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섣달 그믐날 아침, 오여사는 설을 앞두고 다른 해보다 더 분주하다. 명절 음식 장만이야 늘 하던 거라지만 조금 있으면 이틀 전 태어난 첫손주를 집으로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떠들썩했던 조리원 사고가 난 직후라, 큰며느리 희원은 도저히 조리원으로는 못가겠다고 했다.
그 말이 옳다 싶으면서도 이제 막 할머니가 된 오여사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여기저기 급히 수소문해서 평이 좋은 산후관리사를 구해놓았다. 희원의 친정에선 산구완을 해줄 수 없는 형편인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나 몰라라 할 순 없었다.
"띵동!"
"아이구 우리 왕자님 왔구나! 어디 한번 안아보자.
할미다 할미!
큰아가 고생 많았다. 이 방에 자리 봐뒀다. 어서 누워라.앞으로 이 분이 잘 돌봐주실 게다."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이맘사랑에서 나온 최미선입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며느님이 미인이시네. 애기도 엄마를 닮아 그런가? 똘망하니 참 귀엽고 이쁘구."
"아이구 참! 눈이 어떻게 됐수? 우리 아들을 쏙 빼닮았구만!"
산고의 흔적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는 몸은 지칠대로 지쳤건만, 희원은 이 집이 이렇게 편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당신 아들 한준보다 학벌이며 집안이 처진다고 오여사가 얼마나 결혼을 반대했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직접 험한 꼴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연애 당시 한준을 보면서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두 사람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한준이 대학생이 된 후에야 희원에 대한 오랜 짝사랑을 고백하면서 그들은 만나기 시작했다. 그저 한때의 풋사랑으로 희미해지지 않을만큼, 희원은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2남 중 장남에 순종적인 마마보이 같은 한준이 처음부터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여자는 자기 좋다고 죽자사자 목 매다는 남자랑 결혼해야 행복하다는 세간의 말을 그녀는 믿기로 했다.
오여사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어느 날 한준은 술을 왕창 퍼마시고 집에 들어와부모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결국 오여사도 '자긴 이 여자 아니면 안된다. '는 아들한테 이길 도리는 없었다.그러나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며느리가 혼수로 장만한 가구가 들어오던 날도, 오여사는 좋은 게 좋은 걸로 넘기는 법이 없었다.
"아유. 신부가 예쁘기도 해라. "
스튜디오 촬영 앨범을 넘기며 오여사의 친한 친구들이 칭찬을 해도 '이만큼 안예쁜 신부도 있나?'라고 대꾸해서 덕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였다.
"얘는 취향이 좀 특이한 것 같아. 신혼 가구인데 좀 환한 걸로 고르지, 어디서 컴컴한 색으로 사왔더라구. 보는 눈도 참..."
"애들이 좋으면 그만이지 뭘. 그게 요즘 스타일인가보지.
참, 며느리는 어느 학교 나왔니?"
"그냥 그런 4년제 나왔어."
오여사가 얼버무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큰아들 한준처럼 대학원까지 나온 며느리를 볼 욕심은 없었지만 설마 2년제 전문대 출신을 신부감이라며 데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래서 결혼을 승낙하는 대신, '방통대라도 가서 4년제 졸업장을 결혼 전에 받아오라.'는 걸 조건으로 내세웠다. 중학교 동창끼리의 결혼이니, 오여사는 신부감의 집안이 어떤지 대충 알고 있었다. 남편인 추사장이나 자기나 둘 다 명문대 출신인데 비해 그 집은 많이 기운다고 느꼈다. 추사장 사업이 자리잡기 전이라 그 동네에 잠깐 살긴 했어도, 오여사는 그 동네 사람들을 '민도가 낮다'는 말로 대놓고 깔보았던 것이다. 특히, 안사돈감의 평판이 별로여서 이 혼사가 영 내키지 않았으니 툭하면 여기저기서 심술보가 터지곤 했다.
뭘 해도 곱게 보지 않는 시어머니한테 어떻게든 인정 받고 싶어서 희원은 결혼 후에도 살얼음판 걷듯,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그러던 희원이 결혼 4년차에 이 집안의 장손을 낳은 것이다. 시어머니한테 산구완을 받으러 시댁 문턱을 넘는 기분이라니!
***
"띵동!"
"아이구 정신 없네. 또 누가 왔나? 둘째 아가구나."
"네 어머님, 저 왔어요."
"그래, 어서 와라. 네 형님이랑 애기도 방금 왔다."
"네."
