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쌀을 씻으며 자신이 유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만져졌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쌀알을 쓸어내는 동안 거친 것들이 둥글게 깎이기를 바랐다. 가벼운 것들이 둥둥 떠내려갔다.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모서리였음에도 은혜는 밥솥을 일곱 번이나 기울여 쌀알을 가다듬었다. 막 굴린 시간들을 이런 식으로 끈덕지게 혹은 결벽하게 교정하려 했다.
은혜는 '막 굴린 시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하지만 스스로도 그 표현이 짓궂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정돈된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뒤 생각 않고 뛰어들면 그만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경험한 많은 것들은 기쁨보다는 고통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고통을 경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누군가를 오래 저주할 수 없었다. 그 고통은 기대에 따른 실망에서, 더 이상 사랑을 나눌 수 없는 공허함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대했고 사랑했음을 기억했다.
될 수 있는 한 무모하게 사는 것이 은혜 삶의 방향이었지만 무모하게 시작한 사랑은 모든 것에 모순을 불러왔다. 무모함은 곧바로 진중함을 불러왔고 깊은 생각은 어서 가벼워지기를 재촉했다. 은혜에게 그것은 쉽지 않았다. 유진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무모해야 하고 유진이 걱정하지 않는 선에서만 생각해야 했다. 부정적으로 치닫기만 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적당히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은혜는 자신의 기도가 누군가에게 닿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무신론자였고 여러 가지 종교를 믿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탐독하는 이였다. 두부를 볼 때마다 교도소를 생각했고 선과 악을,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그런 건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같은 결론을 도출했음에도 그에 대해 생각하는 건 즐거웠다. 칼 같은 것이 살해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님에도 때때로 그렇게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은혜는 나의 악인이 누군가에겐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런 식의 생각은 은혜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가장 손쉬운 미워하기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드는 행동이기도 했다.
은혜를 떠나간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말했고 은혜는 수긍하며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했다. 히스테리에 잘 동요되는 사람일수록 고통스러웠지만 그들의 반응에 잠시 안도할 수 있었다. 멈춰 세우기 위해 뒤흔드는 주사위 같았다. 작은 수가 나오면 그만이었고 높은 수가 나오면 계속 굴리고 싶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기세가 더해졌다. 버려짐과 애정을 동시에 욕망한 결과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기도란 자기 암시에 가까운 속삭임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지난 사랑에서 얻은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으니 이제 실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통제력이 강하다는 건 그것에 취약하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니까 은혜는 기도를 할수록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제 더 생각하면 안 되었다. 그것은 유진을 걱정하게 하는 일이니 그만두어야 했다. 밥솥에 증기가 피어올랐고 가까이 있던 은혜는 깜짝 놀라 컵을 놓쳤다. 몇 해 전 J에게 선물 받은 도자기 컵 손잡이가 떨어졌다. 은혜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마저 부수었다. 쓸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J에게 받은 마음은 깨진 부분 없이 성했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J를 사랑하는지 깨달으며 손잡이를 신문지에 감싸 쓰레기통에 버렸다.
유진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식탁을 차리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때로 은혜는 헌신적인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이럴 수가 있다는 것에 역겨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자 했다. 그러나 무엇에? 은혜는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두려웠다. 하지만 두부를 아주 좋아하던 자신이 두부를 가끔 먹는 그저 그런 반찬으로 여기게 된 것처럼 인간은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다고 믿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