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검은 봉다리
주말, 아침 열 시에 나간 아들이 열두 시간 만에 들어왔다.
의문의 검은 봉다리 세 개를 들고.
살짝 애매한 웃음을 흘리면서.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엄마의 반응을 살피는 것 같기도 하고?
교회에서 아들을 위해 (거의 울 뻔한) 간절한 기도를 드린 후 집에 온 나는 아들이 서울에 간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와 동묘를 갔다는 것.
- 쓰레기 사 오지 말라고 얘기해 주지!
- 했어. 그 돈으로 광장 시장 가서 맛있는 거나 사 먹으라고 했어.
다행히 남편이 한 마디를 했다고 했다.
- 나 프라다 재킷 샀잖아. 이거 찐이야.
아들이 봉다리에서 재킷을 꺼내며 말했다. 브라운톤의 얇은 봄 재킷이었다.
- 얼만데?
- 십만 원.
- 십!.... 야!
- 예쁘지 않아?
-...... 색이 나쁘지 않네. 재민이는 뭐 샀고?
- 걔는 꼼데 카디건.
-...... 얼마 주고?
- 5만 원. 짱이지?
-......
- 엄마! 꼼데는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키네 집 강아지잖아?
거실에 앉아있던 작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는 척을 했다.
그래, 그게 정품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쳐! 오직 나이키, 아니면 비브랜드를 섞어 입는 니들이 프라다라고 쓰여 있는 재킷 하나만 떡 하니 입으면 그 모습이 어울리고?
그렇게아들과 얘기를 하고돌아서는데, 불현듯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 1998년:신장이 180인 사람이나 입을 법한 기장의 멜빵 청바지. 자그마치 힙합 스똬ㅡ일. 플랫폼 높은 운동화조차도 다 덮이는 기장의 청바지를 입고 서울의 바닥이란 바닥은 죄다 쓸고 다니던 시절. 엄마의 빗발치던 구박.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 팬츠.
- 2001년: 더 이상 대학 신입생이 아닌 나도 여자라고요,를 외치던 시절. 친구가 입은 베트남 전통 치파오 스타일 - 꽃자수에 옆라인이 짝 찢어진 - 원피스에 시스루 와이드 팬츠 매치가어찌나 시크하고 신비로워 보이던지. 나도 따라 사서 입고 다닌 날들. 팬츠 컬러는 하얀색. 그러고 강의를 들었네. 역시 그 친구가 연출한 룩이 멋져 보여서 친구 몰래 사서 똑같이 연출해 봤던 벨벳 셔츠에 매치한 숏 넥타이. 넥타이 색은 옐로. (친구야, 잘 지내니?)
- 2005년: 대학 졸업 후 한창 직장생활을 하던 20대였으니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조금은 객관성을 가질 만도 한데. 그 당시 원피스처럼 입었던 니트 스웨터. 스웨터 기장이 좀 있는 편이었지만 겨우 힙을 덮는 정도였기 때문에 당연히 하의를 입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아들이 봉다리를 오픈했을 때 나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고, 아들은 머쓱해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서울 구경 잘하고 왔어? 그거 진짜 프라다면 대박이다! 잘 어울리네!
그렇게 얘기해 줄걸.
십만 원. 고딩이 그럴 수도 있지.
핀잔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안 줬다고 보긴 어렵다. 다음번에는, 다음에는 절대로 비웃지 않으리라. 오히려 호응해 주리라! 쿨한 엄마가 되리라!
그러니까 다음에는 말이다.
p.s 1. 2주가 지났지만, 나는 아들이 그 재킷을 입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함께 사온 후드티와 청바지도.
p.s. 2. 검색해 보니 동묘는 여전히 붐비고, 구제 명품 쇼핑으로 몇십을 썼다는 글도 보인다. 사실 많은 멋쟁이들이 구제 쇼핑을 즐기지 않나. 실은 나도 예전에 동묘가 궁금했고 가보기도 했다. 내가 가끔 가는 중고 매장 '아름다운 가게'와 뭐가 그리 엄청나게 다르다고? 경험해야 알 수 있다는 그 쉬운 진리를 왜 나는 깡그리 잊고 말았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는 그리 관대하면서, 아들에게 뭐든지 경험해 보라고 말로는 하면서. 아들! 뭐든지 해 봐. 뭐라도 반가워! 그러니까... (연애는 좀 더 커서 하면 좋겠고... 그리고 또 뭘 빼야 돼야...)
실패할 기회를 남에게 뺏기지 마라.
- <빛이 이끄는 곳으로 저자 백희성이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다는 말.
2015년, 환경 캠페인의 일원으로 검은 봉지를 들고 포토존에 선 영화배우 강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