둘째 며느리 카지노 게임한테는 이 집이 이토록낯설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석사 출신 연구원인 그녀는 오여사에게 환영 받고 결혼한 며느리였다. 사돈부부는 명문대 출신 교수였고 카지노 게임의 두 오빠는 각각 변호사와 의사였다. 오여사는 둘째 아들 한석이가 학사 출신의 평범한 회사원인 게 오히려 좀 꿇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자기집이 사돈댁보다 훨씬 더 재력이 있고 나중에는 아들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테니 그걸로 두 집안이 엇비슷하다고 여겼다. 1년전큰아들 내외의 결혼 때 못받았던 하객의 부러운 시선을 받을 생각에 오여사는 미리부터 설레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결혼 과정은 물 흐르듯 순탄했다. 겉으로는 늘 점잖고 교양 있는 오여사가 대놓고 며느리들에게 층하를 두지는 않았으나, 카지노 게임는 형님보다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다는 게 때로 불편했다. 늘 긴장하고 있는 형님한테 좀 다가가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느껴져서 쉽사리 친해질 수도 없었다.
환영받은 며느리 카지노 게임에게도 결혼 후 몇 가지 문화 충격이 있기는 했다. 시어머니는 아들 한석이 출장 일정이라도 잡히면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셔츠, 무슨 바지 등을 챙겨 출장가방을 싸주라고 했다.
'성인남자가 왜 자기 짐을 혼자 못챙기지?'
카지노 게임는 그게 당연히 자기 일이 되어버린 것이 의아했다.
시아버지 추사장은 며느리들을 보면 건네는 첫마디가 늘"신랑 밥은 잘 해주나?"였다. 두 며느리 모두 일하는 여성인데도 마치 당신 아들들의 밥을 해주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라도 띠고 이 집안에 들어온 듯이 꼭 그렇게 물었다.
그렇긴 해도, 추씨일가는소위 '명절증후군'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며느리 입장에선 그다지힘들 게 없는 시댁이었다. 큰집도 아니어서 차례상 차릴 일도 없으니, 오여사가 거의 다 장만해놓은 명절음식, 마지막에 거드는 시늉 좀 하고 상차리는 거 돕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나 예쁘게 깎는 게 새색시 카지노 게임의 몫이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니 손에 물 묻힐 일도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이번 명절만큼은 없는 출장을 만들어서라도 시댁에 가는 걸 피하고 싶었다. 형님이 명절 때부터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부터였다.
'서양엔 음력설 개념이 없으니 그 기간에 유럽 학회 일정이 있다고 할까?'
이리저리 안갈 궁리를 해보기도 했다.
출산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날, 카지노 게임는 신생아 옷선물을 사들고 한석과 함께 병원으로 가서 유리창 너머로 갓난쟁이 조카를 보고 형님 부부에게 축하 인사도 하고 왔다.
'그랬으면 되었지, 삼칠일도 안지났는데 신생아가 있는 시댁에 안가는 게 낫지 않나?'
외부인으로서 출입 자제하는 걸로 합리화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뒤채기고 또 뒤채겨도,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카지노 게임는 결국 시댁에 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머님, 저 뭐 할까요?"
"응. 일단 형님한테 딸기주스 한 잔 갖다주렴.
저 산후관리사 아주머니 것도."
"네."
카지노 게임는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냥 오여사가 시킨대로 했다.
'그래. 형님이 산모인데 이 정도는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해야지.'
저녁 때가 되자, 산후관리사는 내일이 설이라 하루 동안 집에 다녀오겠다며 퇴근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어쩔 수 없이, 앞으로 24시간 동안, 신생아 케어와 산구완은 오여사 몫이었다. 아니, 시어머니와 아기아빠 몫이 될 거라고 카지노 게임는 생각했다. 8시가 되자, 오여사가 카지노 게임를 불렀다.
"둘째야, 애기 목욕시킬 때 한 사람은 붙잡아줘야 하니 이리 와서 좀 도와다오."
'제발 그것만은, 그것만은......'
카지노 게임가 속으로 빌고 또 빌며 죽도록 피하고 싶던 상황이 거짓말처럼 오고야 말았다.
"네? 네에... 어머님, 근데 전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몰라서요... 아주버님이 애기 붙잡아주시면 안될까요?"
"남자가 이런 걸 어떻게 하니? 그래도 여자손이 낫지."
"그래도 애기 아빠잖아요..."
