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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h Mar 01. 2025

숫자 대신 적어보는 여섯 글자 알파벳

영화 <카지노 쿠폰 17 후기


1. 노동 '생존자'


어릴 적,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봤던 뉴스는 교통사고 소식이었다. 나는 뉴스에 교통사고 소식이 보도되면, 사고 차량의 차종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사고 차량이 일반 소형 차량임이 밝혀지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곤 했다. 아버지가 모 기업의 하청 업체에서 위험 물질 운송 기사로 근무하셨던 탓이다. 위험 물질 운송 기사의 사고 소식은 대체로 미처 구출되지 못한 기사의 죽음으로 마무리됐기에, 간혹 뉴스 자막에 위험 물질이나 폭발이란 단어가 쓰여있을 때면 혹여나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올까 두려웠다. 그런 날엔 밤이 되어서야 들어온 아버지가 유독 반가웠더랬다.


어릴 적, 아버지는 껌을 자주 씹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따라 쥬시후레쉬를 즐겨 씹었다. 껌을 씹을 때마다 입 안에 퍼지는 그 달콤한 향에, 나는 아버지가 껌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내가 어른이 되고 차로 왕복 2시간 거리를 출퇴근하게 된 어느 날, 나는 그제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껌을 씹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졸음을 쫓으려 했던 거였다.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하루 1n 시간 가량을 도로 위에서 보내는 사람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대중없었다. 어느 날은 새벽 3시에 집을 나섰고, 어느 날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때론 고작 6시간을 자고 출근해야 했다.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과 충분하지 않은 수면 시간은 운전기사에게 치명적인 요소인데도, 아버지는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정해지는 일정에 맞춰 운전해야 했다. 나는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운전을 배우고서야 깨달았다.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운전기사로 근무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느 날 아버지의 차에는 단말 장치가 붙었다고 했다. 그 이후 회사는 차량이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거나 특정 장소에서 일정 시간 이상 머물 때마다 사유를 물어왔다고 했다. 차를 세워두고 청하는 한두 시간의 잠에도 졸음이 깨지 않는 날이 있는 법인데, 회사는 매번 오랜 시간 정차한 이유를 물었다고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아버지는 졸려도 졸음을 참고 운전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정말 사고를 내버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날에 대한 회고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실상 나의 아버지는 노동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 '생존자'였다는 것을.


아버지는 오래전 운전기사 일을 그만두셨다. 대신 차를 판 돈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그 이후, 우리 집의 수입은 반으로 줄었지만 나는 오히려 후련했다. 혹시라도 일을 하다가 아버지가 죽을까 봐 걱정할 일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기업에게 아버지는 대체 가능한 노동자일지 몰라도, 내게 아버지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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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키, 노동자의 표상


이런 경험이 있어서일까. 나는 봉준호의 영화 <미키 17이 죽어도 다시 출력하면 그만인 '익스펜더블' 미키를 전면으로 내세워 생계를 위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본주의에 부역해야만 하는 노동자와,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그 쓸모에 따라 취급받는 노동자의 삶을 역설한다 느꼈다. 왜냐하면카지노 쿠폰와 우리의 삶은 카지노 쿠폰 17과 카지노 쿠폰 18보다도 더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카지노 쿠폰가 익스펜더블로 근무하기 시작한 이유부터가 그렇다. 그가 익스펜더블로 일하게 된 것은 오직 사채업자를 피해 외계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해서였다. 우스갯소리로 근무 조건을 제대로 확인해봤어야 했다고 얘기할 순 있겠으나, 설령 미키가 부주의했다 해도 그가 익스펜더블로 근무하게 된 건 결국 생존을 위한 것아니었던가.노동자에게 자아실현보다 중요한 것은 생계유지라는 점에서, 우린 미키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익스펜더블의 특성 또한 우리의 삶과 유리된 이야기가 아니다.영화에서 미키는 생체 활동이 정지되면 - 다른 말로 그가 죽으면 - 새로운 몸이 출력되는 존재로, 뇌에 기억을 주입하기만 하면 업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인물이다.3D 프린터처럼 '싸이클러'라는 프린터를 통해 출력되는 복제 인간, 심지어 기억마저 동일한 현(現) 미키가 전(前) 미키의 일을 이어나간다고 하니 참으로 SF스럽고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상 우리는 이에 아주 익숙하다.우리가 떠난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앉아 인수인계를 받고 우리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하는 것은, 현 미키가 전 미키의 업무를 이어나가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회사의 부품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영화에서 미키가 행성 개척을 위한 익스펜더블 - 말 그대로 소모품 - 인 것처럼, 회사에게 있어 노동자란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재화로 환산시켜 주는 소모품이다.실제로 회사는 개인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영화에서 미키가 새 행성정착 목적의 백신 개발을 위해인체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여성이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한 재생산 도구로 여겨졌던 것처럼, 회사에게 노동자란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이다.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쓸모 없어지지만 다행히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 차이가 있다면 미키의 몸은 '싸이클러'를 통해 프린트 가능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뿐이다.


따라서 카지노 쿠폰는죽음 이후에도동일한 몸과 기억을 가진 채 새로 태어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연속성과 동시에 동일한 몸과 기억을 가졌음에도 개성이란개별성을 지닌 독특한 존재로 포장되어 있으나, 결국노동자의 표상이다(실제로 미키는 익스펜더블 노동자이기도 하다). 실상업무 현장에서 노동자가 죽더라도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새로운 노동자가 투입되는 현실비추어보았을 때, 미키의 특징이라 여겨지는 연속성과 개별성은 노동자 집단의속성을정확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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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체 가능하다고 표현될 만큼 도구화된 대상


하지만 더 뛰어나고 더 저렴한 부품이 기업의 생산성과 이익에 직결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대체 가능성은 지울 수 없는 노동자의 속성인 듯하다.


