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모국에서 병원에 수용됐을 때가 가장 편했다고 내게 말했다. 일단 담배를 피는 무슬림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담배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샤워를 매일 시켜주지를 않았다. A가 맨 처음에 얘기했듯이 그들은 동전 카지노 쿠폰를 가지고 어떻게든 몸을 씼어야 했다.
동전 카지노 쿠폰란 말 그대로 동전 모양대로 생긴 카지노 쿠폰였다. 여자에게 주면 단번에 다 써버릴만한 양을 샤워하라고 주고, 어떤 때에는 주지 않고 샤워를 시켜주기도 했다. 카지노 쿠폰가 아주 귀했다. 어떤 글에서 봤는데 한국 여자들은 최소한 서울 구축, 경기도 신축 아파트가 아니면 결혼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오피스텔에는 살 수 있지만 옥색 원룸에는 살 수 없다는 얘기였다.
오피스텔과 원룸이 무슨 차이인지, 옥색 원룸이란 무엇을 가리키는지 챗GPT에게 물어봤지만 그 또한 여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바보였다. AI를 남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AI는 여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A가 내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A도 여자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A는 모국 감옥에서 풀려난 후 한동안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저장되어 있는 순서대로 연락처를 클릭해 전화를 걸었다. 우연히 누군가가 받았고 A는 그녀의 첫마디에 당황하고 말았다.
"누구세요?"
"아, 저 위키백과의 땅콩샌드예요. 기억하시죠? 십년 전에 같이 위키백과 창립모임 같은 걸 준비했었잖아요. 경향신문에 기사도 나왔는데 기억 못하시나?"
그녀는 잠깐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용건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인가. 십년만에 전화가 돼서 할 만한 말이 단 두마디 밖에 없다는 건가. 누구인가? 용건은 무엇인가? 정말 그것이 중요한지 아닌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몇마디 말을 더 보태지도 못하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참담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다니.
A는 잠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가 다시는 전화를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A에게는 이빨이 건네준 위챗 아이디가 있었는데 A는 과연 홍콩 출신 마약중독자와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게 현명한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마약중독자였고 영화에서 A가 본 바에 따르면 마약중독자는 항상 문제를 일으켰다. 돈 문제나, 여자 문제.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골칫거리였다.
A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핸드폰에 연락처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써먹을 방도가 없었다. A는 고독했다. 누군가 대화할 사람이 필요해. 영화 중경삼림을 보면 금성무가 애인과 헤어지고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통조림을 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에서 경찰 역을 맡은 주인공은 카지노 쿠폰를 앞에 두고 말을 건다. 카지노 쿠폰야. 그녀가 날 떠나갔어. 어떻게 하면 좋겠니.
왕가위는 인생이 뭔지 알았던 감독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혼잣말을 하고 카지노 쿠폰는 그런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상대였다. 카지노 쿠폰는 대꾸를 하지는 않지만 용건을 묻는 무례함이 없었다.
정말 무례하군.
A는 불현듯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어졌다. 자신이 단지 전화를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모욕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A는 다시 화를 참고 화장실에 가서 변기 위에 앉았다. 누구세요? 용건은? 카지노 쿠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A도 카지노 쿠폰가 대답을 한다면 참으로 놀랄 것이다. 모국에 갔다와서 A에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A는 모국에 가기 전까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아주 두꺼운 1000쪽이 넘는 실존주의 철학서, 68혁명 당시 프랑스인들은 이 책을 갖고 거리에 나갔다고 한다. 다른 버전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책이 정확히 1kg이라서 무게추 저울을 쓰는 시장상인들이 존재와 무를 사서 눈금을 맞췄다고 한다.)를 열심히 읽었다.
대자와 즉자, 대자적 즉자, 즉자적 대자.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대자는 인간이고 즉자는 사물이다. 그럼 대자적 즉자는 뭔가? 즉자적 대자는 뭐지? 알 수 없었다. 알 수는 없었지만 사르트르가 뭔가 아주 중요한 작가라는 생각이 A는 들었다. 교도소에서는 아무도 사르트르나 카프카 따위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콘설레이트 펄슨까지도 몰랐다.
그런 인물이다. 사르트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