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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10. 2024

카지노 게임 한인 2세로 사는 삶에 대하여

밀라노의 한인 2세대, 카지노 게임 임

밀라노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면 많은 한국인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성악으로 유학을 온 친구들이고 패션이나 디자인 분야로 유학을 온 친구들도 있다. 젊은 나이에 꿈을 위해 부모님 곁을 떠나 스스로 공부하고 삶을 개척하는 이들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참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유학생의 삶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외모는 한국 사람이지만, 카지노 게임 말과 제스처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로 한인 2세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부모님이 이곳으로 유학을 온 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카지노 게임에 남는 걸 선택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지노 게임에 살고 있다. 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카지노 게임 한인 2세의 삶이 과연 어땠을지 궁금했다. 지금이야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 다들 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럽의 나라에서 동양인의 외모로 살아가는 건 과연 어떨까?


이번에 만난 안토니오가 바로 카지노 게임 한인 2세이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크게 놀란 게 한 가지 있었다. 한인 2세로 카지노 게임에 사는 것이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지금 바로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선량: 자기소개 부탁드려요(웃음).


안토니오: 안녕하세요! 저는 로마에서 태어나서 8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약 1년을 살았고요. 다시 로마로 와서 2년 살다가 베네치아에 가서 10년을 살았습니다. 베니스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요, 로마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근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대학 마지막 학기는 베니스에서 비대면으로 수업 듣고 졸업했습니다.


선량: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셨는데 지금은 밀라노에 살고 계시군요. 거기에도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나중에 물어볼게요. 먼저 부모님은 어떻게 카지노 게임에 오시게 되셨나요?


카지노 게임: 부모님은 90년대 초반에 성악으로 유학을 오셨어요.


선량: 아, 부모님께서 성악으로 유학을 오셨다가 안토니오와 동생을 낳으셨군요. 그런 분들이 꽤 많더라구요.

카지노 게임카지노 게임 돌잔치 사진



카지노 게임: 네.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선량: 여기서 계속 성악을 하셨나요?


카지노 게임: 아니요. 부모님은 2천 년대 초반까지 성악을 하셨고요. 제가 5살 때 IMF가 터져서 그때 그만두셨어요.


선량: IMF가 참 여러 가정을 힘들게 했죠. 부모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카지노 게임: 아버지는 지금 베네치아에 계시고, 어머니는 건강 문제로 2년 전에 한국에 가셨어요. 이제 곧 오실 거예요.


선량: 그렇군요. 한인 2세로 카지노 게임에 살면서 학교 다니는 건 힘들지 않았나요?


카지노 게임: 저는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냥, 평안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선량: 의외네요. 한인 2세들 중에 굉장히 힘들게 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봤거든요. 특히 베네치아나 로마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고 들었거든요.


카지노 게임: 사실 저희는 베네치아 본섬에 살진 않았으니까요. 본섬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 살았어요. 가끔 식당에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막 느껴지긴 했죠. 그리고 가끔 '니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크게 차별을 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선량: 저는 모든 한인 2세들이 그런 차별을 당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제가 가진 편견이었나 봐요.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카지노 게임 공부하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안토니오: 저는 로마에서 카지노 게임 현지 학교를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베네치아로 와서는 국제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고등학교 때였어요. 친구는 있었지만 학교 생활이 재미가 없었어요. 공부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요, 성적도 좋지 않았고요.

카지노 게임국제학교 다닐 때 카지노 게임


선량: 그때 주로 뭘 했었나요?


안토니오: 저는 공부 안 하고 게임하거나 축구를 했어요. 제가 촌동네에 살았는데요, 집 밖으로 나가면 허허벌판이었거든요. 옥수수밭이 있었어요. 시내 놀러 가려면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가야 했죠. 그래서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웃음).


선량: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안토니오: 제 동생이 저보다 5살이 어려요. 제가 첫째다 보니 저에게 공부에 대한 기대나 압박이 심하셨죠. 한 번은 가족이 놀러를 가는데 저만 집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정말 억울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시켜도 안 된다는 걸 부모님께서 아신 것 같아요(웃음).동생한테는 중학생 때까지 공부하라고 하시더니 그 뒤로는 그냥 내버려 두시더라고요. 좀 못해도 막 칭찬해 주시고, 알아서 하라고 그러시고요. 제 생각엔 공부를 아무리 시켜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부작용이 와요.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카지노 게임고등학교 졸업파티

선량: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했던 안토니오도 안토니오 동생도 지금 잘 커서 스스로 자기의 길을 가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정말 든든하실 것 같네요.

