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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새벽 Feb 04. 2025

미온적인 태도와 어떤 '카지노 가입 쿠폰'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런어웨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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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표제작 <런어웨이의 도입부. 주인공 칼라는 플로러를 잃어버렸다. 플로러는 작은 염소다. 들개나 코요타, 또는 곰이 플로러를 물어갔을까 봐 칼라는 걱정을 한다. 꿈에 나올 정도다.

다음은 <침묵이라는 작품. 주인공 줄리엣은 딸인 퍼넬러피를 잃어버렸다. '종교라는 저열하고 달콤한 허울'에 속아 어딘가로 딸은 떠나갔고 통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한번 찾아가 봤지만 만남에 실패하자 그 뒤로는 그냥 체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부터 일반 교회에 보내 이런 사태를 방지할 걸, 이라고 무신론자 줄리엣은 후회한다.

<반전의 로빈은 사랑을 잃었다. 1년을 손꼽아 기다려 남자를 찾아갔지만 변해버린 그의 카지노 가입 쿠폰로 인해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그때 로빈은 세상에 대한 어떤 기대를 본질적으로 잃었을 것이다. 훗날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지만 깨달음이 너무 늦게 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의 대표 소설집 <런어웨이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상실이 대개 강한 동기부여로 작용하는 일반적인 서사와 다르게 먼로의 이야기에서는 그러한 역동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인물들은 하나 같이 미온적이다. 칼라는 플로러를 열심히 찾으러 다니지 않고, 줄리엣은 퍼넬러피를 한 번 찾아가지만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곧 체념한다. 한편 로빈은 모든 게 오해였음을 깨닫지만, '그날 입고 나간 드레스가 문제였나' 정도로 맥 없이 사건을 반추할뿐이다.


사건은 일어났으되 반응이 없는 상태는 석연치 않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뺨을 찌르고 귀에 소리를 질러도 반응 없는 아이 같다. 이 정도로 석연치 않다는 건, 세계관에 어떤 '주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같은 게 필요해 보인다. 먼저 떠오르는 말은 허무주의.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먼로=허무주의자라는 도식이 썩 와닿지 않는다. 그것은 인물들이 상실에 대한 리액션은 내팽개쳤으되 그 외의 일상은 그런대로 열심히 굴려가고 있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인가 이 석연치 않음은.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은 이 세계를 설명하는 열쇠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작년 연말, 뉴욕타임스는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을 선정했다.(503명의 작가가 투표했다고 한다.) 언제까지고 우리의 자랑일 한강의 <채식주의자(49위)가 있어 반가웠고한때 서점가를 뜨겁게 달궜던 이민진의 <파친코(15위)도 눈에 띄었다. 한편 필립 로스 같은 경우 2권, 엘레나 페란테의 경우 3권이나 작품이 선정되어 주목을 끌었다. (여담이지만 페란테의 경우 나의 문학적 영웅인 줌파 라히리의 문학적 영웅이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총 10명의 작가가 복수선정의 영광을 누렸는데, 그중 하나는 앨리스 먼로였다. <런어웨이(53위),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23위)를 나란히 실은 먼로가 만약 이 목록을 봤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먼로는 목록이 공개되기 불과 몇 달 전인 2024년 5월에 작고했다) 어째서 엘레나 페란테보다도 못한 거냐고 화를 냈을까?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는 1위에 올랐다.) 아니면 담담하게 무표정으로 일관했을까?

후자일 거라는데 나는 조용히 한 표를 던진다. 그 이유는 위에서 내가 찾던 열쇠말과 관련이 있다. 먼로의 작품 세계관을 가득 메우는 정적의 근원, 그것이 바로 그녀의 어떠한 '주의'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년 칠 월, 먼로에 관한 한 가지 폭로가 터졌다. 제보자는 친딸인 스키너였다. 스키너는 자신이 9살 때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이자 계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이십 대가 된 후 트라우마로 인해 계부를 고소했으나 먼로가 "너무 늦었다"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폭행 사실을 인정한 계부는 2005년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먼로는 2013년 그가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스키너는 엄마가 문학적 영웅으로만 추앙 받는 사실이 불편하다며 이 사실을 함께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이쯤에서 인정하자. 스키너의 폭로를 모른 채 읽었던 먼로의 글은 탁월했다. 촘촘한 묘사, 치밀하게 설계된 서사, 무엇보다 독자에게 정보를 어떤 순서대로 줄 것인가를 설계하는 솜씨가 아름답도록 뛰어나 보였다. 그러나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기술만 돋보이는 공허한아름다움과거기서 느껴지는 불편함. 그런 느낌을 준 작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각 이야기의 공통된 면을 발견하며 나는 차츰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인물들의 카지노 가입 쿠폰, 그 바탕에 자리한 작가의 어떠한 특성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스키너 이야기를 보며 가설은 완성되었다. 먼로를 끝내 사랑할 수 없던 이유. 무언가 계속 어색함을 느끼게했던 그녀의 '주의.' 그것은 내가 경멸해 마지 않는 순응주의였다.


국내번역본의 경우 번역가와 작가의 만남이 절묘하다. 책을 번역한 황금진은 대사를 모두 가부장주의로 꽁꽁 포장하여 던져두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하는 대사는 모두 존댓말, 그리고 반대의 경우는 모두 반말로 번역해둔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빈정대고 싶지는 않지만 참 어울리는 한쌍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순응은 항상 나쁜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항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삶의 카지노 가입 쿠폰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릎을 때리면 다리가 휙 하고 올라오는 무조건 반사가 누구에게서나 일어나듯이, 상실과 스트레스에 대한 자연스러운 저항의 리액션을 나는 인간성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고, 이유가 무엇이든 그 인간성이 조금쯤 훼손된 사람들만 득실득실한 세계를 굳이 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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