카지노 게임는 어차피 먹힐 리 없는 말인 줄 알기에, 말꼬리를 흐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물 온도를 맞춰놓은 아기 욕조 옆에서 오여사는 애기를 안고 앉아, 아기 얼굴부터 살살 닦아주면서 거즈면에 물을 묻혀 슬슬 목욕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지노 게임는 너무나 긴장이 되었다.
"얘! 뭐하니? 어서 욕조에 애기 좀 받쳐서 잡아주잖구. 자, 이렇게! 그래, 그렇게! 네가 잡고 있으면 내가 씻기마."
생후 3일된 핏덩이가 카지노 게임의 두 손에 물컹했다.
거의 동시에 눈물이 울컥 솟았다.
유리창 너머로 볼 때는 그저 작고 예쁘다는 느낌뿐이었는데 막상 살이 닿으니 너무도 연약해서 조금이라도 세게 잡으면 혹시나 아플까, 살살 잡으면 미끄러져서 욕조 안으로 쏙 빠져버릴까 두렵기도 했다.그렇다고 겁이 나서 눈물이 솟은 건 아니었다. 그건...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생생히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6개월 전, 카지노 게임는자연유산으로 소파수술을 받았다.수술대의 그 차가운 느낌에도 무감각할만큼, 그 당시 카지노 게임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 주수에는 아기 심장이 뛰어야 하는데... 유감스럽지만 계류유산입니다."
"선생님, 한 주만 더 기다려보면 안될까요? 유산방지제 더 맞으면서요."
"이미 그렇게 한 주 지났습니다. 소파수술도 제때 안하면 몸에 좋지 않구요. 두 분 다 젊으시니 아기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또 가지실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카지노 게임의 예정일은 형님과 한 주 차이였다. 유산을 하고 조리를 잘 한다고 했건만 카지노 게임는 한동안 몸이 많이 안좋았다. 겉으로는 표가 안나도 자궁 부위에 콕콕, 따끔따끔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오기도 했다.
희원의 배는 4개월을 넘어서자 눈에 띄게 쑥쑥 불러왔다. 임신 6개월차가 되자, 운동해야 순산한다며 오여사는 자주 가는 동네 하천 산책코스로 큰며느리를 이끌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온식구가 다 모인 주말이면 오여사는 그 산책에 카지노 게임까지 대동하려고 했다.
"두 분이 다녀오세요. 전 집에서 저녁 준비하고 있을게요."
최대한 정중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해도, 오여사는 막무가내였다.
"어머 얘! 지금 천변에 단풍이 얼마나 한창인데... 너도 같이 가자."
악의 없는 무지도 때로는 죄악이 된다고 했던가? 카지노 게임는, 오여사가 유산 경험은 없다지만 정말 자기 심정을 짐작도 못할만큼 무신경한 건지, 자길 작정하고 괴롭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산책은 즐겁지 않았다. 자신의 상실을 재확인하는 그런 동행은 고역이었다.
오여사가 단풍나무 밑에서 형님이랑 굳이 같이 찍어준 사진에 카지노 게임만 여전히 날씬한 아가씨처럼 나온 게 보기 싫었다. 카지노 게임는 희원의 눈에 띄는 미모를 은근히 질투한 적도 있었다. 최초로 자신이 형님보다 더 예뻐보인다고 생각될만큼, 사진은 참으로 잘 나왔다. 그런데도 그녀의 눈길은 자꾸 희원의 둥실둥실한 배에 머물렀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가 활짝 웃지 못하게 된 것은.
그래도, 그래도...
입버릇처럼 '너를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 생각한다.'는 오여사라면, 아니, 그냥 같은 여자로서의 작은 공감대라도 있다면 애기 목욕은 아빠인 큰아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어야 한다고 카지노 게임는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의 손이 그 핏덩이의 겨드랑이 사이에 닿도록 두어서는 안되었다. 그건...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폭력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보드랍고 말캉한 폭력!
그녀의 자궁은 상실감에 아직도 아파하고 있었는데...그 일이 없었어도 이미, 충분히, 많이 아팠다.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조카는 정말 예뻤다.
카지노 게임는해외출장 때마다 귀여운 고급 아동복이며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장난감을 사와서 선물하곤 했다.
조카가 첫돌을 맞았다.
돌복 입은 아기도, 화사한 한복을 입은 아기엄마 희원도 참 예뻤다.잔치 내내, 카지노 게임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었다.함박미소를 띠고박수를 치고 덕담과 선물을 전했다.
그런데 마음이 시렸다.
자궁이 콕콕 쑤셨다.
몸이 덜덜 떨렸다.
