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하드코어 이야기
# 주마등
붉게 갈라진 대지, 마른 흙먼지가 바람에 실려 이따금씩 발목을 스친다.
하늘은 저녁즈음카지노 게임 사이트는지 어딘가 보랏빛을 머금은 푸른색으로 깊게물들어 있고,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은 그 하늘 아래로 가파른 붉은 절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그늘진 절벽 아래엔 거대한 버섯같은 바위들이 곳곳에 드리우고 그 아래에는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발걸음들이 분주하다.
황량하고도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품은 이곳은 듀로타.
수 차례의 대전쟁 패배 이후 오크를 중심으로 한 호드의 세력이 먼 거리를 돌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은 곳이다.
그 듀로타의 위쪽에는 중심도시인 오그리마가 절벽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로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고 반대편인 아래쪽에는 용사들의 새로운 첫 걸음을 위해 마련된 "시험의 골짜기"가 있다.
이 시험의 골짜기는 장대한 와우 세계관의 시작점이자 튜토리얼 존 이상의 상징성과 내러티브적 의미를 지닌다.
시련을 통해 강해지는 존재인 "호드"의 정신을 바탕으로 고난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정화하여 주어진 태어남을 가지고 전사로서의 자신을 입증해야하는 곳인 것이다.
더불어 게임 시스템상으로 캐릭터의 스킬과 기본적인 전투 시스템을 익히고 첫 퀘스트를 수행하며 성장의 발판을 다지는 곳이다.이 여정의 주인공인 "나"스스로의 존재를 월드의 상급 존재들에게 두각을 드러내기 위한 기초적인 평판 다지기도 시작된다. (상급 존재라고 해봐야 결국은 NPC지만, 퀘스트가 진행됨에 따라 유저의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멋있어 보이기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무려 20년 만에 그 익숙한 곳에 낯설게 발을 디딘다.
아- 그랬었지 싶기도 하고, 또 새롭기도 하다. 하나씩 주어지는 과제를 해결하며 오래 전 기억들을 더듬어보며 조각 맞추기를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실 앞에는 거창하게 썼지만 실제로 게임상의 "나"는 아직 미약한 존재로, 식재료로 쓸 멧돼지 고기나 사과를 모은다거나, 약하디 약한 하급 악마들을 무찌른다거나 하는 정도의 퀘스트를 수행하기에 바쁘다.조금 더 나아가서야 듀로타의 토착세력들과의 전투를 치르는 정도이다.
10레벨 언저리까지 성장하면서 나는 하드코어 서버만의 명확한 차이 두 가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인사가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 유저간 퀘스트의 협력등을 위해 함께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때 의례적인 인사법은 "즐겜하세요" 내지는 "수고하세요" 같은 일상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하드코어 서버는 확실히 달랐다.
"장수하세요", "죽지마세요"가 인사의 기본이 된다. 캐릭터의 이름만 보더라도 어찌 그런 인사들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짐작할 만했다. (ex: 전사팔호기, 아홉번째발가락, 진짜진짜마지막) 자조적이고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진심으로 간절함을 담아 지은 이름일 것이다.
두 번째는 죽음의 기록이 공공재가 된다는 것이다.
굉장히 잔인한 규칙인데, 하드코어를 플레이하는 유저는 캐릭터가 사망할 때 현재 접속해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사망 알림" 메시지가 발송된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무엇에게) 죽었는지가 적나라하게 공개되며 심지어 생전의 마지막 채팅까지 보여준다.
(OOO가 북부 불모의 땅에서 천둥 도마뱀에게 사망했습니다. Last word : "ㅋㅋㅋㅋㅋ")
어림잡아 보건대 불과 잠시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중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것이다.
그 메시지는 일종의 흉흉한 사이렌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플레이 중 갑작스레 화면 상단에 크게 표시되는 검은색 텍스트는 단순한 시스템 알림이 아니라,한 생의 종언이며 모두가 목격자가 되는 일종의 장례 방송이다.
