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리 회사 차장님 앞으로 거의 매일 카지노 게임왔다. 누가 저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카지노 게임를 보내는 걸까. 외국인 회장님의 비서이자능통한 외국어 실력은 기본이요 늘씬한 몸매에 주먹만 한 얼굴, 도도한 외모의 30대 후반의 골드미스인 그녀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보였다. 게다가 몸이 앙상하게 말랐으면서 비건식을 지향하는 분이라 육류는 생선 빼고는 모두 안 드셨다. 그래서일까 회사 사람들은 그녀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를 조금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햄버거, 돈가스, 순댓국처럼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직원들은 특히나 더더 그녀를 피해 다녔다. 그 당시만 해도 식욕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던 나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게 그거였기 때문에어디에끼어도 상관없는스타일이라매의 눈을 가진 까다로운 차장님께 간택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제 차장님과 나는 점심시간의 단짝이 되어 차장님이 드시고 싶은 비건 음식점들을 향해 찾아다니기에 바빴다. 나는 풀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고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나마 차장님과 겹치는 것이 있다면 생선류이지만 그것도 매 점심시간마다 먹기엔 너무 단조로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차장님은 곤드레밥집, 생선구이 가게, 우동가게, 전복 돌솥밥집등등 나름 다양한 식당들을 알고 계셔서생각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꼭 고기가 아니더라도 세상에 담백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이렇게나 많구나를 느낀 계기가 됐달까. 확실히 육류를 먹고 왔을 때보다는 속이 더부룩하지 않으니 점심 이후에 덜 졸리긴 했다.
눈이 말똥말똥한 상태로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차장님은 어느새 저 멀리서 카지노 게임를 들고 쓰윽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갑자기 카지노 게임를 마구 뜯으셨다. 그리고는 직원들 있는 자리로 와서는 이 목걸이 너무 예쁘지 않냐며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되게 행복해하셨다. 다음날은 니트를 자랑하시고, 그다음 날은 귀걸이를 보여주셨다. 어느 날은도대체 발송인이 남자친구인가 절친인 건가 너무 궁금해 누가 보낸 카지노 게임이냐고 묻자 차장님 본인이 직접 주문한 거란다. 카지노 게임를 한 번 주문해 보니 이걸 끊을 수가 없단다. 왜 끊을 수가 없냐고 하자 차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내가 주문한 물건이지만 받을 때에는카지노 게임 받았다는 느낌이 너무 좋고 설레요. 그래서 이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계속 카지노 게임를 시키게 되네요."
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실 15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카지노 게임를 하루가 멀다 하고 주야장천 시키던 시절은 아니었다. 지금은 펜 한 자루, 샴푸 한 통도 무료배송이 되는 시대라 이것저것 카지노 게임로 편리하게 주문해 받지만 그때만 해도 소소한 물건들은 직접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 오던 시절이었다. 내가 나에게 카지노 게임하는 일은 더더욱이 흔하지 않을 때였다. 해봐야 티셔츠 한 장 한 달에 한 번 살까 말까 일 텐데. 근데 차장님은 이미 누군가 보내는 물건의 의미가 얼마나 값지고 본인을 행복해하는지를 깊게 느끼고 있으셨나 보다. 그냥 물건을 받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받음의 '가치'를 알고 계셨달까.
어쩌면 차장님은 많이 외로우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도 있고 사랑하는 반려묘도 키우고 있었지만 그들이 또 채워줄 수 없는 빈 공간이 차장님의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릴 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카지노 게임로 채우고 있으신 거였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부모님께 가득 받았던 사랑을 성인이 된 이후 그리운 마음에 카지노 게임로 충족하고 계셨는지 차장님이 아닌 이상 나도 속 깊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이라는 것이 주는 사람에게 더 행복한 일이라지만 받는 사람에게도 역시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으려고 주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건네는 카지노 게임이 결코 싫지는 않다. 아니 좋다. 누군가 나에게 베푸는 마음을 물질적인 '형태'로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그 정성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또 그 고마움에 내가 은혜를 갚고 표현하면서 기특한 마음이 계속 돌고 도는 게 아닐까.
차장님은카지노 게임로 인해 선물 같은 하루를 보내셨다면 나에겐 어떤 날이 그러할까? 나는 책을 받는 것이 요즘은 최고의 카지노 게임이다. 이미 책장에 새로 산 책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도 외출했다서점에 들러또 한두 권씩 사 오는 나를 보면서 반성 또 반성을 한다. 그러나어느새 인터넷으로 새로운책들을 또 장바구니에 담고,며칠 후 주문버튼을 누르는나를 발견한다. 머리를 쥐어박아 보지만 책을 마주하는 그짜릿한 순간을 잊지 못해 계속 책을 사들인다. 책은 그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게 하니까. 책 냄새는 또 얼마나 좋게요.
조금 더 눈이 건강하던 시절에 독서광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그렇다고지금 눈이 안 보이는 건 아니니 훗날 돋보기를 맞춰 읽더라도 폭주하는 독서에 대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독서하는 하루, 그것이 나에겐 차장님의 카지노 게임와 같은 의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