한국에서 잠시 학교를 다녔다고 했는데 그때는 어땠나요?


카지노 게임: 음....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요.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추억이라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죠.


선량: 저희 아이들도 한국에서 학교를 한 번도 안 다녀봤잖아요. 그래서 한국 학교에 대한 공포가 좀 있어요. 주로 학교에 대한 안 좋은 뉴스만 기사에 나오니까요. 안토니오는 어땠나요?


안토니오: 제가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에 잠시 학교에 방문을 했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저를 외계인처럼 보는 거예요. 제가 생긴 건 완전히 한국 사람인데 카지노 게임에서 살다 온 아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나 봐요. 입학한 후엔 학교 밖에선 친구가 몇 명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거나 그냥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공부도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교과서의흰 공백이 있잖아요. 거기에 빼곡히 메모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카지노 게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한국 학교를 1년 정도 다녔는데요, 제가 적응을 너무 못하니까 어머니가 안 되겠다 생각하셨어요. 아버지가 카지노 게임 일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셔서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다시 카지노 게임에 남기로 하셨죠.


선량: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나와 조금 다른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부모님께서 안토니오를 위해 큰 결심을 하셨던 것 같네요.

근데 한국에서 학교를 1년밖에 안 다녔는데도 한국말을 엄청 잘하는데요?


안토니오: 모두 부모님 덕분입니다. 집에서는 한국말만 하고요, 한인교회에서도 한국말을 썼고, 토요일마다 한글학교도 다녔으니까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근데 2세들끼리 만나면 여전히 카지노 게임어로 대화해요.


선량: 동생과는 어떤 말로 대화하나요?


안토니오: 동생과는 카지노 게임어로 대화해요.


선량: 오, 정말요? 저희 아이들은 프랑스학교를 다니면서도 둘이 한국말로만 대화해요. 학교에서도 둘이 우연히 만나면 한국말만 한데요. 참 희한하죠. 저희 아이들은 유튜브로 한국말 배워요. 요즘엔 mz 신조어까지 말하더라고요.

베네치아, 로마에서 주로 사셨는데 지금은 밀라노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잖아요. 그것도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밀라노로 오게 되셨나요?


안토니오: 제 전공이 '외교국제정세'였어요. 거기 나오면 대학원을 가서 유엔이나 국제기구로 주로 취직을 해요. 그런데대학 마지막 학년 코로나 때문에 거의 비대면으로 수업을 했어요. 그때 대학 졸업하고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3개월을 살다 온 후에밀라노로 와서 취직을 했어요. 사실 밀라노에 대한 기억이 좋았어요. 현대적인 건물도 좋아 보였 고요. 또 일자리가 다른 도시에 비해많고, 기회가 많으니까요.


선량: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녀도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독립해서 혼자 살기엔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런데 안토니오는 좀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한 것 같아요. 언제 독립했나요?


안토니오: 저는 스물두 살 때 독립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니까 부모님과 살기가 싫더라고요. 그리고 한 집에 살면 그렇게 싸우게 되더라고요. 가족이랑 좀 떨어져서 지내니까 오히려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요. 저는 20년 동안 부모님께서 뒷바라지해주셨는데,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학교 졸업하면 무조건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죠.


선량: 동생도 그럼 독립을 했나요?


안토니오: 동생은 지금 네덜란드에 살고 있어요. 원래는 파리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안 맞는다고 자퇴를 한 거예요. 그런데 동생도 부모님 아래서 의지하면서 살기 싫다고 네덜란드로 가더니 거기서 돈 벌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배우고 있죠.


선량: 와우. 정말 의외네요. 네덜란드에 살다니.


카지노 게임: 거기가 더 재밌다고 해요. 영어도 훨씬 더 잘 통하고요. 다인종이라서 생활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해요. 지금은 일식집에서 라면 만들고, 타코야키 만들면서 돈 벌고 있죠.


선량: 아들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에게 스무 살 넘으면 독립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어떤가요? 한국의 기업문화 때문에 힘들진 않나요?


