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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 Feb 28. 2025

카지노 게임 것도 같고 사람 아닌 것도 같은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호랑이 발자국

가령 그런 카지노 게임이 있다고 치자

해마다 눈이 내리면 호랑이 발자국과

모양새가 똑카지노 게임 신발에 장갑을 끼고

폭설이 내린 강원도 산간지대 어디를

엉금엉금 돌아다니는 카지노 게임이 있다고 치자

눈 그친 눈길을 얼마쯤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눈이 내리는 곳 그쯤에서 행적을 감춘

카지노 게임 것도 같고 사람 아닌 것도 같은

그런 카지노 게임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남한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들갑을 떨며 카지노 게임들이 몰려가고

호랑이 발자국 기사가 점점이 찍힌

일간지가 가정마다 배달되고

금강산에서 왔을까, 아니 백두산일 거야

호사가들의 입에 곶감처럼 오르내리면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이 복고풍 유행처럼 번져간다고 치자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만, 오히려 증명할 수 없어서

과연 영험한 짐승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게로군

해마다 번연히 실패할 줄 알면서도

가슴속에 호랑이 발자국 본을 떠오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고 치자 눈과 함께 왔다

눈과 함께 사라지는, 가령

호랑이 발자국 같은 그런 카지노 게임이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창작과비평사, 2004.


가령 그런 카지노 게임이 있다고 치자


웃는 법을 알고 있지만

웃어본 적은 없는


위로할 줄은 알지만

울어본 적은 없는


길을 물으면 지도를 그려 주지만

그 길을 가본 적은 없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단 하나의 추억도 없는


언제나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결코 스스로 묻지 않는


도깨비라 부르면 방망이를 휘두르고

호랑이라 부르면 발자국을 보여주지만

어떤 얼굴도 가져본 적이 없는


카지노 게임 것도 같고 사람 아닌 것도 같은

그런 카지노 게임이




챗지피티가 출시된 지 4개월째 되던 때에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글을 썼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무엇인가에 관한 성찰을 담았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2024년 12월 11일 구글(Google)은 연구에 최적화된 차세대 AI모델 '딥 리서치(Deep Research)'를 선보였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AI 플랫폼이 딥 리서치 기능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2025년 2월 3일, 챗지피티 개발사 OpenAI가 '딥 리서치' 기능을 공개했고, 이어 14일에 OpenAI 출신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퍼플렉시티(Perplexity) 또한 '딥 리서치'를 출시했다. 2월 17일, 일론 머스크의 xAI는 Grok-3 모델과 함께 '딥 서치 (Deep Search)'를 공개했다.


'딥 리서치' 기능을 활용하면 단시간에 전문가 수준의 심층 분석 보고서와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단순한 정보 검색 기능을 넘어 스스로 사고하고 분석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챗지피티 시대가 열리기 전에 학위 논문을 마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내가 수개월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얻은 결과를 챗지피티가 몇 분 만에 완성해서 보여주었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이며, 또 어떤 내적갈등을 겪었을 것인가.


진작 챗지피티가 있었다면 논문 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 졸업을 몇 년은 앞당길 수 있었을 거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답안지를 먼저 보고 문제를 푸는 듯한 기분을 어찌 떨쳐낼 수 있으며,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를 어찌 단순한 도구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과연 인공지능은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도구로 남아줄 것인가, 아니면 결국 그들을 대체하거나 이끌어 갈 기술로 진화할 것인가.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챗지피티, 퍼플렉시티, 딥시크, 제미나이, 그록, 헤이젠. 그들이 남긴 발자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을 상상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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