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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정 May 07. 2025

59. 애쓰는 두 남자(4)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리프레시 휴가 첫날 오후, 카지노 게임는 집안 소파가 아닌 은설이 근무지 교문 앞에 있었다.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은설의 퇴근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카지노 게임는 학교 맞은편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곧 숙제날이 다가왔고, 분위기 좀 잡기에 더없이 좋을 시기라는 느낌이 왔다.오래간만에 꺼내 입은 정장은 약간 작아진 듯했다.불편하기 짝이 없는 팔뚝 옷자락을 이리저리 당겨 겨우 편한 자세를 찾은 카지노 게임는 창가 테이블에 기대고 앉아 간간이 학생 한 둘만 나올 뿐인 교문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카지노 게임는 요 며칠 사이의 은설을 생각했다.컨디션이 썩 괜찮다던 말과는 달리 어딘가 모르게 우울해 보였던 은설이었다.그러던 은설이 이틀 전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부쩍 밝아진 걸 보면 임신과 관련해서 무언가 좋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물론 그날 저녁 20년 만에 중학교 동창 모임을 하게 된 것도 은설의 기분에 영향을 좀 주긴 한 듯했지만.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현관문을 들어서는 은설의 모습은 정말 오랜 오래간만에 보는 것이었다.

“좋은 일 있었어? 표정이 밝네. 마누라 늦게 와서삐치려고 했는데, 그렇게 웃으면서 들어오면화낼 수가 없잖아.”

“어머, 미안. 당연히 늦는 줄 알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얘기를 좀 해둘걸. 중학교 동창모임 하고 왔어.”

“중학교 동창? 수지 씨 말고 또 만나는 중학교 동창이 있었어? 아아, 맞다. 지금 진료받고 있는 의사가 중학교 동창이랬지?”

“응. 걔 통해서. 어릴 때 같이 도서관 다니던 친구를 또 만나게 됐어. 그리고 광장동도 갔다 왔어!”

은설의 얼굴이 금방 상기되었다.

“정말? 그 동넨 다시 가고 싶지 않다며.”

“그랬는데, 친구 따라 얼결에. 막상 가니 좋더라. 예전에 다녔던 학교도 둘러보고 떡볶이집에 가서 떡볶이도 먹었어. 아직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

말을 하는 은설의 표정에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카지노 게임는 그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잘 다녀왔네. 그래서 이렇게 표정이 좋구나. 트라우마도 좀 극복하고 온 것 같고. 친구들이 나보다 낫다.”

“에이, 아무렴 신랑이 더 낫지.”

잘 다녀왔다면서도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지노 게임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은설이 거꾸로 카지노 게임를 위로했었다.




“아무렴! 동창 나부랭이들한테 질 수야 없지. 그나저나 올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카지노 게임가 남은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다 털어 넣으며 시계를 보았다.

“30분 넘었는데. 다시 전화를 해봐야 하나?”

때마침, 카페 앞에 피자배달오토바이가 섰다.배달원이 한쪽 귀엔 휴대전화를 대고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거의 동시에 카지노 게임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요, 여기.”

카지노 게임가 수화기에 대고 작게 소리쳤다.창문 밖으로 열심히 이쪽이라며 손짓하는 준수를 보고 배달원이 빼꼼히 카페 문을 열었다.

“혹시 피자 시키셨어요?”

“맞아요.”

“여기서 드시는 거예요?”

“아니. 일단 나갑시다.”

준수가 옆자리에 곱게 모셔두었던 꽃바구니와 작은 쇼핑백을 챙겨 들며 배달원에게 밖에서 보자는 신호를 했다.




오토바이 옆에 서서 준수가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던 배달원이 준수를 미심쩍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만, 주문한 피자와 함께 이 꽃바구니랑 쇼핑백 좀 여기 이 종이에 쓰여있는 분한테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1층 중앙교무실 교무부 교사 이은설’이라고 씌어 있는 쪽지를 받아 든 배달원이 대뜸 준수에게 도전적으로 질문을 했다.

“아저씨 누구예요? 누군데 이 사람한테 이런 걸 보내요? 이 사람 유부녀예요. 알아요?”