카지노 게임: 나쁘지 않아요. 좋아요.


선량: 요즘 카지노 게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한인 2세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어, 영어, 카지노 게임어 모두 되는 친구들이니까요. 근데 아무래도 한인 2세라고 하지만 카지노 게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니 생각이나 문화는 카지노 게임 스러울 것 같아요.


안토니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장점은 카지노 게임 문화와 한국 문화 둘 다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에요. 보고 배운 게 있다 보니 눈치가 있어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알죠. 카지노 게임 사람들과는 조금 더 사교적으로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면서 친근하게 지낼 수 있고요. 상황에 맞춰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죠.

단점은 어쨌든 저희도 카지노 게임 사람인데 한국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게 좀 부담이 되죠. 샌드백이 1킬로만 있으면 되는데 2킬로가 있는 느낌. 그런 게 좀 쉽지 않아요.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한국인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데 더 카지노 게임 스러운 친구들은 아무래도 힘들어하죠.


선량: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께서 그렇게 자녀들을 믿고 지지해 주면서 키웠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카지노 게임: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 일이 너무 바빠서 자리를 많이 비우셨어요. 밤늦게 들어오시기도 하고, 저희한테 신경을 많이 못 쓰셨죠. 두 분이 많이 싸우기도 하셨고요. 부모님은 지금도 그 일을 미안해하세요. 그런데 부모님도 부모님 역할이 처음이셨으니까 서툰 부분이 있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는 저도 어렸기에 상처도 받았지만, 서로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고 안아주면서 지금의 저희가 된 것 같아요. 많이 단단해졌지요. 그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경제적인 서포트를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부모님께 정말 감사해요.



선량: 부족함 없이 살았다는 걸 알아주는 아들이 얼마나 고마울까요.


저는 종종 제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한 번씩 떠올려 봐요. 저는 아이들을 저를믿고 기다려주던 엄마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카지노 게임와 카지노 게임의 동생이 지금 자신만의 길을 잘 갈 수 있는 것도 곁에서 믿고 기다려 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겠죠.

카지노 게임를 보니, 아이들이 공부 좀 못해도 혼내지 말아야겠어요. 공부할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안 할 아이들은 아무리 시켜도 안 한다는 말, 기억할게요.



끝으로, 지금 옆에 계신 예나 씨의 어떤 면에 반하셨나요?

카지노 게임와 예나 씨 커플

카지노 게임: (웃음) 예나 씨는 긍정적이고 마음이 넓어요. 제가 허튼짓을 하고 말을 이상하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예나 씨는 '그럴 수 있지'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제가 가끔 선을 넘는데요, 그러면 예나 씨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그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아요. 이 사람도 선이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사랑할 줄 알고, 이해해 주고, 예쁜 건 너무 당연하고요. 제 부족함을 많이 채워줘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선량: 사실, 얼마 전에 예나 씨의 첫 남자친구가 안토니오라고 하길래 저랑 제 남편이 "여러 사람을 만나 봐라.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하는 건 너무 아깝다."라고 말했었거든요. 안토니오에게 좀 미안해지네요.ㅎㅎㅎ

그럼 예나 씨는 카지노 게임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예나: 저는 안토니오의 표현력이 좋았어요. 사실 그전에도 저에게 대시를 한 사람이 여러 명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면 다들 나가떨어졌었어요. 근데 안토니오는 계속하는 거예요. 저는 남자로 안 보인다,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했는데 이 친구가 "나는 친구로는 못 지낸다. 사귀는 거 아니면 널 만날 이유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결정을 해야 했죠. 그래서 한번 만나보자 하고 시작을 했어요.


선량: 역시, 안토니오는 카지노 게임 남자였군요. 카지노 게임 남자들 얼마나 말 잘하고, 표현력 좋은지... 한국 여자들이 껌뻑 넘어간다고 하잖아요.

지금 옆에 계신 제 남편의 표정은 "아이고, 좋을 때다~" 이런 표정이네요. ㅎㅎㅎㅎ

두 분 성향이 다른 것 같지만, 또 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지네요.

두 분 모두 지금 각기 다른 한국기업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일도 사랑도, 모두 잘 이루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밀라노에 살고 있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예나 씨도, 카지노 게임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지난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미래에 대해 기대할 줄 안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봐야 터득할 수 있는 삶의 지혜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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