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환상의 빛 (1995)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그러한 초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소중했던 인연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야,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감각할 수 없게 됨을 실감하고 나서야, 그제야 존재의 소중함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남편의 의문의 죽음, 그것도 타살이 아닌 자살. 행복하다고 느꼈던 유미코의 감정은 이쿠오의 죽음으로써 완전히 틀린 것이 되어버렸다. 예기치 않은 상실 속에서 밀려드는 혼란과 불안. 갖은 의문을 떠안은 채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은 변화를 기피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는 데 그만큼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위험을 감수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지금의 상황보다 한 발자국, 아니 반의 반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함이다.
나는 타인과 견주었을 때, 변화에 따른 위험에 꽤 둔감한 사람인 모양이다. 퇴사와 이직을 밥 먹듯 했던 과거를 돌아보면 내 주변인들은 언제나 내게 불안하지 않느냐고 질문하곤 했었다. 이에 나는 카지노 가입 쿠폰는 너무도 많은,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일자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나의 과감한 결정은 최악을 가정하는 내 습성에서 기인한다. 세상의 모든 일, 특히 좋지 않은 일들이 나에게 닥쳐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두고 상상 속에서 수차례 예행연습을 한다. 만족할만한 답을 찾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그 결과는 언제나 기대치에 못 미쳤지만.
이런 생각은 나를 죽음에 대해서도 무딘 감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인간이면 누구나 알만한 명제를 누구나 알만한 것으로 치부한다. 지독한 냉혈한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나의 죽음을, 부모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했던 조부모와의 이별 앞에서도 나는 두 눈을 꿈벅거리며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들의 따뜻한 손길과 온화한 미소를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
부모의 부재를 미리 경험, 그러니까 상상하고 나서 스스로와 굳은 약속을 하나 했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것. 특히, 100km 남짓 떨어져 있는 아버지와 말이다. 그렇게 카지노 가입 쿠폰 아버지를 핑계 삼아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카지노 가입 쿠폰데, 하루는 동생과 그의 아내, 그 아내의 친구도 동행했다.
외아들인 내게 동생이 있을 리 없지만, 여행길을 함께한 녀석은 의형제 정도로 해두자. 지난 5년 간 카지노 가입 쿠폰 세 번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 세 번 모두 이 녀석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이사를 끝낼 수 있었다. 까다로운 성미를 가진 형을 위해 이사 간 집의 화장실 청소를 자처하는 따뜻한 아이. 두툼한 손과는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 고무장갑을 끼고 해맑게 웃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두 여성은 어찌나 딸 혹은 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지, 외롭지는 않지만 고독하다고, 하지만 원래 인생은 고독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도 이 날 만큼은 홀로움에서 오는 적막 속에서 벗어나 실컷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빨리 결혼할걸. 누구도 내게 미혼이라는 죄에 대해 추궁하지 않았지만 카지노 가입 쿠폰 죄책감에 침묵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고요 속에 머물러 있는 한 남자, 동생이 있었다.
"형, 나 그날 평소보다 말이 좀 없었지 않았어? 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버지, 먼 훗날에 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시면 그때 제가 꼭 형 옆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셔요. 절대 우리 형 외롭게 혼자 두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셔요.'라고." 감정보다는 이성의 활용 비중이 높은 나조차도 그의 진심 어린 말속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 그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어찌나 애를 썼던지. 나에게는 그가 "게 좀 잡아다 줄까?"하고 다정하게 묻는 토메노 할머니와도 같았다.
푸른 하늘에 그려지는 비행운을 넋 놓고 바라보며 신의 섬세한 손길에 경탄하던 어느 날,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는 비행기 사고로 많은 무고한 영혼들이 카지노 가입 쿠폰을 떠났다. 한 날 한 시에 일어난 동일한 매개체가 보여주는 양 극단의 사건.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카지노 가입 쿠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던 나는 이내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질문을 곱씹어 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어쩌면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이 세상을 더욱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극히도 사적이고 감상적인 그런 의견. 애초에 버드 스트라이크는 만에 하나인 사건이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 확률은 더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확률 속에서 나의 생존 가능성은 반비례하여 상승 곡선을 그리겠지.
카지노 가입 쿠폰 남겨진 이로써 해야 할 일은 먼저 여행을 떠난 자들을 추모하는 것, 그들이 살지 못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있는 힘껏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러한 일상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 푸른 하늘을 보며 좋은 계절을, 신의 온기를 한껏 누리는 것, 그리고 아주 가끔, 먼저 떠난 이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