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휴식이란?
평소의 나는 워커홀릭이다. 아니,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 엄밀히 말해 ‘워커홀릭’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가족과 지인들이 쓰는 표현으로 다시 말하자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말대로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게 싫다. 휴일에는 뭐 할지 미리 정해두고, 여행도 사전에 일정을 쫙 짜 두어야만 안심이 된다. 소위 말하는 ‘파워 J’인 셈이다.
모순적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항상 ‘휴식’을 갈구해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늘어져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꿈꿨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들은 그게 뭐 힘드냐고, 그냥 쉬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J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쉬는 것도 쉽지 않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컵을 보면 치워야 하고 쓰레기가 보이면 주워야 한다. 책이 잘못 꽂혀 있으면 똑바로 세워야 성에 찬다. 우리한테 일상이란 끊임없이 해야 할 일들의 연속과 다름없다.
그런 나도 진짜 ‘휴식’이란 걸 딱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오래전에 독감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온몸에 오한이 들고 열도 높았지만, 일요일이라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나 대신 집안일과 어린 아들을 돌볼 일이 엄두가 나지 않던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시댁으로 피신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는 의사인 여동생이 급히 처방해 준 해열제를 먹고 거실 소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누워 잤다. 자다가 깨면 당시 제일 좋아하던 미드, ER 시리즈 DVD를 틀어놓고 보다가 졸리면 다시 잤다. 그렇게 자다 깨다 하며 하루를 보냈다.
꿀 같은 시간이었다. 비록 몸은 아팠지만, 그때의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기분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풀려나 시간에 개의치 않고 잠이 오면 자고 눈이 떠지면 떠지는 대로, 그렇게 몸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이번 온라인 카지노 게임 수술도 내심 기다렸다. 수술을 하면 2박 3일 입원을 해야 했는데, 입원하고 있는 동안은 어차피 집안일은 못 할 테니까 이참에 푹 쉬리라고 다짐했다. 평소에 못 자던 잠도 자고 예능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실컷 뒹굴거릴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병원에 가져갈 가방에 노트북도 넣고 충전기 선도 넣고 책도 넣고, 하나 가득 짐을 쌌다.
수술 후 첫날은 정말 하루 종일 침대에 딱 붙어 누워 있었다. 행여 하반신 마취 부작용이 생길까 봐 간호사 선생님도 절대로 일어나거나 심지어 고개를 드는 것도 안 된다고 신신당부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래서 식사가 올 때, 화장실 갈 때만 제외하고 종일 머리도 들지 않고 누워 있었다. 다행히 전날 잠을 많이 자지 못해서 그런지, 수술 후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내내 잤다.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게 고역일 것 같아서 누워서 핸드폰을 편하게 보려고 거치대와 이어폰, 충전기 등을 바리바리 챙겼는데 자느라 예능 한 편 제대로 보지 못온라인 카지노 게임.
둘째 날부터는 다행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아침 식사 후 복도를 한 바퀴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책이나 볼까 하다가 인터넷이나 좀 봐야 되겠다고 핸드폰을 검색하고 있는데 눈앞이 흐릿해졌다.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잠시 고개나 누일까 했는데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다음 식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밥을 먹고 잠시 걸었지만 역시 할 일이 없어서 침대로 돌아왔다. 앉아 있자니 엉덩이가 수술 부위가 아파서 다시 눕게 되었다. 거치대에 핸드폰을 끼우고 유튜버나 볼까 하고 영상 하나를 골라 재생시켰다.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귀에 웅웅하는 소리가 들려 깼더니 이어폰을 꽂은 채로 자고 있었다. 보던 영상은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멍한 얼굴로 일어났다. 뭔가 허무했다. 이 정도로 잤으니 밤에 잠은 다 잤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저녁 식사를 물린 후 잠시 있으려니 또 졸음이 밀려왔다. 그냥 졸린 정도가 아니라 눈꺼풀을 들고 있기도 힘들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또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이렇게 매끼 밥을 먹고 나면 거의 기절 수준으로 잠을 잤다. 그런데 이상하게 개운하질 않았다. 자도 자도 졸렸다. 나중에는 잠들기 싫은데도 잠들어 버리는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밥에 약이라도 탔나?’
세 번째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 아침까지 잘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계속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입원이 아니라 마치 사육장에 들어온 것 같았다. 오래전에 인기 있던 외계인 지구 침공 외화 시리즈 ‘V’라고 있었다. 그 외화의 만화책 있었는데, 만화는 TV에 나오는 것과 내용이 조금 달랐다. 거기에서는 외계인들이 인간을 잡아다가 식량으로 먹기 위해 강제로 돼지처럼 살을 찌우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침에 퇴원하기 전 거울을 보는데, 내 얼굴이 V에 나오는 꼭 외계인이 강제로 투실투실 살 찌운 식량용 인간처럼 보였다. 얼굴이 어찌나 토실해졌는지 쌍꺼풀조차 사라져 버렸다. 퇴원한다고 데리러 온 남편한테 나 너무 살찐 것 같다고, 쌍꺼풀조차 펴졌다고 하자 남편이 말온라인 카지노 게임.
“당신, 쌍꺼풀이 있었어?”
2박 3일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소원하던 대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바라던 대로 했는데 행복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뭔가 허무했다. 밥만 먹으면 자느라 이고 지고 간 책은커녕 핸드폰으로 영상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했다. 노트북은 아예 가방 밖으로 나올 새도 없었다. 이건 휴식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던 휴식은 무조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원했던 건 일상에 쫓기지 않는 여유였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지 않고 원하던 때에 쉬고 원하던 때에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해방감과 자유로움이었다. 그런데 잠만 자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라니, 이건 휴양이 혼수상태였다.
예전에 독감으로 쉴 때는 그렇게나 행복했는데 이번에는 왜 그렇지 않을까? 곰곰 생각해 봤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간의 차이였다. 그때는 채 하루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3일이었다. 여행으로는 그보다 더 긴 기간도 가는데 왜 입원은 3일도 힘든 걸까? 결정적인 차이는 할 일의 여부였다. 여행에서는 끊임없이 보고 할 거리가 있었다. 그런 걸 하지 않고 쉰다고 해도 그것 역시 나의 선택이고 자유였다. 하지만 입원에는 그런 선택권이 없었다. 강제로 ‘쉬어야만’ 했다. 먹는 시간도 음식 종류도 움직이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몸은 편해도 마음은 편안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 머리는 나보다 먼저 이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입원’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에 맞부딪쳤을 때 그냥 셔터를 내려버린 걸 수도 있다.
퇴원 후 나는 나의 ‘이상적인 휴식’을 이렇게 조금 수정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단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