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코스(광령1리사무소~제주관덕정분식) 3
언덕이었다. 어영공원을 중심으로 지나온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었고 나아갈 길은 민틋한 내리막이었다. 시야가 갑자기 확 넓어졌다. 인간세계와 자연을 가른 듯한 뿌옇고 엷은 막으로 인해 제주공항과 도심은 밭과 한라산의 완완한 초록의 경사를 오르지 못했다. 왼쪽으로 제주시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장 높은 건물인 드림타워가, 오른쪽에는 잠시 후 오를 도두봉이 눈에 띄었다. 내리막길은 제주 공항의 철조망과 함께했다. 마을의 안녕을 보장하고 수호해 주는 2기의 방사탑이 보였다. 내리막길의 끝에는 몰래물 쉼터가 있었다. 몰래물(‘물이 있는 곳의 모래’ 또는 ‘모래나 자갈이 있는 곳에 솟는 물’이라는 의미) 쉼터에는 이곳을 추억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안내석이 있다. 알고 보니 몰래물은 마을의 이름이었다. 1979년 제주국제공항의 제3차 확장공사로 인해 마을이 없어져 마을 주민들은 인근 마을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주한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런 쉼터와 안내석을만든 것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며 살았음을 증명하듯 용천수를 이용하여 남녀 목욕탕으로 쓰였던 원형의 시설물들이 해안가에 있다.
걸었다. 그냥 바다를 보며 걸었다.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쓰인 커다란 검은 안내석과 인어와 돌고래 상이 있는 쉼터, 그리고 위치를 알 수 없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을 설명하고 있는 ‘고랭이할망하르방당’의 안내판, 노랑 바탕의 PAIK'S COFFEE 안내판, 무지개색이 연이어 칠해진 경계석(무지개해안도로)들, 그 위에 드문드문 세워진 조형물들 그리고 건물 사이에 하얗게 핀 메밀꽃 등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간간이 돌고래 동상이 보여 이곳이 돌고래가 출몰하는 해안인가 보다 생각했다.
도두봉 입구에 이르렀다. 정상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상에는 ‘도원봉수대터’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석이 놓여있다.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봉수대가 있을 만한 곳이었다. 사방이 탁 트여 주변 어디나 멀리까지 잘 보였다. 멀리 지나온 길이 보였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펼쳐지는 사라봉이 봉긋이 솟아있다. 사라봉을 비끼듯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었다. 제주공항을 보니 공항 때문에 사라진 몰래물 마을이 떠올랐다. 그 마을은 서울 변두리에 있던 내 어린 시절마을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산이 있었고 산 밑으로 마을이 이어졌다. 마을 앞은 논이 펼쳐졌고, 마을의 경계를 긋듯 시내로 들어가는 4차선 도로가 지나갔다. 도로 너머로 양어장이 웅크리고 있었다. 마을의 내부를 가르는 천이 흘렀고 천 옆으로 4차선 도로를 향한 작은 도로가 동무처럼 함께했다. 집 근처에는 큰 공터가 있어 그곳카지노 게임 사이트 동네형들과 야구를 했다. 일 년에 몇 번은 마을 가로질러 평소에 가지 않는 북쪽 동네를 갔다. 우표 사는 날이었다. 우체국이 마을 북쪽에 있어 컴컴한 새벽에 생으로 먹을 라면 한 봉을 들고 친구들과 먼 길을 떠났다. 지나는 길엔 빨래터였던 원터가 있었다. 그곳은 새벽엔 공포였다. 온도 차이로 인해 물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때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카지노 게임 사이트 귀신은 이런 연기와 함께 항상 등장했다. 귀신이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친구들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잠들어 있는 집들과 초등학교 그리고 시장을 지나 4~50분을 걸어 우체국에 도착했지만 벌써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줄을 서며 우체국이 문을 열 때까지 생라면을 먹으며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던 그때 밤도 떠올랐다. 지금도 그곳에 산다. 마을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봤다. 그때의 흙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밑에 숨어있고, 그때의 집들은 아파트로 거대하게 자라났다. 나의 마을은 사라지지 않고 변했을 뿐이다. 긴 산책을 할 때면 나는 종종 그때의 마을을 그려보곤 한다. 그릴 때 그 시절을 종종 그리워하지만 애달파하진 않는다. 그러나 몰래물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그 흔적을 몰래물 쉼터의 안내석에 주민들은 그리움과 애달픔으로 새겼다. 흔적이 있는 추억과 흔적이 없는 추억은 정서의 무게카지노 게임 사이트 차이가날 수 밖에 없다.
