳이 아닌 다른 건축가의 이름으로 광고가 걸려 있었다. 건축가의 디자인일까. 이름값일까. 자본과 브랜딩, 제법 이름 값있는 건축가의 조합은 성공적이었다. 건축가가 앞세워진 거의 최초의 사례였다.
일반적으로 공동주택에서 건축가가 하는 역할은 시공사와 법규, 자본 사이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세대를 넣는 것에 불과하다. 공동주택이 생겨난 이래 건축계는 충실하게 그 역할만을 해왔다. 서울 사대문 안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부터 서울의 가장 비싼 재건축아파트까지, 그 긴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건축가는 자본의 논리에 맞춰 설계를 해왔다. 더 많이 팔리는 집을 설계해 왔다.
지금은 더 많이 팔리는 집에서 더 비싼 집으로 공동주택 사업성이 바뀌어가는 중이다. 잊을만하면 공동주택 현장에서 무너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유튜브에 시공하자에 대한 울분 섞인 고발 영상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아파트는 이제 일상을 만들어갈 공간이라기보다 부의 상징이자, 재화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
가장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이 아파트이니, 주거팀은 대형설계사에겐 필수적인 존재이다. 아무리 불황이라고 해도 건설사는 아파트를 짓는다. 건설사들은 열심히 땅을 찾아내고 오래된 아파트의 사람들은 재건축을 염원한다. 땅이 없다면 오래된 아파트를 부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돈이 된다. 이제는 그냥 집이 아니다.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고 투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높이 올라간 마천루 대신 높이 올라간 아파트가 빼곡한 곳이 서울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저기 저 아파트 대신,
저기 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주택을 짓는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건축가가 필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