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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h못한 Apr 27. 2025

카지노 쿠폰과 카지노 쿠폰, 그리고 그 너머

인간관계에서 걸음마

인기 없는사람


고백하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베프였던 적이 없다.

난 그 사람을 카지노 쿠폰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나 혼자만 그랬던적도 여러 번 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고민이나 숙제처럼급한 답을물어보기는 쉽지만, 정작 쉬는 시간을 내어 같이 차 마시며 놀기는 꺼려지는 - 내가 그런 류의 사람이다.

혼자만 내적 친근감을 느끼고 상대를 신경 써왔다는것을 깨닫고 난 뒤에 밀려오는 부끄러움도 나의 몫, 위축되는 마음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어린 시절부터 저러한 경험이 쌓이고 나니 성인이 된시점부터'내가 카지노 쿠폰로 여기면 저 사람이 난처하게 생각할거야.' 라는 생각에 모든 사람을 카지노 쿠폰으로 퉁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카지노 쿠폰가 있냐는 물음엔 자연스레 '딱히 없어요.' 라는 말이 입술을 비집고 나와 버린다.


카지노 쿠폰 너머로 카지노 쿠폰, 그 너머


카지노 쿠폰은 뭔지 확실히 알겠다, 아는사람.

카지노 쿠폰라면 역시고민 상담을 나누는 사이여야 하는 걸까.

그럼 나한테 종종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카지노 쿠폰로 봐도 무방한 걸까.

그럼너머에 있는 베스트프렌드는 또 뭐지? 어디까지 고민거리를 받아야 베스트프렌드일까.

서로 "너와 나는 이제부터 베프야, 땅땅땅!" 하는 선언을해야 가능해지는 사이인 걸까?

(진짜 몰라서)


나는 인간관계에서 종착점이 아닌, 즈려밟고 가는 N번째 계단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이제부터 넌 내 카지노 쿠폰야!" 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카지노 쿠폰의 단계를 피라미드로 정립한다면 난 아마 가장 밑바닥에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난 카지노 쿠폰로서 매력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전혀 아무하고도 교류하지 않느냐, 그건 또 아니다.

10년 ~ 15년 가량 알고 지낸, 연락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집에 놀러가고 가족을 알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말을 놓지는 못 하고 존대를 쓰는 사이.또한 상대들도 나를'카지노 쿠폰' 이라 부른다

내 주변은 대체로 평양냉면처럼 슴슴한 편이다.


알고 보니AI 같았던 나


그런데 최근 심리 상담 시간에 상담사님께"앞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좋겠다." 라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 몇 달이나 진행된 상담에서)

나는 이 말에 살짝 충격을 받았던 것이, 과거 어느 언니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ㅇㅇ 님은 본인 이야기를 진짜 안 하시잖아요."

난 그 언니에게 내 삶의 대부분을 다 말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람.

살짝 멍해졌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육하원칙에 따라 상황 설명은 자세히 다 하는 편이지만, (질문 받으면 웬만한 건 다 말해 주는 편이다) 그 속의 나의 '감정'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예를 들면 이렇다.

"오늘 아침 출근길 사당역에서 내 가방을 열고 지갑을 꺼내 가려는 사람을 발견했어요.그래서 그 사람을잡으려다가 놓쳐 버렸어요. 근데 지갑은 무사해요, 돈도 안 잃어버렸고."

상황적인 설명은 이걸로 되었다. 그런데아침의 그긴박했던 상황,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열린 가방이 느껴졌을 때의 어리둥절함과 소매치기를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사람을 놓쳐 버렸을 때의 분함, 하지만지갑이 무사하다는 것에 느낀 안도감과 같은감정이 모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활자로 옮겨 놓고 나니, 내 대화 방식은 너무 AI 같다.

아. 이래서 혹시 내가 카지노 쿠폰가 없었던 걸까. 다가왔던 사람들이 보냈던 시그널조차 나는 모르고 넘겨 버렸던 게 아닐까.


정말 마음을 털어 놓아도 되는 걸까


사실 나는 일정 허들을 넘어 가면 갑자기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속사포처럼 내 모든 감정을 쏟고 울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 날 정말 많은 후회를 했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남을 이용하는' 짓을 내가 해버렸던 것 같아 사과에 사과를 거듭한 적이 있다.그 이후로는 더더욱 극단적으로 감정을 절제해 왔던 것 같다.


나는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 놓아도 되는 걸까.

혹시 상대도 나에게 그런 걸 내심 바라고 있는 걸까.

만약에 내 감정을 털어놓는다면 어디까지가 적정선일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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