도두봉을 내려가 도두항과 만난 길은 굴렁쇠 굴리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팽이치기, 딱지치기, 말타기놀이 등 옛 놀이를 형상화한 ‘도두 추억愛 거리’를 지나간다. 이곳을 지날 때 이 형상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다. 거리 끝에 있는 거리명과 내용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것은 역방향으로 걷을 때 받는 불이익이다. 역방향으로 걸으면 때론 뭔가 있는데 내용도 모르고 지나게 된다. 순방향이었으면 시작이었을 끝에 가서야 지나온 길이 어떤 길인지 설명한 안내판을 보고서야 알게 된다. 순방향이었다면 길의 이야기를 명확히 알고 걸었을 것이다. 역방향으로 걷는 것은 마치 헤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된 어리석은 연애와 같다. ‘도두 추억愛 거리’라는 것을 길의 끝카지노 게임 사이트 알게 되었고, 거리의 형상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라는 알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사진을 찍기 위해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두 추억愛 거리’부터 외도포구까지는 해안 길이다. 이 길카지노 게임 사이트 생각의 회로는 작동되지 않았다. 회로를 돌리기 위한 전기, 즉 에너지가거의 없었다. 많이 지치다 보니 생각할 에너지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아껴야 했다. 물론 스파크가 일 듯 잠시 번쩍이는 생각들이 있었으나 바로 사그라들었다. 모든 에너지는 17코스 완주를 위한 것에 집중되었다. 그래도 간간이 이정표 같은 표지가 나타나면 읽었다. ‘조진여물’, ‘피아노거리’, ‘이호테우 해수욕장’ 그리고 ‘알작지왓’가 그런 표지였다.
‘조진여물’은 ‘도두 추억愛 거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완만하게 호를 그린 길의 끝에 있다. 바다를 보면 걸었지만, 그동안 지금이 썰물 때인지 밀물 때인지 관심도 없었다. ‘조진여물’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지금이 밀물 때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바닷가 바닥이 얕거나 조수가 썰물 때 보이는 바위나 돌들을 ‘여’라 하는데, ‘조진여물’은 이런 ‘여’가 연이어(좆인-조진의 의미) 있는 물을 말한다. 안내판에 있는 사진을 보니 해안가가 멀리까지 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해안가로내려가는 계단까지 바닷물이 차 있다. 밀물 때인 것이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바다가 밀려오는지 물러가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항상 물러나 있거나 몰려온 상태였다. 천천히 밀려오거나 밀려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바다의 큰 움직임을 보고 싶다. 해안 길을 오래 걷다 보면 볼 수 있을까?
‘피아노거리’는 ‘조진여물’카지노 게임 사이트 꺾인 곳에 있다. 해안가를 표현한 것 같은, 또는 그랜드피아노를 연상시키는 안내판 위에 빨간 말과 하얀 말이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다. 피아노 거리와 말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살펴보니 밤이 되면 거리의 바닥에 놓인 사각형의 등에 불이 들어오고, 밟으면 조명색이 변한다고 한다. 벌판 멀리 거대한 말 형상의 구조물이 서 있었다. 그것은 이호항의 말 형상 등대였다. 말은 제주의 조랑말을 형상화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한다. 이곳의 벌판이 황량해서 별 감흥이 없었다. 아마 내가 지쳐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른다.
‘피아노거리’를 지나면 바로‘이호테우 해수욕장’이다. 이름이 너무 특이했다. 이호는 동네의 이름이었고, 테우는 제주카지노 게임 사이트 주로 사용했던 전통방식의 뗏목배를 말한 것이었다. 테우는 여러 나무를 엮어 만든 단순한 구조이지만 여간한 풍랑에도 뒤집어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었다고 한다. 이곳카지노 게임 사이트 테우와 관련된 축제가 펼쳐지기 때문에 해수욕장이름도 지명과 축제명을 혼합하여 이호테우로 한 것 같았다. 이곳도 삼양해수욕장처럼 맨발로 해변을 걷는 이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해변이 조금 검었다. 검은 해변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맨발로 걷는 것이 유행인 것처럼 보였다.
‘이호테우 해수욕장’카지노 게임 사이트 약간 구불구불한 직선의 길은 외도포구에 닿았다. 외도포구에 가까워지면서 해변의 입자는 굵어졌다. 모래카지노 게임 사이트 자갈로 어느새 변해있었다. 내도동 ‘알작지왓’이었다. 안내판을 읽었다.