그 무방비한 알림에 가끔은 서늘함까지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채팅창에서 위로와 안부의 말을 건네지만, 답이 돌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하드코어 서버에서 내가 택한 방식은 "자수성가"였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오직 나 혼자의 손으로 장비를 마련하고 살아남는 것.
말만 들으면 멋져 보이지만 그 실체는 차라리 처절함에 가까웠다.
전사는 기본적으로 사슬이나 판금을 입고 싸우는 클래스다.
자수성가는 그런 방어구와 무기를 갖추기 위해선 몬스터를 사냥하고 퀘스트를 완수하는 시간만큼이나 광맥을 찾아다니며 곡괭이를 드는 시간이 필요했다.
채집한 광물은 제련해야 하고, 제련한 금속은 대장기술로 다듬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누가 잡아다 주는 것도 아니요, 거래로 얻을 수도 없으니 진짜로 '땅을 파서 입고 다니는' 셈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그 과정은 시간만 들이면 그저순탄할까.
광물을 캐는 도중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하나라도 더 캐기 위해선 멀고 험한 지역까지 기어이 발을 들여야만 했다. 그 수많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넘기며 얻은 광물 하나하나가 내 생존의 열쇠였다.
그렇다고 마냥 캐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채광, 제련, 대장기술. 각기 따로 노는 이 기술들은 단계마다 필요한 재료도 다르고 숙련 루트도 제각각이라 내 손에 쥔 재료를 보며 매번 경로를 계산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게다가 가방조차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몇 번만 채집과 사냥을 병행하면 인벤토리는 금세 꽉 차버렸고 그때마다 마을 은행을 수도 없이 드나들며 가방을 비워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끝없는 계산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사실상 전투만큼이나 정비와 노동이 내 플레이의 중심이 되어버린 셈이다.
어서 빨리 전장을 누비며 명성을 쌓고 이 세계를 뒤덮은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 마땅한데 현실은 구리를 캐고 주석을 녹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생존 다큐멘터리의 연속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하지만 기꺼이 느리고 고단해야만 죽음을 피할수 있는 것이 자수성가 전사의 숙명이었다.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한 발자국씩 신중하게 내딛는 그 길에서 나는 진정한 생존자가 되어갔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번의 죽음으로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게임의 모든 순간에 절실함과 경이로움을 더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어떤 게임보다도 가슴 떨리는 진짜 모험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경력직은 경력직카지노 게임 사이트던 모양이다. 비록 경력단절이 20년이라고 해도.
적응은 시간이 지나니 지나칠 정도로 순조로웠고 이거 되려 죽기도 어렵겠는데? 라는 오만방자함이 솟아날 무렵, 나는 크로스로드로 무대를 옮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징조라는걸 곧 알게된다.)
크로스로드(십자로)는 듀로타를 벗어나 처음으로 마주치는 "진짜 월드"에 던져진 느낌을 주는 곳이다. 여전히 사막 같은 황량함은 이어지지만 지형은 훨씬 복잡해지고 퀘스트 대상도 점점 사나워진다.
그 즈음 나는 14레벨을 달성했고 느림과 여유로움의 미학에 적응해 차근차근 퀘스트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불꽃같은 곡괭이질도 멈추지 않았다.)
조금 더 확장된 곳으로 나오니 몬스터의 유형도 점점 다양해졌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여러 유형의 몬스터가 존재카지노 게임 사이트. 야수형, 악마형, 언데드형 등등.
그 중에서도 인간형 몬스터는 몇 가지 면에서 특히 까다롭다. (다 인간처럼 생긴것은 아니고 이족보행류를 보통 인간형 몬스터로 취급한다.)
사회적이라는 특징에 어울리게 여러명이 함께 서성이는 것이 보통이고, 체력이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도망을 치며 주변의 아군들을 끌어오는 능력도 있다. 게다가 스킬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전투가 예측불가능하게 흐를 수 있다.
그날의 퀘스트 대상은 바로 그런 종류의 적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무리들 사이를 헤짚어가며 퀘스트를 수행해야 했었고 나는 최대한 조심스레 하나씩 무리에서 떨어뜨려 단독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이미 세 마리를 안전하게 처리한 후 였고 체력도 아직 많았으며 주변도 정리된 상태였다.
