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위작 논란과 예술, 권력, 진실의 경계
그림 한 점이 나라를 뒤흔든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미인도’라는 한 폭의 그림은 그렇게 대한민국 미술계의 권위, 과학 감정 시스템, 나아가 정권의 정당성 문제까지 파고들며 30년 넘는 시간을 끌어온 진실 공방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진짜냐 가짜냐의 미술 감정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의 정체성과 발언권, 국가 권력이 예술을 어떻게 소유하고 규정하려 드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화가 천경자가 있습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움직이는 미술관’ 순회전에서 전시한 천경자 작가의 ‘미인도’가 공개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본 당사자, 천경자 본인이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자신만의 붓 터치, 색감, 인물 묘사 방식 등 작가로서의 직관과 기억에 따라 단호하게 위작임을 밝힌 천경자는, “작가는 자식처럼 그림을 알아본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 맞섰습니다. 감정위원회의 공식 감정 결과도 진품이라는 쪽으로 기울면서, 그녀는 충격을 받고 예술원 탈퇴와 절필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위작 논란이 아닌, ‘작가의 진술’과 ‘제도 감정’의 권위가 충돌하는 기이한 현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카지노 가입 쿠폰을 그리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예술 세계를 부정당한 한 작가가, 국가가 보유한 감정 권력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었고, 이는 예술가의 정체성과 예술 작품의 소유권, 정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천경자는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작가였고,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착도 강했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나는 그 카지노 가입 쿠폰을 그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이 카지노 가입 쿠폰이 진짜라고 그렇게까지 주장했을까요?
이 사건은 단순히 미술계 내부의 혼란이 아니라, 정치적 의혹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림이 원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소장품이었고, 10.26 사건 이후 압수된 유산 중 하나로 국가에 귀속됐다는 배경은 단순한 미술품 감정의 논쟁을 넘어서는 요소입니다. 신군부 정권이 김재규를 부패한 사치가로 몰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 그림을 활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입니다. 김재규의 자택에서 환수된 여러 작품 중 하나로 취급된 이 그림이, 진짜든 가짜든 ‘김재규가 모은 고가 예술품’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이용됐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미술 작품이 단순한 ‘그림’ 그 이상이 되어버리는 지점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품이라는 입장을 유지했고, 감정 과정에 여러 과학적 기법이 동원되었다고 주장했지만, 후속 보도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감정은 주관적 안목에 더 크게 의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과학 감정 결과는 불명확하거나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되었고, 이후 감정을 맡은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팀은 0.0002%라는 극히 낮은 확률을 근거로 “미인도는 위작”이라 단정지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진품이라 발표하며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습니다. 과학도, 작가의 말도, 논리도 무시된 채, '진품'이라는 국가적 판단만 남은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직접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 독특한 상황이, 보통의 위작 사건과 정반대의 구도를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보통은 작가나 그 후계자가 ‘이건 진짜다’라고 주장하며 시장에 그림을 내놓고, 미술계와 감정기관이 이를 반박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국가가 소장한 그림에 대해 작가가 위작임을 주장했고, 오히려 국가는 진품이라며 감정 결과를 밀어붙입니다. 이처럼 예술가의 주장이 시스템에 의해 부정당하는 구조는, 과연 예술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천경자 위작 논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유족들은 끝까지 싸움을 이어가고 있고, 대중은 “자기 자식도 몰라보겠느냐”는 말에 설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술과 권력, 작가와 국가, 진실과 제도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그림은 그저 한 점의 미술작품이 아닙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누구의 것이며, 누가 그것의 진실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 앞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미인도’는 어쩌면,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것보다, 그 경계를 그리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