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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하루 중 가장 바쁠 때다. 그야말로 난 하얗게 불태운다. 나도 타고 프라이팬 위에 작은 굴비들도 탄다. “딩동” 카톡이 온다. 숙이 보냈다. 숙은 지금 셋째를 임신 중이다. 안 그래도 출산일이 다가와 숙은 괜찮은지, 아기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카톡이 연달아 온다. 바로 확인하진 못해도, 그 소식은 용케 내 눈에 띈다. “언니, 나 출산했어.” 순간난 ‘와! 대박!’ 한 손엔 국자를, 다른 손엔 뒤집개를 들고서, 그대로 멈춘다. 아기가 출산 예정일보다는 분명히 빨리 나온 것 같은데, 셋째 출산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넘긴다. “딩동”사진도 보내오는 모양이다. 지금 아기의 얼굴이 너무 궁금하다. 숙을 닮았을까, 숙의 남편을 닮았을까.
“앗, 이럴 수! 굴비가 다 타버렸네. 시금치는 너무 데쳐졌어, 이러면 식감이 아예 없는데.” 이래저래 저녁상은 차려지고 난 의자에 앉는다. "숙이 셋째를 낳았데!” 가족들은 수저를 들기도 전에 숙의 출산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제야 난카톡을 마저 확인한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을 본다. 조그만 얼굴에 새까만 머리가 꼬불꼬불 많이도 나 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기가 누구를 닮았는지는 알 수 없다. ‘네가 샛별이구나, 세상에! 반가워!’ 그런데 아기의 입과 코에 무엇인가달려 있는 것을 본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아기는 35주째인데, 갑자기 태반이 터져 그날 아침에 응급으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숙이남긴 마지막 카톡을 읽는다. "이젠 둘 다 괜찮아.”
나는 바로 전화를 건다. 밥은 나중이다. 그 와중에도 내게 출산의 소식을 전한 그녀의 목소리가 당장 듣고 싶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얼마나 고생했냐고, 그녀가 말하는 대로 죄다 다 들어주고 싶다.
그날의 고통을.
그 순간의 비애와 기쁨과 환희와 노고를.
들어주고 들어주더라도 모자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이야기를.
전화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아득하다. 자꾸 말이 끊긴다. 난 속상한 마음에 "숙아,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한다. 숙은 출산을 위해 전신마취를 해 수술을 받았고, 현재 소변줄을 끼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고 나지막이 전한다. 아기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숙아, 그럼 쉬어." 전화를 끊는다.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고 숙도 며칠만 더 고생하면 아기도 만나고, 일어나서 움직일 수있을 테다. 난산을 겪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내 가슴이 다 미어지게 아프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야, 축복받을 일이야.'를 되뇌며나 자신을 달랜다.
첫째를 낳을 때 그날의 내가 떠오른다. 캄캄한 밤 병원 복도 한복판에 내가 누워있다.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난 막 제왕절개수술로 내 아이를 낳았다. 마취 상태라 아이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아이를 내 품에서 떠나보냈을 걸 안다. 내몸을 떠나 세상밖에 나온나의아이는 어땠을까. 엄마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이는 괜찮을까. 처음으로 만나는 이 세상이 안전하고 편안하다 느낄까. 아니면 지금 나처럼 어둡고 춥거나 외롭진 않을까.
그날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시작한진통은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와도 끝나지 않았다. 진통이 계속되는 가운데내 골반은 열리지 않았던 거다. 난 그고통을 참지 못하고결국 무통 주사를 선택했다. 하체를 다 드러내고 침대에 누우니 창밖에 눈이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눈부시게 하얀 눈방울들이 몽글몽글 날아오르다 마구마구 떨어졌다. 난 아이 이름을 '설아(雪兒)'라고 지어야 할까를 생각하다 ‘하지만 그 이름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너무 가냘프고 애처로워서 마음에 들지 않아. 나의 아이는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굳세고 강하게 클 거야. 내가 그렇게 할 거야.’ 다짐했다. 주사를 맞고 나니 나는 꽤 버틸만했다. 그러나 아기는 아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위험 신호를 알렸다. 탯줄이 아기 목을 감싸고 있어 그대로 있다간 아기가 위험했다. 난 두려웠고 곧바로 수술을 진행했다.
