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해 성찰을 위해 다시 공개 글을 씁니다
1. 무료 카지노 게임사인가? 회사원인가?
지금은 퇴사한 선임은 1년에 꼭 두어 번씩 기관 동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내던졌다. 평직원들은 한 명 한 명 대답하며 각자 의견을 내놓았다. 선임은 회사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우리는 가치 중심의 일을 하니 무료 카지노 게임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 된다",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원이라고 대답했던 동료는 "우리는 조직 안에서 일을 하고 있고, 돈 받는 회사원이다, 할 일만 하고 가면 된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라며 나를 먼저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두 사람의 말 모두 맞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무료 카지노 게임 시설 종사자다. 선임은 업무 특성상,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에 일을 대하는 '태도'를 강조했고, 동료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직장인의 기본자세가 먼저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시설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각자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무료 카지노 게임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다.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사내정치를 하며, 험담을 하고, 편을 가른다. 하지만그 속에서의 업무는 나를 가장 큰 도구로 삼아 내 삶이 소중하듯 타인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아파하며 공감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더 자신을 채찍질하고 성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나는 닭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닭이 회사원이라면, 계란은 무료 카지노 게임사로서의 정체성이다. 좋은 계란을 낳기 위해서는 내가 좋은 닭이 되어야 했다. 비록 양계장의 빽빽한 소모품처럼 느껴질지라도 내가 좋은 회사원,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했다.그게 먼저였다.
2. 갑을병정... '병' 조직원의 버티는 삶
우리 모두는 밥벌이를 위해 이 곳에 모였다. 회사는 회사다. 순수하게 정말 처음부터 내가 무료 카지노 게임 일을 하겠다고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업무 일상에 녹아든 경우가 많다. '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를 이쪽으로 선택해서...' 등등. 하지만 회사는 회사이듯, 업무는 업무의 고유 특성이 있다. 아무리 업무라고 할 지라도,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기에 위해 100% 공감하진 못하더라도 배려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한다. 견디기 힘든 게사례회의 현장이었다. 당사자의 험담 자리였다.자신의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다. 패를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포커페이스였다. 표정관리의 달인들이었다. 당사자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패를 잘 보이는 사람이었다. 당사자의 아픔을 듣고,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감을 받을 수 없었다. 그저 홀로 견뎌내야 했다. 나와 비슷한 '무료 카지노 게임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다른 '무료 카지노 게임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과 실천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 사람이 내가 먼저 되어 동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내가 가지고 있는 조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무료 카지노 게임사의 고민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상사에게 약점이 되었고 갑질이 더욱 심해졌다.그럼에도 나는'회사와 조직을 통제할 수 없어도,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있다'라는 명제에 기대를 걸었다.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더 노력하면 괜찮을 거야.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니까...'라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버틸 이유를 찾아나갔다. 밖은 추우니까,정규직인 내가 그나마 갑을병정 중에 '병'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며.... 작지만 따박따박 들어오는 밀리지 않는 월급으로 억지로 따뜻함을 찾았다.내가 먼저 그만두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잘릴 이유가 없다는 게 무료 카지노 게임사라니까... 애써 위로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며 버티고 있지만, 내가 이 회사를 선택했으니,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나를 탓했다. 관장님은'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떠남을 그 누구보다 축하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씁쓸했다. 오히려 내가 그 떠남의 용기가 당장 없는 게 문제처럼 느껴졌다.내가 더 독해지고 강해져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또한 내 어깨에 있는 나의 부양가족들을 생각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로 밥 벌어먹고사는 7년 차,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요즘 조직원으로서 버티는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버텨본다는 것. 이것도 나의 권리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원으로서의 어느 정도 위치와 힘이 있어야 진행이 가능하다는 동료의 말이 이제야 더욱 와 닿긴 한다. 상사의 갑질에 지칠 대로 지쳤기에 더욱 무료 카지노 게임사로서의 가치도 태도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상사를 이해하려고 했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바르게 일하고 싶다는 내 바람은 짓밟혔다. 그저 실적과 인정, 승진 고과에 밀려당사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누군가의 삶에 함께 하는 것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제대로 구분하고 싶었다. 아무리 밥벌이라도 내 직업이 무료 카지노 게임사라면 사회 복지사답게 일해야 한다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나를 단단히 하고 성찰하는 것이 절실하다. 실천의 의도가 흐려지는 것을 다시 경계한다. 말로 쉽게 넘어갔지만, 내가 왜 그 실천을 했는지 명확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분노도 중독되기에, 팍팍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서, 작고 미약한 나지만 삶의 최전선에서 끝까지 버텨내기 위해서.....
3. 무료 카지노 게임사의 정체성이 살아 있는 밥벌이를 꿈꾼다.
대상 아이들과 그들의 양육자들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함께 울고 웃었다. 사례관리 대상자였지만, 그들이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아이들은 동생처럼 자식처럼 내게 힘을 주었다. 서로 의지하며 한 해를 버텼다. 매일 내게 힘내라며 서로 응원의 카톡을 보내는 어머님,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기다리며 시간 맞춰 와주는 아이들과 기꺼이 함께 해주는 대학생 봉사자들, 함께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약속을 잘 지켜주시는 어머님.... 그들에게는 나의 진심이 정말 진심으로 다가갔다는 것에 너무나도 큰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업무로 만난 사이지만, 오히려 회사 동료들보다 편했다. '진심'으로 '서로를 온전히 드러내 놓을 수 있는' 사이였기에....좋은 사람, 좋은 이웃을 연결하며,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 가치 있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올해는 하루 일과는 상기시키는 것조차도 버거워 일부러 일기를 일주일씩 몰아 썼다.너무 힘들어서 정신과를 두드렸고,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잠을 잤다. 왕복 3-4시간 되는 출근길에 매일 읽던 책도 어느 순간 놓았다. 멍하게 멍하게 안정제로 버텼다. 자격증 공부에 매달리고 합격의 기쁨에 위안을 얻었다.여전히 지하철에서 멀미가 나고 구토 증상이 심해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여 어렵게 회사에 가고 있다. 집에 가는 퇴근길조차도 숨이 막힌다. 내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던 상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정확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장실에서 내 뺨과 어깨를때렸던 상사와는 여전히 한 공간에 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스트레스받고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내 밥벌이를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에 '관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 관계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업무가 힘들어서 퇴사를 선택했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다시 공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내 실천을 되돌아보기 위해 공유하고 기록하고자 한다. 쓴소리 해줄 누군가를 찾고 싶다. 다시 마음을 다 잡기로 했다.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