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전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오돌오돌 떨며 살려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라는 표정으로 물과 격렬히 싸우던.. 아니 혼자 싸우던 그 시절. 물님은 절대 나를 위협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적대심에 가득 찬 채 물님을 노려보며 네가 날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라며 물님과 화합할 생각은 절대 하지 못하고 그저 너를 내가 다 마셔버리겠다는 작정으로 덤벼댔다. 그 격한 시절 내 눈을 사로잡던 분들이 있었으니. 초급레일 옆줄에 있는 중급반 언니들이었다. 어찌나 우아하고 품격 있게 물님과 사랑을 속삭이던지들. 어떤 자세를 시켜도 밝은 미소를 띠신 채 물속에 퐁당 들어가서 꼬리만 보이지 않을 뿐 다리자체가 꼬리가 되어 우아하게 흔들면서 앞으로 직진하셨다. 난 그때 생각했다. 내가 중급에 갈 수 있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라고.
그랬던 내가, 후후훗. 드디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진급이 되었다! 무슨 운동을 해도 꾸준히 했던 운동이라곤 개미똥만치도 없던 내가 장작 반년동안의 버둥거림 끝에 드디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언니들에게 속삭인다.
“언니, 저 다음 달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요.”
“와!!! 잘됐다 포비!! 어서어서 와서 같이 하자!!”
초급멤버들에게 속삭인다.
“저기, 저 다음 달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요.”
“와!!! 좋으시겠어요!! 축하드려요!!”
수영장 프런트에 속삭인다.
“저기, 저 다음 달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수강신청이요.”
“넵 같은 시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으로 접수해 놓겠습니다.”
수영장 도우미 이모님에게 속삭인다.
“이모님, 저 다음 달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요”
“아이고~ 열쉬미 하더니 잘됐구만그랴~ 이제 더 열심히 허겠네그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붙잡고 외치고 싶다.
“저!!!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요오오오오오오오옹!!!”
막상 중급령이 떨어지고 나자 겁도 나는 건 사실이지만 5개월 전 내가 우러러보았던 인어공주언니들 사이에 나도 낄 수 있다는 사실에 내 심장박동수는 매일매일 아주 흥이 올라있다. 초급수업을 하면서도 ‘이제 난 중급인의 자세를 가져야 해’라며 아무도 안 보는데 혼자 어깨에 힘을 빡 준채 거들먹거리며 수영을 하고 있고 프런트에 인사를 할 때도 나도 모르게 눈을 찡끗 거리며 “중급 콜?”이러며 지나갈까 봐 스스로 조심을 하고 있다. 남편은 한 달 전 자기가 중급에 올라갈 때는 꼴 보기 싫다며 소리 지르던 여자가 자기가 중급차례가 되니 별의별 꼴값을 떨고 있는 걸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남편의 눈빛 따위는 무시한 채 난 진급의 기쁨을 혼자 마구 느끼고 있다.
지금의 기분, 왠지 낯설지 않다 싶더니 올 가을 내 첫 책이 나왔을 때 그 기분과 같은 것 같다. 혼자 방방 뜨고 여기저기 소문내야 할 것 같고 그게 나라며 소리쳐야 할 것 같은 이 기분 첫 책이 나왔을 때 느꼈던 기분과 아주아주 흡사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이뤄낸 성과에 의한 성취감을 맛볼일이 정말 줄어들었다. 고작해야 남편이 진급을 하거나 보너스를 받아오거나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올 때나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건 모조리 내가 이뤄낸 성과가 아닌 그들이 이뤄낸 성과이기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기쁘진 않았던 것 같다. 젊었던 시절엔 4-50대가 되어서 학업을 다시 시작하거나 대학을 오시는 분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분들의 이유나 기쁨을 나도 역시 같이 느끼고 있다. 얼마나 배우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기분이 충만하실까. 삶을 살아가는 건 그러고 보면 단순한 의식주를 벗어나 개인의 성취감이란 게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느낄 수가 있다.
사소한 성취감은 더 큰 성취감을 찾게 만든다. 수영이 중급으로 진급되자 뭔가 하나를 더 해보고 싶어 진다. 갑자기 요가나 헬스를 추가로 해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 뜬금없지만 독서모임을 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입봉 1기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을 해보니 함께 글을 읽는 모임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오고 있다. 처음 입봉 모임을 생각했을 땐 너무 막연하고 걱정만 앞섰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모두 다 ‘쓰기’라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 서로의 합도 좋고 그 성과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수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너무 떨리고 걱정이 앞섰으나 모두 다 ‘물에 뜨자’ 이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두 다 열쉼히 헤엄쳐나갔다. 그 결과 중급진급이라는 달디단 열매를 맺게 된 것처럼 독서모임도 또 다른 성과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무한도전. 아무래도 중급레일에 서서 “우리 같이 독서모임 해보실래요?”라고 속삭이며 독서모임 삐끼가 돼 봐야 할 것 같다. 전혀 연결이 되지 않지만 또 이런 곳에서 연결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 중급진급과 독서모임. 올겨울 이 둘의 시너지가 아주 기대된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같이 독서모임 해보실래유? 방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