남편이 아이의 사진을 보여준다. 아이 머리가 이상하게 뾰족이 솟아 있다. 그 작은 생명체가 밖으로 나가고자 어찌나 힘을 썼는지 머리 모양이 다 변형되어 있다. 안쓰러우면서도 몹시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이 아이가 내가 낳은 아이라니. 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다니!’ 사진 속 아이 얼굴을 보고, 또 봐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토록 경이로운 하루를 보낸 그날 밤, 난 한숨도 잠을 이루질 못한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수술한 상처가 조금은 아물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허리를 들 수가 없다. 허리를 펴 일어서기만 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제 수유실에 가서 아이에게 초유를 먹여야 하는데,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한데', 난 이놈의 두통 때문에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간신히 입원실에서 초유를 짜 젖병에 담아아이에게 전달했다. 아이는 초유를 잘 먹을까. 아이는 엄마의 온기를 알아챌까.
나와 아이는 그렇게 만나지도 못하고 따로 분리되어 일주일을 보냈다. 그사이 난 심한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졌다. 의사 선생님까지 바꿔가며 그토록 원하던 자연분만을 실패했다는 사실과 출산 후 바로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는 내 처지에 큰 절망을 느꼈다. 그 두 가지를 해내야 비로소 내가 좋은 엄마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라고 굳게 믿던 때였다. 어떤 엄마가 정말 좋은 엄마인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나를 나무라며 꾸짖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끝내 견디지 못한 나를, 진통의 아픔에 굴복했던 나를, 지독하게 무서웠고 여지없이 나약했던 나 자신을. 그 모든 상황을. 나는 다 내 탓으로 돌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두통은 무통 주사의 부작용이 원인이었다. 몇 시간 동안 수액을 맞고 나자 난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아이를 빨리 안아볼 수 있었을 텐데, 하루라도 먼저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었을 텐데.’때늦은 후회를 하느라 가슴이 먹먹했다. 머리가 아파서 누워만 있는 나를 옆에 두고 핸드폰 게임만 잘하던 남편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예민하고 잠을 못 자서 그런 거라며 나를 무심하게 대했던 병원 관계자들 모두가 다 원망스러웠지만, 그럴 새도 없이 아이와 난 조리원으로 들어갔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조리원에서 난 처음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임신 중 배운 대로 수유 자세를 잡아보지만, 아기는 좀처럼 엄마의 젖을 물려하지 않았다. 아기는 이미 젖병에 익숙해진 후였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모유 수유만큼은 꼭 해내야 했다. 끝내 나는 온갖 고생과 갖은 노력을 다해 완모(完母)할 수 있었다. 모유 수유라면 지금도 난 할 말이 참 많다. ‘불굴의 모유 수유’라는 제목으로 글 한 편은 거뜬히 쓸 수도 있겠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건 집착이었다. 자연분만에 실패했던 나에 대한 자책이 모유 수유에 강한 집착을 불러들인 것이다. 아마 그런 집착이 아니었다면, 나의 완모(完母)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때론 어긋난 감정이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임신을 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에 관한 선택지를 받게 된다.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 두 가지가 아기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엄마는 아기를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 또 그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출산에 있어 그 무엇보다 중대한 것은 바로 엄마 자신의 컨디션이다. 그건 비행기 탑승 시 위급한 상황이 놓이게 되면 엄마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쓴 후 아이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엄마가 안전해야 아이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는 거다. 그때 나는 엄마인 나의 컨디션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아이를 위해 자연분만하고 모유 수유에 성공하는 것만이 좋은 엄마의 척도인 줄 알고 그랬다. "지금이라면 모유 수유 안 하고 말지." 허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집착이라도 부려서 내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했다는 것에 대해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자부심을 느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런 건가, 이렇게 어리석은 존재인가. 아니면 어리석음도 뛰어넘는 위대한 존재일까.'
오늘의 내가 그날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넌 축복받아 마땅해. 우울하고 외로워 마. 자연분만을 못 했어도, 머리가 아파 아기에게 갈 수 없어도, 넌 충분히 좋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야.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아기 씨앗이 너의 자궁 안에 뿌리를 내린 그 순간부터, 넌 이미 아기에게 세상 최고로 좋은 엄마란다. 그러니, 이제 막 처음으로 엄마가 된 너를 마음껏 축하해 주자. 그날의 영광을 모조리 너에게 다 돌려주자.’
숙에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애정하는 시 한 편을 전송한다.
시는 그날의 어린 나에게도 가닿을 걸 안다.
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기 전에는
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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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도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전에 잊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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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 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한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 팔로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 봐 언제까지나
두 팔에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나 자신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는 그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기 전에는.
작자 미상,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9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