‘알작지왓’은 아래(알), 자갈(작지), 밭(왓)이라는 뜻으로 ‘아래쪽에 있는 자갈밭’이라는 말이다. 이곳은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곳이다. 제주도 화산암의 조각들이 오랜 세월 파도를 맞아 둥근 자갈이 되었다. 자갈은 검은색, 옅은 갈색, 옅은 회색 등 다양한 빛깔을 띠고 있다. 특히 거친 파도가 밀려올 때 이 자갈들이 파도를 따라 구르며 내는 소리로도 유명하다.
흔히 말하는 몽돌 해변이었다. 내도동의 해변이 알작지가 된 이유는 설문대할망이 오백장군이라는 아들들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외도동 일대 토지를 개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지 개간으로 나온 돌을 내도바다에 모아두었기 때문에 몽돌해변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카지노 게임 사이트 제주 여성의 고단한 삶의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오백장군은 500명의 아들들을 통칭한 이름으로 이들은 어느 정도 장성한 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추론을 바탕으로 하면 밭을 개간할 때 아들들과 함께 해야 했다. 그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설문대할망 혼자 했다. 즉 제주카지노 게임 사이트 여성은 집안일뿐만 아니라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다는 것을 설화에 보여주고 있다. (한라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영실에 있는 수많은 기암괴석과 관련된 설화에도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슬픈 이야기가 내려온다)
길은 외도포구카지노 게임 사이트 광령천을 거슬러 주삿바늘처럼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마음이 급했다. 이 길을 지도로 봤을 때 마을이 없는 숲길이나 밭길이길게 이어지기때문이었다. 오후 5시였다. 걷다 해가 지면 꼼짝없이 어둠에 갇혀 그 무게를 감당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제의 경험이 그것을 거부카지노 게임 사이트. 걸음이 빨라졌다. 길은 물가에 비친 밝은 달그림자를 구경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월대를 지나, 광령천을 따라가다 밀당하듯 잠시 광령천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다멀어졌다. 그리고 창오교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소나기가 얼마간 쏟아졌다. 급히 우산을 폈는데 살 두 개가 녹이 슬었는지 부러졌다. 한쪽이 푹 꺼진 상태로 쓰고 갔다. 부러져 꺼진 쪽으로 빗물이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잠바가 방수여서 괜찮았다. 걷는 이가 없어 그런지 주위는 조용했다. 빗방울이 우산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었다. 내리꽂는 장대비가 아니라 사부작사부작 내리는 비여서 지지직 지지직 소리를 내며 우산에 스미듯 내려 우산의 검은 원단을 타고 수줍게 방울져 떨어졌다. 계속되는 지지직 지지직 소리가 프라이팬에 전 부치는 소리가 연상되면서 급격히 배고픔이 몰려왔다. 밭길이어서 주변엔 편의점도 없었다. 소나기가 그치자 걸음을 빨리했다.
걸음은 창오교카지노 게임 사이트 잠시 멈췄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천인 광령천의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난 얼어붙듯 움직일 수 없었다. 날카롭게 날이 선 거대한 돌들의 세상이었다. 돌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내 느낌은 거대했다. 건천인 이곳카지노 게임 사이트 돌들이 물살이 되어 내게로 거세게 굴러오는 것 같았다. 난 압도되었다. 광령천을 따라 걸을 땐 절벽의 갈라진 바위들이 살아서 하나하나 몸을 일으켜 내게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길의 다른 쪽은 넝쿨이 보이는 모든 것을 덮어 초록으로 지워버렸다. 거대한 나무도 넝쿨에 감겨 변신하는 것 같았고, 그 변신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인간이 하찮은 존재로 보이는 신화 속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빛이 엷어지고 있었다. 이곳이 어둠으로 물들면, 어제 공포로 인해 들어가지 못한 암흑의 세계에 강제로 들어가게 된다. 암흑 속에선 주변의 모든 사물이 살아서 나를 덮칠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작은 간세가 보였다. 이곳이 물줄기가 복잡한 인간사의 근심을 없애준다는 무수천이라고 알려주었다. 근심을 없애준다고? 없애주긴 했다. 거대한 두려움이 인간사의 작은 근심을 싹 몰아냈으니. 그런데 광령천의 다른 이름이 무수천인가? 아니면 광령천의 일부 구간을 무수천으로 부르는 건가? 어둠이 빛을 지우자 이런 물음도 빛과 함께 사라졌다. 완전히 어두워진 광령1리사무소카지노 게임 사이트 스탬프를 찍었다.
(2024. 10. 21)
윤석렬의 어처구니없는 석방으로 인한 분노가 가슴에 응어리로 뭉쳐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제가 지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맘을 다잡고 쓰다 보니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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