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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15. 2025

1009. 비우면 채워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높아진다.

‘공경받는 노인’의 덕목

만 60세를 넘고 이듬해 6월 30일 정년퇴직을 했다. 예정되어 있는 환갑과 정년퇴직이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며 나하고는 무관한 아주 먼 나라 일인 줄 알았다. 어김없이 정시에 찾아온 환갑은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가족여행의 의미만 있었을 뿐 별 감흥도 없었다. 환갑이 지났어도 출근해야 할 직장도 그대로였으며 출근시간, 후배들 얼굴 등 변화된 것 없이 그대로였다.

정년퇴직 또한 무덤덤했다.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이었기에 섭섭하기는 했으나 한편으로 시원하기도 했다. 퇴직 후 전라남도 나주에 오피스텔을 얻어 지겹도록 낚시를 다녔으니 어쩌면 꿈꿔왔던 세상이 펼쳐진 기쁨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퇴직선배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고독감이라고 한다. 각종 모임은 물론 경조사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빠져도 될만한 술자리에 얼굴을 비추는 것은 사회적 고립감 또는 관계단절이 주는 공포를 회피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고독과 공포를 느끼는 정도라면 사회적 동물로 진화가 잘 된 인간형들이다.

사회적으로 진화가 덜 되어서인지 고독과 공포 없이 혼자 노는데 익숙하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퇴직 후, 사회적인 관계가 대폭 축소되었다. 웬만한 경조사는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많은 모임과 손절했다. 경조사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것은 코로나펜데믹에 의한 경조문화의 변화 영향이 크지만 많은 모임과 손절한 것은 건강관리상의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줄 서는 곳을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퇴직 후 하릴없이 나이만 먹어가며 참석한 몇몇 모임은 과거회귀적이었다. 지난 일들은 별로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다. 게다가 과거의 추억을 꺼내 단물이 나올 때까지 씹고 또 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임에 나가면 3~40년 된 추억들이 소환되는 것까지는 아름답지만, 인물평이 시작되면 좋은 이야기만 나올 수 없다. 씹는 대열에 동참하여 거리낌 없이 독설을 뱉는 내 모습에 염증을 느낄 정도다. 있을 때 잘해야 하고 없을 때는 칭찬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덕목 중의 하나이다.

과거회귀적이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미래지향적인 인물도 아니다. 나는 현재가 중요하며 관심분야도 현재 무엇을 해야 즐겁고 행복할까 하는 것이다. 물론 여러 사람을 만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기는 하나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비중이 커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단물이 나올 때까지 씹고 또 씹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이기까지 하다.


내 기준으로 자주 만나는 선배가 있다. 선배는 성격과 생활패턴이 나와 반대라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으며 나이 일흔에 ‘카공족’이다. 아침 일찍 카페 구석 지정석에 나와 전공서적과 공학용 계산기를 꺼내 공부삼매경에 빠진다. 사모님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주고 치매예방을 위해 시작한 공부라지만 최근 기사자격증까지 취득했으니 녹슬지 않는 암기력을 자랑온라인 카지노 게임.

점심전후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며 기분 내키면 거나하게 낮술도 한다. 퇴직한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찾아오는 손님이 몰리는 것을 보면 성공한 인생 2막을 보내는 모습이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다.

사실 공부하는 모습이나 찾아오는 손님들이 몰리는 모습보다 부러운 것은 넉넉한 마음씀씀이다. 아니 부럽다기보다 존경스럽고 많이 배운다. 카페 손님 중에 군복 입은 젊은이가 눈에 띄면 조각케이크 하나를 선물온라인 카지노 게임. 선배를 따라 70세로 향하고 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이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마음씨를 갖지 못할 듯하다.


백세시대, 저출산과 겹쳐 ‘노인’ 나이에 대한 논쟁이 있다. 물리적인 나이, 국민연금과 정년퇴직과 맞물린 경제논리, 노인세대와 미래를 살아야 하는 청년세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논리가 복합되어 있어 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는 국가공인 노인 기준은 65세이나 70세로 늘리자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찬성이지만 물리적인 나이뿐 아니라 정신적인 나이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노인의 기준’을 ‘공경받는 노인의 기준’으로 더욱 엄격하게 설정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65세 이상중 소위 이야기하는 노인의 덕목을 갖춘 사람만이 ‘공경받는 노인’ 대접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나이 들면 열어야 할 것은 입이 아니라 지갑이며, 있을 때 잘해야 하며 당사자가 없을 때는 칭찬해야 한다. 주변이 곤란할 때 도와주고, 도움을 받았을 때는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보답을 생각하지 말고 베풀어야 하며, 베풂을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은 잊어야 한다.’

공경받는 노인자격은 운전면허처럼 국가에서 관리하던, 필기와 실습시험을 보던 정부에서 정할 일이다.


선배는 성격과 생활패턴이 나와 반대라 했는데, 선배는 감성적이고 나는 이성적이기보다 냉정한 편이다. 노인의 자격이 생긴다면 선배는 ‘공경받는 노인’이며 나는 경로우대증을 발급받은 ‘일반 노인’에 지나지 않는다.

선배는 가끔씩 명언을 뱉는 바람에 사람을 놀라게 한다. 길고 긴 노인의 덕목을 축약해 “비우면 채워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를 일상의 덕목으로 삼고 실천하고 있다. 주변을 돕고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알고 있는 카공족 선배옆에서 ‘공경받는 노인’이 되는 법을 공부해야 조금 더 나은 노인이 되지 않을까?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가 師友(사우)의 관계라고 한다. 오늘도 카공족 선배를 만나 점심으로 뜨끈한 쌀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인생상담과 당구 한판을 쳤다. 당구기술은 내가 뛰어난 것 같은데 ‘공경받는 노인’의 기술은 항상 열세다. 선배의 出出而不空(출출이불공: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 같은 마음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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