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드레스 바이즈 <히든 페이스 (2014)
* 본 게시물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식당 직원으로 보이는 서아시아인 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마치 시지프의 형벌을 받는 것처럼 식자재를 잔뜩 쌓아 올린 손수레를 힘겹게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균형을 잃은 남자는 중력까지 얹어진 수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도와줘야 되는데!' 직관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이성은 냉소적으로 비웃으며 이를 묵인했다. 다만 최소한의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스스로를 꽤 도덕적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믿음이 박살이 나는 데는 단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드리안(성진 役)의 사랑을 확인하려다가 밀실에 갇혀 버린 벨렌(수연 役). 아드리안은 며칠을 슬퍼하다가 새로운 여자친구 파비아나(미주 役)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원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낯선 곳에 있을수록 더 강한 경계심을 갖고 기민한 감각을 발휘하는 법. 파비아나는 화장실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벨렌과 '물의 대화'를 하기에 이른다.
'그녀를 구해야 해!' 벽 뒤에 벨렌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파비아나의 시스템 1(직관)이 작동한다. 며칠 전 방에서 주웠던 열쇠가 밀실로 들어가기 위한 것임을 알아채고 다급하게 열쇠 구멍을 찾는다. 그러나 이내 곧 시스템 2(이성)가 빈정대며 나타난다. '아드리안이랑 헤어지고 싶나 봐?'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파비아나는 식당 서버로 일을 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녀에게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아드리안과의 만남은 한 줄기 빛과 같았으리라. 벨렌을 구하는 순간 그 빛은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드리우게 될지 모른다. 그 두려움에 파비아나는 끼워 맞췄던 열쇠를 다시 빼냄으로써 벨렌의 죽음(?)을 묵인한다.
어릴 땐 성선설을, 사회의 쓴 맛을 본 후에는 성악설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 성선설에 무게가 실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데 여기에는 연민, 애정, 사랑 같은 것이 담겨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기꺼이 기부금을 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그 방증이다. 나 역시 어려움에 처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보며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여기에 조건이 하나 붙는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안위安慰가 보장된다면'이다. 매슬로의 피라미드 중 적어도 2층까지는 충족이 되어야 성선설 패시브가 발동한다. 선행을 베풂으로써 배를 주리고 거리에 나앉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착해질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파비아나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녀만 침묵하면 만사 오케이다.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겠지만.
나는 내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생각만 했다. 그래서 처음 소개했던 일화 속 내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나는 배고픈 상황도,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는 멀어져 가는 그 중동인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까?
핑곗거리가 몇 개 있다. 수레의 무게가 내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기 때문에 가속도의 법칙에 따라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손에는 텀블러를 들고 있었고 한 손으로 그를 돕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이었다.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모르는 사람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오지랖처럼 느껴진다. 에이, 이런 병신. 그냥 용기가 없었다고 말해!
올해 4월, 경기도 광주에서 빈 트럭이 내리막길로 돌진하는 아찔한 사건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용감한 30대 청년은 슬리퍼를 신은 채로 질주하는 트럭을 향해 달려,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2차 사고를 막을 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누구라도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부끄럽게도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라이언 홀리데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영웅적 행동을 한 사람들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용기를 과소평가하거나 평범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용기의 가치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저도 많이 무서웠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우리의 영웅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용기에 대한 훈련을 시작할지 모른다. 인간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니까.
아, 그래서 아까 그 외국인은 어떻게 되었냐고? 힘에 부쳤는지 수레를 포기하고 재빨리 옆으로 물러났다. 식자재가 가득 담긴 카트는 그대로 돌진해 건물 벽면에 충돌했고 그 위에 실려있던 재료들이 불꽃놀이처럼 튀어 올랐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땅바닥에 떨어진 각종 채소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옆을 유유히 지나쳐갔다. 물론 그를 향한 동정의 눈빛은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