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파일기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옥진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의 목소리에 살짝 긴장이 되었다.
아기를 낳으려 조산원에 문의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 임신을 한 산모가 주를 이룬다. 남자들이 알고 있는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지식은 여자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남자들의 출산 문의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40년 넘도록 아기를 받으며 만난 남자들, 남편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게다가 일반적이지 않은 조산원 출산을 하러 오는 부부들은 그나마 좀 낫긴 했는데, 별난 아내 덕분에 억지로라도 자연출산에 대한 지식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온 터라 조산원 출산을 금방 받아들이곤 했다. "아기는 아내가 낳는 거죠, 지금껏 건강하게 임신기간을 보냈으니 아내 말을 들어주세요" 경직된 얼굴이 풀리고 눈빛이 온화해진다.
아내의 산고를 함께하는 조산원 출산은 남자를 아버지로 변하게 하는 첫 단추여서 육아에도 더욱 적극적인 아버지가 된다. 부부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대부분 아기 받은 나를 기억해 주었다.
드물게아내보다 남편들이더 자연출산에 적극적인 경우도 있었다. 아내는 자연출산이 뭔지도 모르는데 남편은 훨씬 더 확고하게 자연출산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럴 경우 결국 조산원 출산을 못하는 사례가 흔했다. 아무리 남편이 원해도 정작 아기 낳을 아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금껏 한 상담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끝이 뻔한 남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긴장하는 이유다.
아기를 낳을 당사자의 의견은 그런 이유로 중요한 포인트다. 전화를 거는 산모들은 정작 자신이 어떻게, 어디서, 누구와 아기를 낳을지를 심도 있게 고민한 사람들이다. 어떤 산모인 경우엔 나보다 더 자연출산이 왜 중요한지 강의를 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기도 했다.
종종 나는 지금껏 아기를 낳으러 온 산모들이 '나의 스승'이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나의 경험은 하나도 똑같지 않은, 유일한 산모와 아기들로부터 만들어졌다.
태반이 안 떨어졌는데 집으로 가겠다고 우겼던 산모.
아기 낳고 자궁이 명치까지 올라붙어 심장이 터지게 만든 산모.
진행이 더뎌 며칠을 오간 산모.
아기 머리 크기의 자궁근종이 치골에 떡하니 위치해 있던 산모.
4킬로가 넘는 아기를 거꾸로 낳겠다며 우겨서 결국 자연출산을 한 산모.
첫무료 카지노 게임 수술로 낳고 무턱대고 내게서 아기를 낳겠다던 산모.
소설을 써도 대하소설을 쓸 만큼 길고 긴 경험들은 그 자체가 내 삶이었다. 위의 일들을 겪으며 내 지식의 경계는 차차 허물어졌다.
이분이 왜 전화를 했을까? 대부분 이런 전화는 가족들이 아이와 함께 이민을 가거나 외국인 배우자 나라에 출생을 증명하는 서류를 원하는 경우였었는데.
나의 대답이 이어지자 그는 뜸을 들이며 말을 이어갔다.
"제 이름은 ***이고요. 아이 이름은**입니다. 우리 아들을 2008년에 선생님께서 받아주셨어요. 녀석은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요. 오늘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서 아들과 뵈러 가고 싶어졌어요."
마침 나는 시골에 머물고 있었기에 만나는 날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들이 옆에 있는데 바꿔드릴까요? 잠시만요~" 아이 아빠는 이렇게 커버린 아들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 지금껏,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잘 자란 장한 아들일 텐데 나라도 자랑하고 싶었을 거다.
"여보세요?"
변성기가 지난 목소리 굵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7년 전, 내 손 위에서 꼬물거렸던 아기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한 번도 못 본 녀석을 전화기가 연결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랬을까.
"내가 너를 처음 안은 조산사란다.
정말 반갑다. 아빠가 연락을 해오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밥 먹으러 아빠와 함께 한번 오렴"
흔해빠진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정말로 꼭 함께 밥을 먹고 싶어졌다
나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옆 지기 남편도 나처럼 흐뭇하게 웃었다. 하! 무료 카지노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