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어젯밤 아이들이 저녁메뉴로 추천한 짜장밥 재료를 샀다. 감자, 당근, 호박, 버섯, 간 돼지고기를 사 왔다. 사온 재료를 정리하고 어김없이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에는 브런치 창을 띄어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니 졸음이 쏟아졌다. 잠깐 눈 좀 부칠요량으로 의자에 기대었다. 잠시 쉬려 했던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벌떡 일어났다. 잠을 깨고 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짜장 가루가 없는 것이 아닌가! 요리를 하고 바로 글을 쓸 계획이었는데, 짜장가루가 없으니 마트에 다녀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밥을 만들 생각에 기쁜 카지노 게임으로 장을 봐왔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빼먹고 오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니 빨리 결정해야 했다. 마트를 다녀올지 말지. 마트에 다녀오는 시간과 만드는 시간을 생각해 보니 재료를 손질한 후에 다녀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듯했다.
재료 손질 후 장바구니를 들고 밖을 나섰다. 정신을 맑게 깨울 겸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걸으면서글에 대해 생각했다. 글을 쓰고 싶은 것인지,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지금 내 카지노 게임이 어떤지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무감보다 쓰고 싶은 카지노 게임이 더 강한 것 같다.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면 억지로 쓰는 느낌이 들어 살짝 서글퍼졌다. 그와 반대로 쓰고 싶은 카지노 게임이 강하다면, 그것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글쓰기가 잘 안 되어도 괜찮고 힘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면 그 카지노 게임을 내려놓기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노력해야만 할 것 같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서라도 잘하고 싶은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를 하며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글쓰기에 대한 나의 카지노 게임일 것이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다면 좀 더 글쓰기를 성장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노력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면서 나의 카지노 게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이가 보더라도 이해될 수 있도록 글쓰기에 대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짜장 가루를 사러 가는 길에 내 머릿속에는 시간의 유한함으로 인한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가득 찼다. 하루를 다 글쓰기로 채울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생각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정된 시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은 무얼 택할까 궁금했다. 만약 내가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무얼 하고 있었을까?
아르바이트? 공부? TV 시청? 쇼핑몰 구경? 글을 쓰기 이전이었다면 이 일들을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의미하게 즐거움을 쫓아 방황했을 듯하다. 순간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밖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평일에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교통비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돌아다니지 않는다 하여 지루하지 않다. 글을 쓰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자긍심을 가지게 한다. 글을 씀으로 인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판단이나 평가가 아닌 궁금함이다. 그만큼 글을 씀으로 세상에 대해 더 궁금해지고, 소통하고 싶은 카지노 게임이 간절해졌다. 상대방의 느낌과 감정을 알고 싶어 졌고, 그 카지노 게임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어떤 역할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보다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해 왔고, 그로 인해 지금 어떤 카지노 게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 혹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글로 도움을 주고 싶다.
쓰고 읽으며 생각을 키워 나가고, 공유하기를 바란다. 글을 쓰며 느끼는 것은,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카지노 게임의 성장과 외적인 성취의 욕구가 있는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성숙한 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사람들을 만나는 데 있어 주춤하게 되니 아쉬운 카지노 게임이 든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친구의 엄마였다. 인사를 하려 했는데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니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문으로 그 엄마의 모습이 비쳤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서로를 낯선 타인으로 스쳐 지나가니 카지노 게임 한편에 불편함이 올라온다. 그녀도 세상이 궁금하고 타인이 궁금한 것일까? 마스크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나의 글쓰기는 세상을 향해 열려있다. 나에 대한 궁금함을 넘어 세상 앞에 놓인 벽을 넘어서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나가면 될 것 같은데 여전히 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그 벽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카지노 게임이다. 열쇠로 걸어 잠근 문이다. 나는 그 문을 두드려본다. 그 문을 열기 위해 오르고 내린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한 계단 두 계단 밟고 올라가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