‘이 자식 봐라. 어린놈이 얻다 대고.’

여차하면 한 대거리할 요량으로 준수 역시 배달원에게 물었다.

“그러는 그쪽은 이 여자가 유부녀인 걸 어떻게 압니까?”

“나요? 나 이 여자. 아니, 이 여자가 내······. 아씨, 내가 좋아하는 여잡니다.”




“어쩔씨구리.”

“허, 어쩔시구리? 이 꼰대가.”

“얌마, 나 이 여자 남편이야.”

“네?”

“너, 뭐야? 뭔데 어린 노무시키가 남의 마누라를 좋아하고 지랄이야.”

“저 이은설 선생님 반 학생인데요.”

“뭐?”

“우리 담임선생님인데요. 이은설 선생님.”

“그래? 그래서 좋아하는 거였어?”

“네. 아저씨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쫓아낼라고.”

“이 자식. 너 맨날 드라마만 보고 살지?”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요. 조심해서 나쁜 건 없잖아요. 위험한 사람 많은 세상인데.”

“딱 보면 모르냐. 내가 어딜 봐서 위험한 사람처럼 보이냐.”

“멀쩡하게 생겼어도 이상한 사람 많아요.”

말로는 절대로 이 아이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카지노 게임가 얼른 딜을 걸었다.

“배달 부탁 들어줘. 그럼 늬 담임샘한텐 지금 일 말 안 할게.”

“아, 안 돼요. 저 배달아르바이트 하는 거 담임샘이 모른단 말이에요.”

카지노 게임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다시 딜을 했다.

“추가 배달료에 위험수당 포함. 5분짜리 알바에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냐?”

솔깃했는지 배달원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아, 이번에도 걸리면 담임한테 완전 삼진아웃 당할 텐데.”




삼진아웃.

카지노 게임가 퍼뜩 생각이 난 듯 배달원에게 물었다.

“너 혹시 기범이냐?”

배달원이 화들짝 놀라며 카지노 게임에게 반문했다.

“제 이름 어떻게 아세요?”

“얌마, 왜 몰라. 올해 우리 마누라가 나보다 니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살고 있는데.”

“죄송합니다아.”

크게 찔리는 일이 많았던 기범이가 머리를 조아리며 카지노 게임에게 사과를 했다.

“아냐, 뭐 은설 씨 직업을 가지고니가 사과할 건 없지. 만은! 선물 전달 정도는해줄 수 있겠지?”

“해드릴게요. 주세요, 그거.”

기범이 카지노 게임의 손에서 꽃바구니와 쇼핑백을 뺏어 오토바이에 실었다.

“이것도 가져가.”

“아녜요. 괜찮아요. 서비스예요.”

카지노 게임가 내미는 아르바이트비를 거절하고 기범이 바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잠깐만.”

출발하려는 기범을 불러 세우고 카지노 게임가 다시 안쪽 주머니를 뒤졌다.

“자, 이거 써. 니 얼굴 일부러 자세히는 안 볼 테니까, 이거 쓰면 넌 줄 모를 거야. 한 번도 안 쓴 새 거니까 찝찝해하지 말고. 그리고 이건 아르바이트비가 아니라 감사 인사니까 받고.”

카지노 게임가 마스크와 함께 다시 수고비를 내밀었다.

“진짜 안 주셔도 되는데.”

하면서도 기범이가 슬금슬금 웃으며 카지노 게임가 건네는 것들을 받아 들었다.

“마, 그리고 오늘 미세먼지 심한 날이야. 배달 다닐 때 마스크 꼭 쓰고 다녀.”

기범이 대답 대신 카지노 게임를 향해 쓰윽 한 번 웃어주며 바로 마스크를 귀에 걸쳤다.

“여러모로 조심하고.”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자세를 고쳐 잡은 기범이 손을 한번 휙 들어 카지노 게임에게 인사를 하고 교문 안으로 돌진했다.순식간에 멀어진 기범의 등 뒤로 카지노 게임가 마무리 축언을 했다.

“은설 씨한테 걸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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