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는 늘 읽을거리가 있었다.
집은 가난했지만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셨다.
어쩌다가 새벽에 잠이 깰 때가 있었는데 안방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방에 엎드려 누운 채로 책을 읽고 계셨다.
벽장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빼곡하게 글씨만 박힌 책들은 엄두가 안 났다.
조금이라도 그림이 들어가 있는 책에 내 눈길이 갔다.
책 제목들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빼서 읽는다는 것은 어른의 세상을 엿보는 것 같은 짜릿함이 있었다.
그때 몰래 빼서 읽었던 책 중에 그림이 많이 그려진 책이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해 보니 아마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번안소설이라고 배웠다.
이광수의 책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 <무정이라는 책이 기억난다.
내가 읽은 것은 아니고 제목이 독특해서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다.
아버지가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책, 기독교에 대한 책들도 있었다.
그중의 한 권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그림을 보면서도 두려워 떨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쓰레기로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카지노 게임주었는데 되돌려받지 못했을 것이다.
흔히 책은 카지노 게임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먼저 읽은 사람은 그 책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을 구입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당연히 카지노 게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 요청에 내 아버지는 넘어가고 말았다.
책을 카지노 게임주었다.
그리고 되돌려받지 못했다.
아버지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나도 친구들에게 여러 권의 책을 카지노 게임주었다.
물론 아직 되돌려받지 못한 책들도 많다.
이런 경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책을 카지노 게임달라고 하면 성큼 카지노 게임준다.
왜 책을 카지노 게임줄까?
그건 그 책이 너무나 좋은 책인데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기가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친구도 이웃도 그 책의 내용을 알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책을 카지노 게임준다.
한 번 카지노 게임준 책은 여간해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잘 안다.
사람들은 카지노 게임간 책을 마치 자기 책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책이 돈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책이 진주처럼 값비싼 물건이라면 빨리 되돌려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책이기 때문에 되돌려주는 데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 같다.
책 한 권쯤이야 돌려주지 않고 슬쩍한다고 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리라.
세상에 여러 도둑이 있지만 책도둑은 좀 고상해 보인다.
책도둑은 재판을 받은 일도 없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책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책은 카지노 게임서라도 읽고, 도둑질해서라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요즘은 책을 빌릴 일이 거의 없다.
전자책을 주로 보기 때문에 책 빌릴 일이 사라져 버렸다.
엊그제도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을 구입했다.
책꽂이에 진열하지 않고 가상의 공간에 담아두었다.
나만의 서재이다.
벌써 몇백 권의 책이 거기에 저장되어 있다.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들여다볼 수도 없다.
나에게 책을 카지노 게임달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선심을 써서 카지노 게임줄 수도 없다.
더 이상 책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카지노 게임와서 읽을 때의 재미 같은 게 없다.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고 왜 여기는 찢어졌냐며 투덜거리는 일도 없다.
책을 카지노 게임주면서 꼭 돌려달라고 말하던 우쭐함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책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가끔은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장에 내 손때를 묻히고 싶다.
내가 밑줄 그은 문장에 누군가의 시선이 고정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너무 과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