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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May 08. 2025

빌어먹을 카지노 게임 따위!

너 없더라도 나는 전혀 문제없지

옛날옛적에 노부부가 살았더랬습니다.

노부부는 산나물을 캐어 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꾸리는 형편이었죠.

어느 날 몇 날 며칠을 캐고 다듬은 나물 한 광주리를 할아버지가 등에 지고 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쌀이며 콩이며 당분간 먹을 곡식들을 산나물 대신 가득 지고 오기를 말이죠.


벌써 올 시간이 한참을 지났는데도 할아버지는 오질 않았습니다. 집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조금씩 조금씩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그러다 한참 떨어진 언덕 위에까지 도착했지 뭡니까. 언덕 위에 주저앉아 이제나 저제나 할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점점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이 카지노 게임이 엊그제부터 허리가 쑤시네, 다리가 아프네 주물주물거리더니 비탈길에서 구르기라도 한 건 아닌지 몰러."


"아이고, 엊그제 저 아랫집 할멈이 밤에 소피보러 나갔다가 승냥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더니만 우리 카지노 게임이 혹시.. 아이고 무셔라."


할머니의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급기야 할머니는 바닥에서 급히 일어나 한쪽 손은 꾸부정한 허리 뒤로 나머지 한쪽 손으론 지팡이를 짚으며 언덕길을 내려갔습니다. 언덕을 반쯤 내려갔을까요? 저 멀리서 익숙한 노랫가락이 들려오더랍니다. 할머니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맞습니다. 할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그 노랫가락이 분명했습니다.


"아이고, 카지노 게임! 무사했구려!"


할머니는 지팡이를 바닥에 급하게 내려찍어가며 노랫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했습니다.

꺾어지는 모퉁이를 돌아 몇 발자국을 더 가자 저쪽 수풀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주섬주섬 바지춤을 추켜올리던 할아버지는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이윽고 할머니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몇 개 안 남은 이가 훤히 드러나게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마구 흔들어댔죠.


"아이고, 이거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우리 할멈이 날 마중 나온 겐가. 할멈! 할멈! 새색시적에는 장에 다녀올 때마다 길의 반절만큼이나 나와있더니, 오늘 꼭 새색시 같네그려 으허헛."


할아버지는 신이 나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걸음걸이는 갈지자로 비틀비틀 휘청 휘청거렸고 한 손엔 하얀 술병이 들려있지 뭡니까.

이윽고 할머니 앞에 도착한 할아버지가 두 팔을 벌려 할머니를 안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선 술냄새가 풀풀 풍겨왔습니다.


"할멈! 할멈! 오늘 꼭 새색시 같다고! 이 서방님이 보고 싶어서 이리 나온 것인가 으허헛."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허헛,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니 우리 할멈 아주 꼭 새색시적이랑 똑같네 그려. 곱다 고와!"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만 할아버지 앞에 내밀었습니다.


"내놔요."


"이거 내 눈이 잘못된 건가. 마누란줄 알았더니 산적을 만났나. 다짜고짜 내놓으라니 뭘 내놓으란 말인가 이 사람아."


"쌀! 콩! 말린 생선! 다 어디 있냐고 이 망할 카지노 게임탱이야!"


"어허, 오늘 기분 좀 냈기로서니 하늘 같은 서방님한테 망할 카지노 게임탱이라니. 말 좀 가려하게. 이 사람이 쯧.

아니, 할멈 내 말 좀 들어보게나. 글쎄 내가 장에 도착해서 좌판을 벌이자마자 여기저기서 나물주쇼 나물주쇼하고 순식간에 가져온 나물이 전부 동이 나질 않았겠는가. 셈도 여유 있게 쳤겠다 시간도 많이 남았겠다 장을 한 바퀴 도는데 내 누굴 만났는지 아는가? 김카지노 게임을 만났어! 달포 전까지만 해도 시름시름 앓고 있던 그 김카지노 게임을 만났단 말이지! 그 다 죽어가던 김카지노 게임이 아주 멀쩡허게 앉아서 탁주 한 사발을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야. 그래서 내 놀라가지고 옆에 앉아 비법을 좀 전해 듣느라고 늦었지 뭔가. 무슨 비법이냐고? 아 무슨 비법이겠어. 저승사자한테 뭐라고 얘기혔길래 이리 쌩쌩히 놔주던가 하고 그 비법 좀 들으려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할머니는 더 이상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두 손을 들어 할아버지의 가슴팍을 힘껏 밀어버렸죠.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할아버지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우리 할멈이 서방을 죽이네 그래!"


"야이 화상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쌀이며 콩이며 다 내팽개치고 그 주둥이로 술이 술술 넘어가디? 아이고, 저 저.. 이 빌어먹을 카지노 게임 따위!"



출근 버스에 앉아, 오늘은 글을 한 편 올려야지 하고 눈을 감고 카지노 게임을 기다려보았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카지노 게임은 번뜩이지 않고, 잠만 솔솔 오지 뭡니까.

그때 저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빌어먹을 카지노 게임 따위.

그렇습니다. 우리가 카지노 게임이 없지, 손가락이 없습니까.

카지노 게임이 없다고 못쓸쏘냐. 하며 써보았습니다.


에디슨이 그랬다죠.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카지노 게임으로 이루어진다고.

그래서그런지 우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카지노 게임을 각각 따로 보는 것 같습니다.

1퍼센트라도 카지노 게임을 가진 자가 99퍼센트의 노력을 해야 뭔가 이루어진다고 말이죠.

하지만 요즘 저는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99퍼센트의 노력을 하다 보면 1퍼센트의 카지노 게임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예를 들자면 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글을 열심히 써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 1퍼센트의 카지노 게임 같은 친구가 짠하고 나타나는 뭐 그런 식이랄까요.


그러니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소재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오늘은 그냥 한 번 써보세요.

이 말을 외치면서 말이죠.

빌어먹을 카지노 게임 따위! 내가 너 없이 못쓸 거 같으냐!


그럼 이만, 삼만, 사만.. :)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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