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독서
-프랜시스 카지노 쿠폰의 파란색과 함께 통과하는 밤
화가 프랜시스 카지노 쿠폰의 그림을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의 그림들은 대체로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웠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을 볼 때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했다.
이 책은 퐁피두 센터 미술관에서 밤에 혼자 카지노 쿠폰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프랑스 작가 야닉 에넬이 썼다.
그는 작은 손전등과 카지노 쿠폰이 읽었다는 조르주 바타유의 책 한 권을 가지고 미술관에서 밤을 새우며 느낀 것을 이 책에 썼다고 했다.
그런 소개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카지노 쿠폰의 그림을 보면 좀 불안해지는데, 그런 그림들을 밤에 혼자서 보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야닉 에넬은 미술관에서 밤을 보낼 준비를 하고 들어왔지만 안과적 편두통을 심하게 느꼈다. 그는 트리마놀 두 알을 먹고 나서야 겨우 카지노 쿠폰의 그림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카지노 쿠폰의 그림을 손전등을 비추어가며 보는데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를 경험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비드 실베스터의 인터뷰에서 프랜시스 카지노 쿠폰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사람을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떤 함정에 빠진 것일까?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더 자유스러워질지 아니면 갇혀버리게 될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오늘 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내게 새로운 자유가 약속되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어둠으로 변했다.(21쪽)
에넬은 작가였으므로 그림을 텍스트로 표현해 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로서도 그런 시도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내게는 그의 텍스트가 쉽지는 않았다. 그림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인데, 그런 느낌을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러나 에넬은 그의 느낌을 강렬하게 피력했다. 그는 카지노 쿠폰의 의도를 얼마나 깊이 있게 파악했을까. 그의 텍스트 중 비교적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카지노 쿠폰의 그림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었다.
에넬은 카지노 쿠폰의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물은 내 안에서도 흘러 사막을 가른다. 나는 이 물, 이 파란색, 이 분홍색과 흰색의 도착 장소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즐거움일 것이다. 우리가 존재와 하나가 될 때 느껴지는 즐거움 말이다. 존재가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의 광기다.
그래서 나는 이 파란색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은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일어났고, 안과 밖 사이에서는 움직이지 않고 녹아내리는 내 몸이 있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준점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공간이 비워진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그때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만, 또한 완전히 그곳에 있다. 이것은 사실 역설이 아니다. 그림이 우리를 초대하는 존재의 변형은 존재에 대한 접근과 관련이 있으며, 존재는 자신을 무無와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서 갑자기 느껴지는 황홀경은 극적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파란 창문이 허공 속으로 가파르게 열린다. 그것은 추락의 반대다. 카지노 쿠폰은 “그것은 추락이 아니라 도취다”라고 어딘가에서 얘기했다.
그렇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 Water from a Running tap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런 느낌이 든다. 마치 내 안에 생긴 틈이 나를 맞이하는 듯하다. 나는 색과 물방울을 받아들이고, 내 몸에는 물이 뿌려진다. 그림은 나의 눈이 다시 태어나는 욕조다. (56~58쪽)
그림을 보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에넬 자신이 그림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가지 않으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없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물아일체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나는 책 속의 작은 엽서로 이 그림을 보았지만. 에넬이 표현한 그런 느낌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가 표현한 느낌을 통해 나는 카지노 쿠폰의 그림을 새롭게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직접 느낀 감상은 아니었지만 전율이 느껴졌다. 이런 체험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내가 전혀 상상도 못 해본 세계를 접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보통사람들에게도 예술이 필요하지 아닐까.
에넬은 예술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다.
왜 예술이 우리를 무無 속으로 던져야 하는가? 하지만 만약 당신이 카지노 쿠폰의 세계가 당신 안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면, 당신을 빼앗음으로써 당신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다줄 경험이 시작된다.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당신의 눈은 불에 타버릴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마침내 보게 될 것이고, 이 두 번째 눈 덕분에 삶의 불타오르는 마음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79쪽)
예술을 통해 두 번째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고 삶의 불타오르는 마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이상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에넬은 글 쓰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과정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에 열중하다 보면 미지의 빛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문장들이 기묘한 풍경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으면 비밀이 주어진다.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어떤 대가를 의미하며, 이 대가가 없으면 내가 발견한 것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간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내게 빛이 제공되는 대가로 내게서 벗어나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나의 일부일 것이다. 괜히 내가 정기적으로 터무니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멀리 있는 것을 찾아 글을 쓰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만일 내가 길을 잃거나 비틀거리거나 쓰러진다면, 그런 여행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23~24쪽)
에넬은 전시회장에서 카지노 쿠폰의 그림들을 보다가 그의 그림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이렇게 술회했다. 비교적 카지노 쿠폰의 그림에 대해 알게 쉽게 이야기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어 옮겨본다.
즐거운 마음으로 숨을 몰아쉬며 전시회장에 걸린 작품을 한 점 한 점 감상하던 나는 카지노 쿠폰의 세계가 얼마나 비스듬한지 깨달았다. 그의 선은 앞뒤로 움직이고, 인물은 뒤틀리고, 볼륨은 깨진다. 그의 모든 것은 비뚤어져 있다. 비뚤어진 마음이 모든 원자를 무를 향해 끌고 가듯이, 불균형은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황홀경과 고통의 교대는 안정적인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분명히 우울증을 조장하지만 또한 걸작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77쪽)
에넬의 글도 화가 카지노 쿠폰의 그림만큼이나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은 두께는 얇았지만 생각을 깊이 해야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서는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세계의 문을 살짝 열어준 의미심장한 책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