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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숭깊은 라쌤 Mar 16. 2025

가르치다가, 카지노 게임 배웁니다

<교사의 단어 수집 -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카지노 게임럽다


형. 일을 잘 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이별은, 카지노 게임움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다채로운 감정을 소유하고 있기에 인간은 카지노 게임답다. 계속해서 카지노 게임답기 위하여, 우리 안의 수많은 감정이 완전히 닳아버리기 전 다시 회복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영접하기도 하고, 안에 있더라도 매체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같은 간접 경험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 즉 기쁨이나 즐거움, 사랑 따위를 충족하는 여러 행위를 통해 우린 삶을 카지노 게임답게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인간들과의 교류가 생기고 덕분에 슬픔이나 분노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로는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아마도 맹자였을 것이다, ‘수오지심’을 논한 이는. 그는 부끄러움을 잃으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했다.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우린 부끄러움 역시도 채우려 애써야만 한다. 절로 발생할 수도 있겠으나, 마치 기쁨이나 즐거움, 사랑을 얻고자 했을 때처럼 반드시 직접 찾아 헤매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고의 행위는, 이별이다.


졸업.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이란 존재들은 회자정리, 즉 만나는 순간부터 반드시 헤어짐을 기약한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수많은 나의 동료․선․후배들은 꽤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는 편이다. 뒤늦은 후회에 몇 년에 한 번씩 잔뜩 절여질 때마다 줄곧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참 다행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견고하게 나의 주장을 지키며 압박하고, 다그치며 힘껏 괴롭혔을 테지.

나에게 가장 강력한 아름다움을 남긴 이별은 졸업생, 장체대군이었다. 그가 떠나던 날에도 난 사과를 건네지 못했다. 그저 피했을 뿐. 체대군은 나의 무관심으로 대입에 실패하고 결국 재수생이 된 친구였다. 그는 떠나던 날 몰래 내게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체대 지망생의 투박한 글자들은 투박해서인지, 더욱 심금을 울렸다.


‘……전 정말 행복했어요. 좋은 친구들, 선생님들 만나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체대 입시생들은 방과 후 주로 입시 전문 체대 학원에 가서 훈련에 임한다. 나름으로 담임으로서 체대 입시에 관해 정말 많은 공부를 카지노 게임 개별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제시하지만, 소용이 없다. 학원에서 이미 입시 지도를 끝내 놓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물론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이게 하루라도 더 수강생을 확보하기 위한 다른 의미의 전략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말을 해도 아이들을 듣지 않는다. 장체대군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손을 놔버렸다. 어차피 내 말보다 그분들의 말을 더 신뢰할 테니 말이다. 그 시간에 다른 아이들 입시를 더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결과적으로 체대군은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솔직히 ‘그거 봐라, 내 말을 안 듣더니 꼴좋다’란 생각도 했다. 밉기도 했고, 그래서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졸업 전까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졸업식이 있던 날, 아이들을 보내고 가만히 교무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책상 위에 핑크빛 편지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게 바로 장체대군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좀 신경 써주고 할걸.”


이별에는 후회와 성찰이 뒤따른다. 절로 부끄러워진달까. 상대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머릿속엔 그간 상대를 위해 내가 채워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줄줄이 나열된다. 슬프고, 미안하며, 죄책감이 들고, 그래서, 카지노 게임럽다. 허나 이미 떠난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다만,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스스로에게 던지는 약속, 이런 것들을 허공에 새긴다. 나는 몇 년에 한 번씩 잔뜩 절여질 때마다 줄곧 나를 돌이켜보며 조금씩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이고 싶다. 아주아주 고통스럽고 비참하며 강력하고 충격적인 이별이 필요하겠지? 아, 그건 어쩌면 이 생애와의 이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카지노 게임움은, 이별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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