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지노 쿠폰를 보고 난 후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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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죽고 난 후,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가톨릭 세계의 오래된 전통 “콘클라베”는 ‘가둔다’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모든 추기경들은 차기 교황이 될 자격을 가진다. 교황 사후, 추기경 중에 교황이 임명해두었던 단장 역할을 맡았던 추기경이 콘클라베 진행 단장을 맡고 곧바로 콘클라베 준비에 들어간다. 콘클라베가 열리면 로마의 바티칸 시국의 베드로 대성당 옆 시스티나 예배당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추기경들이 모두 모인다. 그리고, 새 교황을 추대하기 위한 투표를 한다. 투표의 방식은 천년 이상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현재는 2/3 이상의 득표를 한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선출될 때까지는 무한정 투표에 들어가고,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는 모든 외부와 차단된다. 가두어진 채로 모든 추기경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토론 등이 이어지고 또 투표를 이어가는 방식을 끝날 때까지 하게 되는데, 콘클라베 기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은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기다리며 베드로 대성당의 광장 앞에 모인다. 투표가 끝나게 되면 선출된 교황이 테라스로 나와 베드로 대성당에 모인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한다. 가톨릭의 전통이자 큰 행사이다. 콘클라베가 일찍 끝나면 며칠 안에도 마무리되지만, 길어질 때는 몇 달도 걸린다. 추기경단에서 토론과 의견 분열이 있을 때 아마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확신
인간에게 오만을 가져다주기 가장 쉬운 표현. 무언가에 대한 확신은 나만 옳다는 오만으로, 내가 옳으니 모두가 따라줬으면 하는 욕심으로, 욕심은 끝 간 데 없이 자란 욕망으로 자신은 물론 세상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절대 신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고 끝까지 ‘의심’하고 고뇌하는 자신만이 신이 이끄는 절대적인 세계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로렌스 추기경의 연설은 울림이 있었다. 많이 배우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게 확신에 빠지지 않는다. 확답을 하지 못한다. 주저한다. 판단을 최대한 보류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아는 것이 적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적으면 판단은 빠르다. 그리고 대체로 오류가 크다. (말이든 생각이든 몸이든) 어릴수록 겁이 없다는 말은 대체로는 좋은 표현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확신하기가 가장 쉽다. 분명한 것이 가장 쉽다. 복잡하지 않고 단숨에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가장 쉽다. 쉽다면, 잘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쉽지 않은 길이 잘못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확신보다는 의심이, 삶에서 더 중요한 태도이다.
유혹
아무리 오랫동안 자신에 대한 기도와 수련을 거쳐왔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추켜세우기 시작하면 길고 긴 수렁에서 뻗는 손바닥이 내 목을 잡아끌기 시작한다. 추기경의 자리에서 한 뼘만 뻗으면 한 세계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갈 수 있다. 신에게 끝없이 닿고 싶어 하는 존재가 성직자라도, 성직자도 나약한 인간이다. 인간임이 태생적 한계이다. 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타고 난다. 불가에서도 태어난 이후의 모든 행동들이 누군가를 갉아가며 생명을 이어왔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죽는 마지막 순간에 망자를 위한 기도와 함께 망자가 세상을 갉으며 죽였던 수많은 생명에 대해 속죄하는 기도를 한다. 인간은 죄를 타고나거나 죄를 지어가며 살기 때문에, 유혹과는 한 몸이다. 나는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확신이 더 많은 유혹으로 나를 이끌게 된다. “나는 교황이 될 몸이 아니에요.”라고 확신하던 로렌스 추기경이 어느 순간의 유혹으로 자신의 이름을 교황이 될 인물에 투표한다. 카지노 쿠폰에서는 유혹과 확신의 순간을 가장 경계했던 인물이 로렌스 추기경이었다.
위험
콘클라베의 과정은 전 세계로 송출되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모두를 가두어서 투표하는 방식은 제법 의아스럽지만, 일천년이 넘어가는 콘클라베의 과정과 역사를 보면 외부의 사정 변화에 따라 교황의 성향에 대해서도 추기경들끼리 의견이 분분해질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순수성과 영적인 작용이 가장 중요한 상황이니 만큼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교황을 선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마 그래서 외부의 단절을 통해 외압이나 영향을 막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세상이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다는 것이 가능할까. 콘클라베 도중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추기경들은 환경에 흔들리는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인다. 전쟁, 위험, 위기의 순간. 인간은 나아가려는 방향을 잃고 선동당하기 쉽다. 전쟁과 위험에 맞서 종교전쟁이 필요하다고 연설한 교황 우르반 2세의 십자군 모집이 중세 기독교 사회의 가장 큰 불행이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위험, 전쟁의 순간. 우리의 순결성을 ‘확신’하는 ‘유혹’의 세계는 너무도 가깝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어떤가.
숭고
나는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락 소감문의 문장을 되새긴다. 인간으로서,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모두가 나약하게 휩쓸리고 판단조차 명징하지 못할 때에도, 비록 이 공간이 신이 주신 지옥이라도, 여기에서 어떻게든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존재 역시도 인간이라는 점을. 우리는 언제나 폭력에 맞서고 편견에 맞서고 내 안의 유혹과 확신에 맞서는, 그렇게 애달은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인간을, 인간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전쟁이 무엇인지 아냐고, 이 고통이 무엇인지 아냐고, 그 상황에서 유혹에 빠진 인간을 다시 돌려세울 수 있는 것도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언젠가 다시 예수를 보내겠다 하셨는지 몰라도, 불가의 말처럼 우리 안에서 아주 가끔은 예수가 발현되기도 한다. 신이 인간의 몸 안에 수치심과 양심을 심어 창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존재를 나는 ‘숭고’라는 단어로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움’보다 위에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숭고’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완벽하지 않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를 더욱 꽈악 껴안기로 한다. 카지노 쿠폰의 희망적(!) 엔딩이 부디 판타지가 아니길 손 모아 기도하게 된다.
+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감히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콘클라베라는 카지노 쿠폰가 나에게는 올해의 카지노 쿠폰가 될 것만 같다고 확신(하면 안 된다 해놓고) 하게 된다. 화면 미장센과 음악 등의 카지노 쿠폰적 연출은 고급스러웠으며 예술적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긴장감과 통쾌함마저 있었다. 이 또한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일단, 너무도 재미있었는데 마지막의 반전까지도 단순하지 않다. 더욱 생각이 많아질 정도. 누가 교황이 될지, 스토리를 따라가는 단순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카지노 쿠폰는 우리의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확장시켜낸다. 나의 그다음 시간도 궁금하다. 죽기 전까지 우리도 이 지구에 ‘갇혀’ 있을 것이다. 제한된 정보와 가려진 시선 사이에서 무언가를 갈구하며 계속 나아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