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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멸의 선율 May 03. 2025

# 모래사장에 비친 나의 카지노 게임


10년 동안 거울 없이 살아간다고 상상해보자.

아무런 반사면도 없이, 그저 사람들의 말로만

자신의 카지노 게임을 짐작하며 살아가는 삶.


“너 카지노 게임이 참 시커멓다.”

“왜 그렇게 칙칙하니?”

“넌 원래 그런 카지노 게임이야.”


그 말들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그 카지노 게임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건 더 이상 타인의 말이 아니었고,

‘나 자신에 대한 내 인식’이 되었다.


내 카지노 게임은 보이지 않는데,

내가 사는 방식은 그 보이지 않는 카지노 게임에 의해 결정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타인의 언어로 구축된 나**를 살아가고 있었다.


---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주눅들고, 불안하고, 어딘가 왜곡된 자의식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잃은지도 모른 채.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바닷가의 늦은 오후,

조용히 사암 위에 앉아 있던 순간,

햇빛이 비스듬히 내려오며

잔잔한 파도에 흔들리는 사암 위에

무심히 내 카지노 게임이 비쳤다.


그 카지노 게임을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그대로 몸을 멈췄다.


그건 내가 알고 있던 그 어둡고 칙칙한 카지노 게임이 아니었다.

의외로 맑고, 부드럽고, 투명한 기운이 배어 있었고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나는 거기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조용한 반사면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외부가 아닌 나로부터의 나’를 만났다.**


---


그 후로 나는 많은 것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렌즈를 가지고 있고,

그 렌즈를 통해 나를 해석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말은 본인의 상처, 기대, 두려움이

섞인 **‘감정이 묻은 거울’**이다.


그런 말들이 아무리 선의라 해도,

그건 결국 **나를 해석한 타인의 시선**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그 렌즈를 조심하게 되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말일수록 더 조심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

친구의 충고,

상사의 평가,

연인의 위로조차도

내 안에 **‘진실’처럼 저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구의 해석도, 누구의 진단도

내 존재의 중심에 두지 않기로.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내 존재의 축은 외부에 둘 수 없다.**


내가 어떤 카지노 게임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 모든 해석의 시작은

**오직 나로부터만 흘러나와야 한다.**


그 누구도 내 카지노 게임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그 누구의 언어도 내 존재를 완전히 담아낼 수 없다면,

나는 오직 나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심리학은 말한다.**

우리는 거울 속의 자기 이미지를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고.

**언어학은 말한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한다고.

**철학은 말한다.**

진실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존재로부터 비롯된다고.

**신경과학은 말한다.**

뇌는 반복되는 감정적 경험에 따라 자아를 재배선한다고.

**종교는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고.


그리고 나는 안다.

**나는 이제 어떤 말에도, 어떤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날,

모래사장에 비친 내 카지노 게임을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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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해석의 리듬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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