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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Mar 24. 2025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예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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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깨운다. 지이잉.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 진동.

하. 다섯 시 이십 분이네. 십 분만 더 자자. (도대체 십 분만 더 자자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출근날 아침마다 속으로 외치는 이 한 문장. 20년이 다 되어간다. 하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 그렇듯 '기계적으로' 출근 루틴을 쳐냈다. 이쯤이야. 뭐.

잠시 후,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 부스스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다. 한창 더 자야 할 시간인데 엄마 출근 전에 보겠다며 굳이 일어난 거다. "또 일어났어? 에그.."라고 속상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한마디 하고는, 다시 들어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5분 뒤면 나갈 테니. 어차피 아이들은 내가 나갈 때까지 침대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부엌에서 물을 따르고 유산균을 먹고 냉동실에서 빵을 꺼내는 동안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시선은 엄마의 손을 따라 움직였고 한 번씩 눈도 마주쳤다. 애착인형 테디를 꼭 안고서.


이제 아이들과 아침인사를 할 시간이다. 아이 볼 왼쪽, 오른쪽 번갈아 뽀뽀를 하고, 품에 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학교 잘 다녀와. 엄마도 회사 잘 다녀올게. 사랑해." 아이는 두 배, 세 배 많은 뽀뽀로 응답하며 엄마를 자신의 품에 담는다. "응, 엄마 회사 잘 다녀와. 오늘 꼭 일찍 와야 해."


나란히 서 있는 두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현관 밖을 나섰다.

이제, 회사로 가야 할 시간.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의 일을 거의 Off 시키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정말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떠오른다.




어제 퇴근길에도 그랬다. 핸드폰이 보여준 5년 전 과거의 사진을 봐서인지. 부쩍 자란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새 내 턱까지 커진 키, 제 자리를 잡아가는 볼살, 기다래진 손가락, 조금 깊어진 눈빛. 꼬꼬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지금의 아이.


예전의 나는 아이의 예쁨을 못 봤다. 두 아이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대충 하는 법도 없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여유가 없었다. 1분, 1초도. 그래서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알지 못했다. 마음에, 눈에, 담아두지를 못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조금 내려놓아도 됐었을 텐데.라고 후회해봤자다. 이미 시간은 흘러갔으니,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감정까지 가만히 있어보라고 하긴 힘들었다. 그리웠다. 사진 속에 있는 아가들이 오물조물 움직이고 말하는, 활짝 웃는 그때의 모습이.

그렇게 한참을 훌쩍이다가, '에휴, 그만 청승 떨자.'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직 아가들이다. 말랑한 볼살, 순진하고 맑은 눈빛, 엄마를 향한 사랑, 모두 그대로다.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을 더 기억해야지. 예뻐해야지.' 다짐했다.



'띠리리링.'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아이들이다.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누구야~~?"

"엄마아~~"


"응~"

"언제 와아~?"


"일곱 시쯤?"

"이잉~ 왜 이렇게 늦게 와~"


"아~ 일이 많았어~"

"응, 조심히 와~?"


"응~ 그런데 왜 전화했어?"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헤헤, 엄마도 우리 아가들엄청 보고 싶었는데."

"헤헤."


"기대려어~ 집에 가서 마구마구 이뻐해 줄 거야 아~."

"히히. 나도 마구마구 예쁨 받을 준비 하고 있을게~~"


"흐흐. 그래~ 조금 있다 봐."

"응~ 엄마, 사랑해~"


"응~ 사랑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니 아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새벽에 인사하던 그 모습 그대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엄마를 만나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 발을 동동 구르며 기쁨이 넘쳐나고 있다. 마구 이쁨 받을 시동을 드릉드릉 걸고 있는 것이다.


신발을 벗자마자 두 아이들은 나에게 '와락' 안기고는 여기저기 뽀뽀 세례를 해댄다. 이제 제법 커진 아이들의 무게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가방을 내려놓고는 동시에 끌어안았다. "아, 이쁜이들. 잘 있었어? 와, 좋다. 행복하다. 헤헤." 엄마의 물음에 '응'이라고 대답하면서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양손으로 아이들의 볼을 부비며 "이그~ 예뻐."라고 말한다. 코를 찡긋 하고 입을 씰룩 거리는 아이들. 주변에 행복이라는 불꽃이 펑펑 터진다.


이날 저녁부터 잠들 때까지, 정말 작정한 듯 아이들을 이뻐했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아이들이 하는 모든 말에 귀 기울였고 눈을 맞췄다. 부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며 연습하는 아이의 연설을 열심히 들어줬고, 더 열심히 손뼉 쳐줬다. 스트레칭에 진심인 첫째 아이를 보며 '우와, 우와'를 아낌없이 남발했다. 피로감이 몰려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도 아이가 옆에 슬며시 들어오면 꼭 안아주었고, 엄마 옆에 있겠다며 침대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두기도 했다.


잠들기 전, 양 옆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누운 아이들. 오랜만에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2주 만이지만). 방의 형광등을 끄고 노란 스탠드 불빛만 책을 비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이들의 시선도 이리저리 움직인다. 큰 따옴표 안의 문장들이 등장할 때엔 목소리 연기까지 더하자 책에 더 쏘옥 빠져드는 듯하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세 장.. 얼마나 읽었을까. 어느새 내 목소리의 높낮이가 얕아졌고, 아이들의 숨소리는 잔잔히 깊어졌다. 두 눈을 꼬옥 감고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아기 때 얼굴 그대로다. 예쁘다. 신비롭다.


볼 한 번씩 손으로 쓰다듬고는 책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혹여나 인기척에 깰까 싶어 살며시 이불을 덮어 주고는 그 사이에 나도 같이 꿈속으로 향한다.


꿈에서도 아이를 마구마구 이뻐할 거다. 다시 오지 않는 지금을 맘껏, 양껏 누리며.

나중에, 1년이, 2년이 지났을 때, 그때 아이의 예쁨을, 사랑스러움을 놓쳤어.라고 속상해하지 않을 거다.

물론, 지금의 아이들이 그때에 많이 그립긴 하겠지. 눈물 나도록.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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