조심스레 또 한마리를 풀링(Pulling)하고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뒤쪽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또 하나의 몬스터가 내게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애드(Add)였다.
와우에서 "애드(Add)"란, 전투 중에 의도치 않게 다른 몬스터가 추가로 전투에 끼어드는 상황을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원래는 "Additional Monster"의 줄임말인데 유저들 사이에서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한 마리만 상대하려 했는데 모종의 사유로 인해 옆에 있던 녀석까지 끼어들었다."
바로 이것이 애드다.
특히 몬스터들이 일정 범위 안에서 서로 연계되는 인간형이나 인스턴스 던전 안의 몬스터들은 한 마리만 건드렸을 뿐인데 둘, 셋, 넷이 우르르 달려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현상은 일반 서버에서는 조금 짜증나는 헤프닝이지만하드코어 서버에서는 특히 치명적인데,애드는 곧 죽음의 징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망 알림도 이 애드로 인해 발생한다.
2:1의 상황.
이 정도의 대치구도는 몇 번 겪어본 적이 있다.현재 체력을 봤을 때 두마리까진 어찌어찌 해볼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우선 먼저 때리고 있던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에 집중한다.
그 때,
옆구리에 화살이 날아와 박히고늑대 한마리가 달려들기 시작한다. 사냥꾼 타입의 몬스터였고 펫을 동반한 상태였다. 저런 유형의 몬스터는 순찰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 순간 3:1도 아닌 4:1이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 어어??"
육성으로 터진 당혹스러움은 캐릭터의 조작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주마등(走馬燈)이란,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직감한 뇌가 마지막으로 살 방법을 찾기 위해 과거의 모든 기억을 빠르게 불러오는 현상을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정보들이 자신의 의식에 투영되는 모습이 등룡(燈籠)의 그림이 돌아가며 움직이는 형상과 비슷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미 생존을 논하기는 그른 상황이다. 클래스간 상성이 도드라지지 않는 초반에는 이런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회피기, 생존기, 군중제어기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상태이다.
남은 건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회복 물약 한병과 내 손가락 뿐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나는 가까운 적에게 이동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기술을 사용하며 후방으로 거리를 벌리기 시작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시 한 번 화살이 날아와 박히고 원거리의 적은 마법을 캐스팅한다. 아직 시야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남은 체력은 고직 20%. 손끝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건 아니다. 이건 진짜 죽는다.
시야는 좁아지고 손은 부자연스러워지고 머릿속은 계산이 멈추고 그저 본능적인 반응만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체력 회복 물약을 누르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반대편으로 달려가 얕은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정말 아주 아주 간발의 차이로, 나는살아남았다.
내 캐릭터는 말 그대로 얇디 얇은 체력 한 줄을 남기고 살아남았고애드가 났던 몬스터는 내 시야 밖으로 사라지며리셋되어 돌아갔다.
나는 그대로 캐릭터를 돌려세우고 마을로 황급히 도망쳤다.
캐릭터를 안전지대에 두고 숨을 몰아쉰다.
마우스를 움켜쥔 손을 내가 놓지 못하고 있었다. 몇 초간 아무 키도 누르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속 내 캐릭터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그 순간만큼은 내가 더 얼어붙어 있었다.
죽음 직전의 감각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공포도 아쉬움도 분노도 전부 나중 일이다.
그 순간에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마치 '주마등'처럼 감정과 생각의 필름이 빠르게 재생될 뿐이다.
왜 주변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다른 생존수단은 왜 준비해두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그 위기는 내 오만이 부른 것이었고, 나는 그 짧은 찰나에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였고 또 체념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리고 놀랍게도 살아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의 사망 알림이 떴을 때 예전처럼 가볍게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 텍스트 너머에, 이와 비슷한 손떨림과 아찔한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담금질한 첫 캐릭터이다보니 저 당시 파르르 떨리던 손끝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4화 예고. 죽은 자는 말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