잔치가 끝나고 오한이 난다는 카지노 게임의 까칠한 얼굴을 보고 오여사는 애 들어서는 거 아니냐며 설레발을 쳤다.
조카가 두 돌이 되었다.
그 사이 오여사는 카지노 게임가 시간 될 때마다 불러내어, 이 한의원 저 한의원 끌고 다니며 진맥을 받게 하고 약을 지어 먹였다.
조카가 세 돌이 되었다.
그리고 또 설날이 되었다.
시아버지 추사장이 카지노 게임곁을 지나가며 슬쩍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시집 와서 애 못낳는 것도 칠거지악 중 하난데..."
농담인 듯 툭 던진 그 말에, 카지노 게임는 현기증이 났다.
'나는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여성이다.그런데 이 집안은 조선시대에살고 있다.'
조카가 넉 돌 반이 될 무렵, 카지노 게임도 드디어 첫아이를 낳았다.형님이 조카를 낳았던 나이에 그녀도 엄마가 된 것이지만 결혼 7년만의 아이라서 양가 부모님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카지노 게임와 한석도 참으로 기뻤다. 축하도 많이 받았다.
카지노 게임에게 자신의 아이가 생기자 유산의 아픔은 엷어져 갔다. 엄마 노릇에 너무 지쳐서 한동안 잊고 살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잊을 수는 없었다.아니, 그런 종류의 기억은 잊히지 않고 몸에 새겨지는 것같았다.
임신 7주 된 태아를 잃고 마침내 첫아이를 낳기까지 4년 반 동안, 카지노 게임는 아주 많이 바쁘게 살았다. 미친 듯이 일하고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틈틈이 여행도 다녔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때면 아무 이유 없이도 눈물이 툭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동안 카지노 게임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한석은, 기쁨이라면 몰라도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자기밖에 모르는 그는, 아이를 갖고자 하는 카지노 게임의 몸고생과 마음고생에는 오여사만큼이나 둔감했다.
두 사람에겐특별한 난임 이유가없었는데도,혼자 조바심이 난 카지노 게임는 과배란 유도 주사까지 맞고 배란기 즈음에는 신호를 보냈으나, 한석은 인위적으로 날짜 의식하는 게 싫다며 늘 비협조적이었다.신혼초, 아이 없이 딩크족으로 살면 어떠냐는 카지노 게임의 제안에, 자식이 한 명은 꼭 있어야하지 않겠냐며아이를 간절히 바란 건 한석이었다.
카지노 게임가 소파수술을 받던 날, 병원에서 돌아와 친정 자기방에 누운 카지노 게임 옆에서 그는 소리내어 울었다.
"아기가 불쌍해. 아기가 불쌍해."
굴욕적인 자세로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수면마취를 당하고 그 상실을 온몸으로 겪은 건 카지노 게임였는데, 한석은아기처럼 혼자만의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에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카지노 게임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다.
"엄마! 엄마! 나 좀 데려가줘요. 이 사람이 울어서 나 도저히 잘 수가 없어! 그러니 제발 이 사람 내 눈 앞에서 치워주든지 나 좀 데려가...제발."
"그래그래,우리 카지노 게임. 엄마랑 가서 자자."
반쯤 정신줄을 놓은 듯한 딸의 절규에 문여사는 너무 놀랐다. 자기 딸이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그밤 그렇게, 카지노 게임는 엄마품에서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카지노 게임는 아이만 낳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에 그녀의 마음 한구석엔 큰 구멍이 뚫려버렸다.자궁은 더이상 시리지 않은데 마음은 늘 시렸다.
조카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마다,카지노 게임는 7주 동안 그녀와 한몸이었던 생명을 떠올리게되었다.
심장 소리는 결국 못들었지만 조그만 아기집으로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었던... 카지노 게임에게 찾아와준 소중한 첫생명이었다.
의사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했는데도, 카지노 게임는 한동안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서정말 미안해."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는 미안해 하는 대신, 살아있는 한 절대 잊지 않기로 했다.
"아가야, 널 본 적은 없지만 엄마가 너를 기억해. 영원히."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꽤 굵은 눈발이 날린다. 연호는 문득, 아마도 그 때,그 애가 태어났다면 눈처럼 흰 아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속의 상흔도 눈 속에 묻힐 수 있을까?
용서를 하면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을까?서운함도 원망도희미해진 지 오래인데, 연호는 여전히 마음이 시리다.
뽀드득 뽀드득,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밟으며
연호는 시댁에 마지막 세배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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