그러나 기업이 노동자를 '익스펜더블'로 여기는 것은, 즉 노동자의 대체 가능성은 단순히 노동자가 언제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존의 문제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러닝 타임 내내 영화가 말하고 있듯, 그리고 우리가 감하듯, 진정으로 노동자의 대체 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대체 가능하다고 표현될 만큼 도구화된 대상에 따르는 경시와 이에 수반되는 열악한 근무 환경이다.


버려질 것에 다정할 기업은 없다. 따라서 '익스펜더블'인 미키에 대한 처우도 그다지 다정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폭력적이다.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란 함부로 신체와 정신을 손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키에게 비윤리적인 실험이 자행된 것도, 그가 언제든 다시 출력할 수 있는 대체 가능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의학팀은 미키에게 의도적으로 우주 방사선을 노출시켜 신체 변화를 묘사하게 하였고, 바이러스에 대항할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미키에게 새로운 행성의 공기를 들이마시게 하였다. 미키의 변화를 추적하고 관찰하며, 그들은 미키를 도구 삼아 기어코 그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새로운 행성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내었다.


때로 누군가는, 그가 설령 같은 노동자일지언정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이를 거리낌 없이 해하기도 한다.카지노 쿠폰와 함께 마카롱 가게를 말아먹었던 친구가 그러하다. 그는 미키와 자신을 쫓던 사채업자가 우주선에까지 쫓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채무를 변제받기 위해 미키에게 죽음을 종용한다. 심지어 그는 그와 절친했던 미키 17이 조금 더 순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미키 18 대신 미키 17이 죽어줄 것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그에게 13조각으로 토막 나 죽더라도 자신과 다르게 재생이 가능하며 - 비록 백업 장치가 파괴되어 재생이 불가능해졌으나 - 심지어 이미 2명이나 존재하는 카지노 쿠폰 17과 카지노 쿠폰 18은 채무 변제의 훌륭한 수단일 뿐인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는 영화가 보여준 것처럼 기업이, 또는 자본가가, 때때로 노동자 그 자신이,사람을 쓰고 버릴 있는 도구로 여기도록 만든다.이러한 도구화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이다. 피고용인과 고용인이 노동력과 보수를 교환하는 구조에서, 고용인에게 피고용인이란 그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노동력을 재화와 교환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도구화, 인간의 대상화를 전제하므로.


그리현실의 카지노 쿠폰들, 특히나 한국의 카지노 쿠폰들은 도구화되고 대상화되어실제로 미키와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다.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보수를 받으나, 그를 얼마나 대체하기 쉬우냐에 비례하여노동자의 보수는 낮게 책정된다.그 일이 육체노동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더 나아가 노동자는 그들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한 근무 환경에서 노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용주는 위험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그 환경에 따른 위험수당 역시 보수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 모든 피해는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열변한다. 고용인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피고용인에게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결코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한 근무 환경과 적절한 보수에 대한 요구,도구화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익추구로 인한 갈등.생존권과 재산권의 대결에서 손을 놓아야 할 자는, 적어도 내겐 분명하다. 하지만,이 갈등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래서 한낱 노동자인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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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사실 난 아직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찾지 못했다. 그저 당신이 어떤 지위에 있든, 특히 당신이 사용인의 위치에 있다면 노동자를 사람으로 봐달라는, 노동자를 한 개인으로서 존중해 달라는 닳고 낡아빠진 말밖에 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그 능력과 쓸모에 따라 대상화되어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부유하지만, 개인과 개인 간의관계에서 개인은 결코타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나샤가 미키를 향해 보여줬던 사랑이 그러했듯.


영화에서 미키를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던 그는,카지노 쿠폰가 겪어야 했던고통을 묵과하지 않고 격렬히 저항한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 끝에서그는 '익스펜더블'을 금지하기위해 공론의 장으로 나선다.이러한 나샤의 존중과 노고 위에서 공산품처럼 이름 뒤에 번호가 매겨지곤 했던 미키 17은,그가 몇 번이나 죽어야 할지조차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던 6자리 숫자카운터로부터 벗어나마침내'반스(BARNES)'라는 여섯 글자 이름을 되찾는다.


미키가 몇넌이나 죽음을 반복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들던 6자리의 플립 카운터 속 '17'이란 숫자. 엔딩에 이르러 이 여섯 자리엔 'BARNES'란 이름이 채워진다.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만큼, 우리가 타인을 한 명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우리가 타인을 한 명의 개인으로 수용할 때만큼, 타인의 삶을 기꺼이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순간은 없다.인간과 크리퍼가 그러했듯이말이다.


그런 점에서나샤는,자본주의 체제의 소모품으로 전락한 미키에게 이름을 되돌려줌으로써자본주의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이에게 노동자 역시 개인의 맥락에서 대체 불가능한 한 사람임을일깨워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타자를 대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존재이다.


그러니 우리가 잠시 타인을 기업의 부품으로으로 보는 시각을 내려놓고 나샤처럼 타인 그 자체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나샤와 미키 18 덕에 어머니의 죽음을 야기하여 트라우마로 남았던 빨간 버튼을 다시 한 번 누를 용기를 얻어,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미키 17처럼. 나샤처럼 부당함에 분노해주는 인물이 있었기에 부조리에 분노하게 된 미키 18처럼.






* 250228 작성. 2503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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