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의 슬픔, 바이의 기쁨
첫 해외 봉사에 같이 다녀온 지상이는 대학에 진학한 후, 원하는 대로 공군 사관학교로 편입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지상이의 모습을 보며 욕심이 생겼다. 다시 한번 캄보디아 아이들을 만나 확인하고 싶었다.
‘고작 일주일 동안 무엇을 얻고 왔던 걸까?’
난 오랫동안 영어 강사로 일했다. 정해진 틀에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질 즈음. 해외 봉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캄보디아 봉사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는데, 막연하게만 듣고만 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초등학생들인데도 말이다.
‘같이 한번 가볼까?’
다섯 명의 여권을 챙기며, 공항 여기저기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한번 경험이 있기에 두 번째는 쉬울 거로 생각했지만, 부모님을 떠나 여행도, 아닌 봉사를 하는 일은 예상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한다고 했을까.’
‘너희들도 지상이처럼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곧 시골 마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렘이 더 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비행 5시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지난번에 갔던 마을에 다시 가고 싶다고 <캄보프렌드에 미리 연락해 놓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모습이 그려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들에게 첫 외국인이었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할까.’
‘학생들이 캄보디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지저분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미소를 가졌다. 그러나 미소 속에서 드러나는 썩은 이를 보고, 우리 학생들이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잘 양치하지 않는 캄보디아인은 30살이 되기도 전에 이가 많이 빠져 있었다. 칫솔과 치약 세트를 선물했지만, 치약을 다 사용하고, 칫솔의 모가 다 닳아도 새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씨엠립 공항에서 반갑게 맞아 준 통역 직원 덕분에 친숙한 분위기 속에서 캄보디아 일정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미리 연습한 대로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수스다이!(안녕하세요!)”
기대와 설렘보다는 피곤함이 앞서는 듯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캄보디아 너무 더워요.”
“졸려요”
“배고파요”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보다는 학생들의 불평스러운 이야기가 떠나질 않아서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면 어쩌지.’
‘먼 타국에 와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돌아가면 어쩌지.’
“밥 먹어”
“저 속이 안 좋아서 못 먹을 것 같아요.”
속이 안 좋다기보다는 호텔 조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 듯했다.
“먹어, 안 그럼 쓰러져.”
허공에 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곳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 호수에 가서 물고기 잡고, 나무에 올라 망고 따서 끼니를 해결해. 너희들처럼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학생들 수가 많아 학교는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도 해야 하고.”
“여행하러 온 게 아니고 봉사하러 온 거야. 너희들은 아이들의 선생님이라고.”
학생들의 조용한 분위기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아~”
“와”
“큭, 큭”
울퉁불퉁한 도로에 맞춰 차가 움직이니 낄낄거리며 춤을 추는 듯했다.
“우리는 선생님이야, 꼬마 선생님”
많은 아이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너무 그리웠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어서 그들의 미소가 더욱 빛나고 있었다. 걱정과 달리 우리 꼬마 선생님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인사를 했다.
“Hello, 헬로”
“선생님, 얘네들 영어 못해요?”
“아니, 너희만큼 할걸.”
말이 제대로 통할 리 없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우리 꼬마 선생님은 몸짓으로 서로 소개하는 듯했다. 처음 만난 어색함도 없이, 서로 손을 잡고 무리 지어 교실로 향했다.
갑자기 슬퍼졌다. 간절히 보고 싶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었는데,
앞으로 10일간 난 이곳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데,
‘왜일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며 웃고 있지만, 분명 헤어지는 시간이 다시 오기 때문이다. 오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10일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금방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스레이가 저 좋은가 봐요, 하트 그려줬어요. “
”선생님, 소파이가 제 이름을 캄보디아로 써 줬어요. “
”선생님, 어떤 얘가 저 때리고 도망갔어요. “
꼬마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아침과 다르게 들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hello’가 좋아? ‘bye’가 좋아 “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hello죠 “
”선생님은 ‘hello’가 너무 슬프게 들려. 처음 만날 날이지만, 우리는 10일 후에는 떠나잖아. ‘bye’라고 말하고 아이들과 헤어졌지만, 우리는 내일 만나잖아. “
눈이 마주친 학생들은 이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봉사하고 안전히 돌아가자! “
”네 “
돌아가는 차 안이 크게 메아리쳤다.
해외 봉사는 교육 봉사, 건축 봉사, 기부 등으로 나뉜다. 교육 봉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종이 접기와 노래 부르기, 보드게임 등을 함께한다. 봉사자는 활동 기간에 맞춰 프로그램을 직접 준비해야 하며, 필요한 모든 준비물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배우는 경험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야’라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꼬마 선생님이 되어 친구들을 가르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저절로 행복이 밀려왔다.
지난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시꺼먼 치아가 자꾸 생각나서 양치 수업을 준비했다.
“선생님, 얘네들 치약 먹어요! 어떡해요?”
수업이 시작되자 꼬마 선생님들은 분주해졌다. 스스로 양치를 하며 오물오물 헹군 뒤,
“퉤”
하고 물을 뱉어 보인다. 말보다 눈빛으로, 몸짓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그렇게 서로를 가르쳤다.
봉사자는 대부분 대학생이나 성인이었지만, 우리 팀의 다섯 명의 꼬마 선생님들은 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봉사 팀이 되었다. 작은 실수도 가장 어린 팀이라는 이유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졌고, 아이들 자신도 점점 자신감을 얻는 듯했다.
우리 팀이 신기하게 보였던 걸까? 혼자 봉사하러 온 한 봉사자가 자연스럽게 우리 팀에 합류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변변한 놀이 기구가 없었다. 지난번에 지상이와 함께 이곳에 다시 온다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운동장에 무언가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기 전, 꼬마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에 농구대를 선물하기로 했다. 설치에 필요한 경비는 우리가 지원했다.
오전과 오후 수업이 끝난 후, 시간을 내어 운동장 한쪽을 농구 코트로 만들기 시작했다. 풀이 무성한 곳의 잡초를 뽑고, 바닥을 다듬는 일은 꼬마 선생님의 몫이었다. 바닥이 단단하게 다져지면 시멘트를 옮겼고, 현지 전문가분이 도와주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 없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꼬마 선생님들이 무척 대견하게 느껴졌다.
농구 코트를 완성한 후, 미리 준비해 간 농구공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함께 신나는 게임을 했다. 그 순간만큼은 한국도, 캄보디아도 아닌, 그저 순수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이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우리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동네잔치라도 하듯 마을 사람들이 운동장에 꽉 찼다. 준비한 물품들로 장터를 열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선물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저희 다시 올 수 있어요? “
학생들은 흐느끼며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또 오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bye가 뭔지 알 것 같아요, 흑, 흑“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10일간 어땠는지 글로 남겼다. 학생들의 후기를 보며 나 또한 성장해 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